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교사’
‘꼰대 교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4.11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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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0년대에 고등학교를 다녔던 이들에게 ‘그 시절의 학창시절’ 하면 제법 많은 추억들이 떠오를 것이다. ‘학교급식’이라는 말은 세상에서 존재도 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던 만큼 점심시간이면 각자의 도시락을 들고 다니면서 같은 반 친구들의 도시락 반찬은 기본이었고, 옆 반 교실에까지 원정을 다니던 ‘도시락 원정대’와 수업시간에 책상 밑에 숨겨두었던 도시락을 몰래 꺼내 교과서로 가리고 먹던 웃음 가득한 추억 말이다. 1997년 ‘교련’ 과목이 학교별 선택교과로 되기 전까지는 얼룩무늬 군복 대신 흑백무늬 훈련제복을 입고 ‘목총’으로 총검술이며 집체훈련을 받기도 했다.

그 시절에는 학교마다 ‘꼰대’로 불리는 선생님이 최소 한두 분은 계셨다. ‘꼰대 선생님’들은 대체로 수학이나 화학처럼 학생들이 싫어하는 과목을 담당하는 연세 지긋하신 남자 선생님들이 많았다. 지금도 생각나는 고등학교 시절의 수학선생님은 수업시간이면 반 아이들 모두가 다 알 수 있을 때까지 수학공부를 독하게 시키셨다. ‘꼬장꼬장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수학을 못하는 친구들 한 명 한 명까지 어떻게 해서든 수학문제를 풀어오게 할 만큼 당신의 수학과목에 대해서는 고집이 강하셨다. 수업시간에 과제를 다 풀지 못하면 점심시간뿐만 아니라, 저녁시간이나 야간자율학습시간에까지 문제를 풀어서 교무실로 검사를 받으러 오게 만드셨다.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는 시간까지 퇴근하시지 않고 교무실에서 학생들의 수학 과제를 세심하게 챙겨주신 것은 물론이다.

몇 해 전 케이블방송에서 상영된 드라마에서 ‘꼰대’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나온 적이 있었다. 꼰대들의 유쾌한 인생찬가를 표방하던 ‘디어 마이 프렌즈’도 그랬고, 직장인들의 삶과 애환을 다룬 웹툰을 드라마로 꾸며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주었던 ‘미생’이라는 작품도 그랬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꼰대들’은 두 가지 모습으로 비쳐졌다. 첫 번째 부류는 자신의 삶과 생활에 대해 애착을 갖고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또 다른 부류는 상사의 입장에서 아랫사람들을 함부로 막 대하면서 좋은 결과나 업적은 모두 자기가 제안한 아이디어나 업무 능력 덕분이고, 그 반대 결과 같은 부서의 다른 직원들 탓으로 떠넘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로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전자보다 후자 쪽의 ‘꼰대 문화’를 겪게 되는 경우가 더 자주 있다. 학교 또한 일반인들의 직장처럼 교사들에게는 교육활동과 직장활동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곳이다. 어쩌면 교사들은 스스로가 꼰대가 될 수도 있고, 타인의 꼰대 행위를 겪게 될수도 있다. 스스로가 꼰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은 학생들에게 또 다른 ‘꼰대 교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타인의 꼰대 행위를 겪는다는 것은 학교 내 관리자들로부터 그런 불편한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을 말한다. 결국 교사들은 꼰대가 될 수도, 꼰대 행위를 당할 수도 있는 이중적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자리라는 뜻이다.

갈수록 사고방식과 생활패턴의 변화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해야만 하는 교사들로서는 자신의 학창시절과는 비교하기 힘들만큼 바뀌어 가는 학생들의 생각과 호기심에 중심을 맞추어야 하고, 그러려면 늘 긴장의 연속선상에 놓이고 만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이돌은 이름이라도 알고 있어야 되고, 아이돌의 노래를 다 외우지는 못해도 중요한 한두 구절 정도는 읊조릴 줄 알아야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춰줄 수가 있다. 게다가 신규 교사처럼 경력이 낮은 교사들의 생각도 이해해 주려면 그들의 마음까지도 살펴보아야 할 판이니, 경력 많은 ‘노땅’ 교사들의 처신은 갈수록 힘들어진다. 그래도 가끔씩은 TV드라마의 주인공이 말한 것처럼 “그래, 나 꼰대 맞다. 근데 꼰대가 뭐 어때서?”라고 외치며 아이들과 젊은 교사들에게 때로는 꼬장꼬장하고 쓴 소리도 내뱉을 수 있어야 첫 번째 부류처럼 제대로 된 ‘꼰대 교사’가 되지 않을까 싶다.

김용진 명덕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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