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단상] 수사구조개혁, ‘앙꼬 없는 찐빵’ 안 되기를
[경찰단상] 수사구조개혁, ‘앙꼬 없는 찐빵’ 안 되기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4.11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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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9일 문무일 검찰총장이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수사구조개혁과 관련해 여러 주장을 했지만, 수사관의 입장에서 보면 현재 가지고 있는 막강한 권한을 내려놓을 수 없다는 말을 에둘러 표현한 것 외에 다른 의미는 없어 보였다.

이 가운데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은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을 기존대로 유지해야 된다는 주장이었다. 문 총장의 이런 주장은, 검찰이 인권옹호기관이기 때문에 영장의 경우 반드시 검찰이 심사해서 경찰을 통제해야 된다는 점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과연 현재의 검찰을 인권옹호기관으로 볼 수 있을까?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14년까지 검찰수사 도중 자살한 사람은 108명이었고, 검찰은 이로 인해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자살방지책을 마련하라는 권고까지 받은 사실이 있다.

아울러, 문 총장이 그토록 놓지 못하겠다는 영장청구권에 대해 살펴보면, 2013년부터 2015년까지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 2만2천720건 중 24.9%인 5천659건이 법원으로부터 기각되었다. 반면, 경찰이 검찰을 통해 청구한 구속영장 8만3천585건 중 기각된 것은 17.1%인 1만4천365건에 지나지 않았다, 오히려 검찰 쪽의 구속영장 기각률이 더 높았던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체포영장, 압수수색영장도 마찬가지다. 같은 기간에 검사가 청구한 체포영장의 기각률이 경찰의 신청으로 청구된 체포영장의 기각률보다 0.6%포인트, 압수수색영장의 경우 2.45%포인트가 높은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처럼 검찰의 영장 기각률이 더 높은데도 ‘인권보호’를 구실삼아 경찰이 신청한 영장은 검찰의 심사가 필요하다고 우기는 것은 어불성설, 즉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영장주의의 본질은, 강제수사의 경우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정도가 크기 때문에 독립된 법관의 심사를 받은 영장에 의해서만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즉, 검찰이든 경찰이든 강제수사를 할 때는 사법부인 법원의 통제를 받아야만 한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행정부에 속하는 검찰은 그 점을 망각한 채 스스로 ‘경찰을 통제해야 할 주체’라는 착각에 빠져 독점적 영장청구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최근 정부의 개헌안 발표 이후 수사구조개혁에 대한 논의가 연일 뜨거워지고 있다. 만약, 문 총장의 주장대로,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이 유지되는 방향으로 수사구조개혁이 이루어진다면 어떤 문제점이 발생할까?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경찰이 사기 등의 혐의로 A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던 중, 현직 부장검사 B와의 금전 거래가 확인되었다. 이에 경찰은 뇌물수수 관련 의혹을 확인하고자 A와 관련된 계좌에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하였다. 그런데 검찰이 영장을 청구하지 않았다. 경찰은 영장을 다시 신청해 보지만 역시 검찰은 청구하지 않았고, 나아가 사건 자체를 검찰로 송치하라고 지휘한다.’

전형적인 ‘제 식구 감싸기’, ‘사건 가로채기’에 해당되는 위 사례는 지난 2016년 실제 발생했던 김형준 전 부장검사 스폰서 사건이다. 이런 경우 경찰은 더 이상 수사를 할 수 없다. 다시 말해 현 사법체계 하에서는 독점적 영장청구권을 가진 검찰에 대한 견제와 감시가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영국 액튼 경의 말처럼, 형사소송절차 전반을 지배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는 현재 우리나라의 제왕적 검찰제도는 이미 사회 전반에 수많은 폐해를 남겨 왔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갔다. 수사구조개혁이란 이와 같은 잘못된 수사구조를 바로잡아 특권과 반칙이 허용되지 않는 정의로운 사법시스템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그 핵심이자 필수불가결한 한 가지가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제도의 폐지이고, 이 부분이 포함되지 않는 수사구조개혁은 속된 말로 ‘앙꼬(=팥소의 일본말) 없는 찐빵’일 뿐이다. 이제라도 검찰은 주요 선진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점적 영장청구제도에 더 이상 집착하지 말고, 시대적 요청에 부합하는 국민을 위한 시선으로 수사구조개혁 논의에 동참해 주기를 바란다.

이준영 울산지방경찰청 수사과 수사1계 경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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