피감기관의 접대
피감기관의 접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4.15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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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에서 갑(甲) 자리에 있는 국회의원은 을(乙) 자리에 있는 피감기관에게 상전(上典)이나 다름없다. 이 사실을 필자도 피부로 느낀 적이 있다. 1980년대 후반 국정감사 때의 일이었다. 이 시기는 이른바 ‘양김(兩金)시대’를 주도하던 YS, DJ의 입김이 하늘을 찌를 때였다.

특종(特種)이 시야에 잡힌 것은 그 해 부산지방국세청 국정감사 직후였다. 웬일인지 오후 5시에 시작된 국정감사가 1시간도 못 채우고 서둘러 끝이 난 것. 국감위원 10여 명은 대절버스에 쫓기듯 올라탔고, 버스기사는 해운대 청사포의 최고급 횟집으로 차를 몰았다. 당시 방송 일에 종사하던 필자는 동물적 직감에 이끌려 뒤를 밟기 시작했다. 국감위원들은 횟집 2층에, 필자는 3층에 자리를 잡았고, 메신저 역할은 횟집 종업원이 순순히 맡아주었다.

전해온 메시지는 그야말로 ‘특종감’. 부산서 제법 잘나간다는 접객업소 여성 예닐곱이 차출돼 왔고, 고운 한복차림으로 의원들 사이사이에서 술시중을 들었으며, 횟값·술값은 부산지방국세청 관계자가 다 냈다는 소식이었다. 필자는 이 사실을 밤잠까지 설쳐가며 가십거리로 다듬어 서울 본사로 송고했고, 이 가십은 다음날 아침 출근시간에 전국 방송망을 타고 만다. 공교롭게도 이 가십은 매일 그 방송을 귀담아들으며 출근하던 YS의 안테나에 포착됐고, YS는 즉시 자파(自派) 의원들에게 불호령을 내렸다. “국감이고 뭐고, 곧바로 올라와!” 뒤늦게 이 사실을 안 DJ 역시 자파 의원들을 서울로 불러올렸고, 이날 부산지역 피감기관들은 때 아닌 대박(?)에 자축(自祝)의 술까지 축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로부터 약 30년,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자격 논란의 덫에 걸려 매타작을 당하고 있다. 지금 분위기로 보면 옷 벗을 날도 며칠 안 남았다. 그를 겨냥한 집단 멍석말이의 명분은 ‘국회의원이 왜 피감기관 돈으로 외유(外遊)를 다녀왔느냐’는 것. 국민의 눈높이에서 보면 문제가 없지 않다. 중앙선관위 유권해석이 먼저일 수도 있지만, 관심의 초점은 그가 옷 벗을 시기가 언제쯤일까에 맞춰진다. 혹시 4월 16일?

4월 16일이라면 세월호 침몰참사 4주기에 해당되는 날이다. 4년 전을 돌아보면, 세월호 참사 직후 언론매체들이 앞 다퉈 보도한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피감기관의 지원을 받은 국회의원들의 외유’였다. ‘세월호’ 관련이라면 한국선주협회가 자유로울 수 없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선주협회 지원 국회의원 해외출장’은 2009년부터 시작됐고, 이 전통은 2013년에도 이어졌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2014년을 두고는 ‘이다’, ‘아니다’ 두 가지 설이 공존한다. 참고로, 문화일보는 2014년 4월 30일, 선주협회의 ‘2013년 사업보고서’를 인용해 이런 기사를 올렸다. “선주협회는 지난해 5월 4박5일 일정으로 OOO당 국회의원 5명의 해외 항만 시찰을 지원했다.” 또 다른 매체는 이런 기사를 띄웠다. “외유 후에는 선주협회에 대한 대대적 지원을 골자로 하는 ‘보은(報恩)의 국회 결의안’ 발의를 주도했다.”

당시 언론매체들은 국회의원들이 선주협회의 지원으로 최소한 2차례 해외시찰을 다녀왔고, 그 숫자가 한 번은 5명, 한 번은 6명이라고 보도했다. 그 속에는 정의화(전 국회의장), 김무성(전 당 대표) 의원의 이름도 들어갔다.

몇 년 전, 이 두 차례 명단에 빠짐없이 이름을 올린 지역 국회의원에게 넌지시 전화로 물었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정의화, 김무성 의원도 같이 갔다 왔다. 뭐 잘못된 것 있나?” 하긴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말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선주협회 지원으로 외국여행 다녀온 전·현직 국회의원들은 옷 벗을 날만 기다리고 있을 김기식 금감원장에게만은 영영 돌을 던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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