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단상]생활 속 토론회와 민주시민교육
[교육단상]생활 속 토론회와 민주시민교육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4.12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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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 OOO후보에게 질문하겠습니다. 운동장 4곳에 쓰레기통을 설치하여 깨끗한 학교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쓰레기통 구입과 설치는 누가 할 것입니까? 또 모아진 쓰레기 처리는 누가 하는 것입니까?” “네 2번 후보 OOO입니다. 쓰레기통 설치는 선생님께 말씀드려서 학교에서 사달라고 하면 되고, 쓰레기 처리는 아직 잘 모르겠는데…” “그러면 2번 후보는 그 공약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것이로군요?”

이 대화는 지난 3월 전교어린이회장 선거 후보자 상호토론에서 가져온 말이다. 본교는 매년 투표일에 4~6학년(유권자 약 550명과 출마자 10여 명)이 강당에 모여 출마자의 공약 발표를 듣고 후보자 상호토론을 실시한다. 이때 모든 후보자는 상대후보 중 1명에게 질의할 기회가 주어지며 후보자 토론이 끝나면 유권자와 후보자 간의 토론이 이어진다. 유권자는 약 2시간 동안 다양한 질문으로 궁금한 사항을 해결하기도 하고, 때론 후보자들을 난감하게 만들기도 하며, 특이한 질문으로 참석자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는데 그 모습이 사뭇 진지하고 또 적극적이다. 해마다 그 수준이 놀라울 정도로 발전하여 새로 부임한 교사는 “교장선생님, TV 생중계를 해도 되겠는데요”라며 놀라움을 표하기도 했다.

그 중에 나조차 생각지 못한 다음과 같은 유권자 질문이 후보자를 당황스럽게 했다. “저는 6학년 □□□입니다. 지난 3년간 이렇게 후보자들이 공약을 내세웠는데, 이 공약이 어떻게 실천되었는지 전혀 모릅니다. 모든 후보자들에게 묻겠습니다. 당선되면 공약이 어떻게 실천되었는지 임기 마칠 때 알려주실 겁니까?”

그래서 선거가 끝난 후 당선된 임원진과 학교장은 2주간의 논의를 거쳐 회장과 부회장이 내건 4가지 구체화된 공약의 실천방안을 제시했고, 실천한 내용은 임기가 끝나는 7월말 학교 방송을 통하여 전교생에게 발표하기로 했다. 또한 실천 과정에서 학생자치활동 담당 선생님께서 이런저런 지원방안도 제시하여 올 상반기에 전교회장단의 자치활동이 기대된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본교의 학생자치활동 한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3년 전 전교부회장 후보가 ‘학생들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이 말에 질문이 쏟아져 나왔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는 못했으나 그 학생이 당선되었다. 그래서 위와 같은 방법으로 여러 차례 협의회를 거쳐 시행된 대회가 지금까지 추진되고 있다. 바로 어린이 예능대회와 피구대회이다.

이 대회는 어린이회가 교사의 도움 없이 주체적으로 대회 공고문 작성부터 참여 팀 접수, 심사위원 섭외까지 진행한다. 이러한 선배들의 활동을 보아온 후배들은 제법 능숙하게 기획안을 작성한다. 또한 대회 참가자들은 학교 구석구석에서 연습하는 모습만으로도 ‘학생들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겠다’는 공약이 실천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학생 스스로 다양한 역량을 길러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대회의 출연자는 2인 이상이 팀을 만들어 참가해야 하는데, 학원이나 어른들이 개입된 작품으로 출전하면 입상권에 들지 못한다는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활 속의 토론회와 민주시민 교육은 어린이회 선거뿐만 아니라 학칙을 개정할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4~6학년 학생들은 강당에 모두 모여 요약된 규정 20여 개를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강화할 점과 개선할 점에 대하여 의견을 제시하고 수정한다. 그런 다음 전교어린이회의에서 한 번 더 토론을 거친 뒤 최종 수정안은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한다. 또한 연간 4차례 진행되는 프로젝트 수업에서도 주제망을 짜고 학습에서의 학생활동은 가급적 학생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진행된다. 학습 방법도 매회 토의와 토론, 팀별 자료 제작을 거쳐 진정한 학생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 3년간 이렇게 활동해온 덕분에 학생들의 발표 능력은 교사의 수준을 능가한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사회(역사) 국정교과서의 사진자료와 내용 문제로 옳다와 옳지 않다는 의견들이 연일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또한 우리 교육청에서는 회의문화 개선과 원탁토론교육 지원 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 후세들을 올바르게 교육하기 위해 교육관련 종사자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참여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 점은 참으로 감사하고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좋은 참고자료(정선된 교과서)도 좋고, 원탁테이블 지원도 좋지만 앞으로는 교과내용을 좀 더 과감하고 획기적으로 축소하려는 교육정책도 병행되어야 할 것 같다. 새로운 교육(미디어, 소프트웨어 등)에 대한 욕구는 나날이 늘어 가는 반면 가르치던 내용은 제자리걸음에 머물러 일선교사들의 정신적 피로가 쌓여만 가는 현실을 직시했으면 한다. 이러한 정책변화가 일어난다면 우리 아이들의 창의력과 미래역량을 키우는 일에 좀 더 신바람이 나지 않을까?

정기자 매산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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