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공부하고 문호도 활짝 개방할 겁니다”
“좀 더 공부하고 문호도 활짝 개방할 겁니다”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8.04.03 22: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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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암 울산향토사연구회장
창립이후 32년 몸담은 연구회
2016년부터 2년째 회장직 맡아
‘투 잡’ 가진 전문농사꾼
요즘은 새벽부터 논에 나가
‘향토사보’ 비판 겸허히 수용
“토론 제의 들어
▲ 김석암 울산향토사연구회장.
이유수 선생 추모비, 4월 7일 건립

“鄕里(향리)의 역사가 분명하여야 國史(국사)에 자양분을 올릴 수 있는데 여태 地域史(지역사)를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어 한국사는 편협하니 올바른 궤적을 찾지 못하였다. 평소 이를 간파하고 愛鄕心(애향심)으로 필생을 이 지방 鄕土史(향토사) 연구에 몸 바친 분이 계시니 곧 故(고) 이유수 선생이시다.…”

오는 7일 오전 11시 경북 경주시 외동읍 순금산 묘역에서 제막식을 갖는 현곡 이유수(見谷 李有壽) 선생 추모비의 앞부분 글이다.

이유수 선생(1926~2007)이라면 1986년 1월에 울산향토사연구회를 창립, 13년간 회장직을 맡아오면서 울산향토사의 초석을 다진 분이다. 혹자는 선생을 ‘문헌을 통한 사료비평으로 울산의 정체성 확립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분’이라고 평한다.

현곡 선생 추모비의 비문(碑文)은 수필가 최이락 씨가 짓고 제서(題書)는 서예가 이권일씨가 맡았다.



회원 십시일반 모금, 중국서 제작

연구회가 창립되던 그해 가을에 회원으로 가입, 32년째 몸담으면서 2016년 12월부터 모임을 이끌어오고 있는 김석암 울산향토사연구회 회장(60). 그를 ‘궁거랑 벚꽃 한마당’이 무르익어 가던 지난달 31일 오전, 궁거랑이 코앞인 남구 삼호동자치센터에서 만났다.

화제의 첫머리는 자연스레 현곡 선생 추모비 건립 이야기가 장식했다. 건립비용 800만원은 회원 29명이 십시일반으로 모았다고 했다. 그런데 제작은 이상도 전 회장이 중국에 가서 마무리했다. 국내 제작비가 만만찮았던 탓이다. 300만원은 제작비로, 나머지는 통관·운송비로 들어갔다.

3월 한 달 동안은 시간 나는 회원들이 한 주도 안 거르고 주말마다 선생의 묘역을 찾았다. 잔디를 새로 입히고, 가지치기도 하면서 묘역 정화 작업에 나섰다. 현곡 선생의 자제분들도 일손을 거들었다. 추모비 건립을 앞둔 전초작업이었다. “순금산을 등에 업고 경주 모화 동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명당자리지요.” 김 회장의 말이다. 200평 남짓 널찍한 묘역의 쌍분(雙墳)에는 선생의 부인 김말봉 여사도 함께 영면하고 있다. 고향이 경주시 월성구 현곡면인 선생은 김 여사와의 사이에 3남 2녀를 두었다.

선생의 묘역은 김 회장이 살고 있는 웅촌 하대마을에서 차로 25분 거리. “범서IC를 거쳐 관문성을 지나 외길을 따라 가다 보면 바로 만날 수 있습니다.” 추모비 건립식이 있는 4월 7일, 회원들은 오전 9시까지 집결하기로 했다는 귀띔이었다.



웅촌 하대마을 17대째 터줏대감·농군

화제를 김 회장의 개인사(個人史)로 돌렸다. 무표정한 줄로만 알았던 그의 얼굴에 모처럼 미소가 번졌다. “김석암(金石巖)을 경상도식 우리말로 풀이하면 ‘쇠돌바우’ 아닙니까? 어릴 때는 집에서 그냥 ‘바우’라고 불렀는데, 호적에는 할아버지께서 ‘石巖’으로 올려놓으셨지요.” 옛날 어른들이 흔히 그랬듯이 무병(無病)하고 명(命)이 길라고 지어준 이름 같았다.

김 회장은 ‘딸 많은 집’의 7남매 중 외아들로 자랐다. 위로 누님이 다섯, 아래로 여동생이 하나라 했다. “그런데 아들을 중히 여겼던 옛날 어른들은 딸자식 이름도 아무렇게나 지었던 것 같습니다. 바로 손위 누님과 여동생 이름이 그런 식이었으니까….”

김 회장의 주소지는 울주군 웅촌면 하대길 10-3(하대리). 흥미로운 것은 김 회장이 이 마을의 터줏대감이자 농업인이란 사실이다. 장장 17대째 토박이로 살아오고 있는 것도 특기할 사항이다.

학성고등학교(6회)를 거쳐 동아대 원예학과를 나온 그는 지금까지 농사일에서 손을 뗀 적이 없다. “논농사인데 지금은 한 25마지기 되지요. 많을 때는 50마지기를 감당한 적도 있었지만….” 논 한 마지기가 661㎡이면 25마지기면 1만6천528㎡이다. 그런 말을 들어서일까, 진솔하고 우직해 보이는 농군의 체취가 그의 몸에서 물씬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그의 수상 경력에는 대통령 표창이 하나, 장관 표창이 셋 있다. 그중에서도 2015년 11월 15일자 ‘농림축산식품부장관 표창’은 농사꾼 김석암에게 주어진 표창이다. 주요활동 이력에는 (사)한국농업경영인회 울산시부회장(1996.12∼1998.12)과 (사)전국농업기술자협회 울산시연합회 감사(2014.1∼현재)도 들어가 있다. 20대 후반에는 고(故) 홍수진 울산MBC 피디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 농사일로 출연한 적도 있었다.



농사일에 회사 과장직까지 ‘투 잡’

김석암 회장은 고향마을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다. 울산에서도 대표적인 역사유적지의 하나로 손꼽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마을 뒷산은 삼한시대 고분 유적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김 회장은 30대 초반에 마을이장을 7년간(1988.3.4 ∼1995.3.28)이나 지내면서 체험한 이야기들을 잊지 못한다.

“1991년과 1992년 부산대에서 우리 마을로 학술조사를 하러 나왔지요. 학술조사라 하면 긴급발굴이니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지요. 특히 1992년 여름, 2차 학술조사 때는 발굴 성과가 대단했습니다. 그때 30대이던 제가 마을이장을 맡고 있었는데, 저도 기쁜 나머지 학술조사단 20여명에게 숙식을 실비로 제공했고, 몇 분하고는 그때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하튼 그는 지금도 농사꾼이다. 새벽 5시 반이면 바깥으로 나간다. 봄철인 요즘은 논을 갈아엎고, 거름을 뿌리고, 산에 나무를 심고, 밭작물을 손보기도 한다. 그렇다고 전업농부는 아니다. 엄연한 일자리가 하나 더 있다.

그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직함은 부산 금정구에 있는 ‘유한회사 전일연마’의 품질관리부 과장. 선박용접용 그라인딩 휠 등을 제작하는 업체로 2011년부터 출근하고 있으니 햇수로 벌써 8년째다. 그래도 벼농사 짓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주5일제 덕분에 토·일요일은 쉴 수 있어서 더욱 그렇다.



“외부의 비판적 견해 겸허히 수용”

말머리를 다시 울산향토사연구회 쪽으로 돌렸다. 통상적인 얘기는 일부러 빼고 뼈 있는 질문 몇 가지를 던졌다. 돌아온 반응은 의외였다. 속이 깊고 통이 크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픈 질문’은 크게 세 가지. ‘천황산(天皇山)’의 명칭에 대한 현곡 선생의 지론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밀양지역 향토사가들의 비판적 시각, 현곡 선생의 ‘울산 매귀악’ 논고를 겨냥한 일부 전문가의 부분적 반론, ‘향토사보(鄕土史報)’에 실리는 글로 인해 이따금 제기되는 오류 시비 등에 관한 질문이었다. (여기서 향토사보란 울산향토사연구회에서 1988년부터 회원들의 글을 모아 연 1회 펴내는 회지를 말한다. 지난해까지 28집이 나왔고, 1∼17집은 현곡 선생의 책임 하에 발간이 됐다.

“비판적 견해, 모두 겸허히 수용합니다. ‘글 똑 바로 써라’는 말도 달게 듣겠습니다. 이유수 선생님이나 우리 회원들의 글이라고 해서 왜 티끌만한 오류도 없겠습니까? 만약 토론 제의가 들어온다면 흔쾌히 응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울산시사든 군지든 읍면지든 오류가 보이고 요청이 들어오면 우리가 바로잡는 작업에도 협조할 겁니다.”

울산향토사연구회는 매월 한 차례 모임을 갖는다. 월 회비는 2만원. 홀수 달엔 회의를 하고 짝수 달엔 국·내외 사적지나 문화유적지 답사에 나선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투 잡’을 가진 김 회장 취임 이후론 주로 국내 답사에 치중하는 경향이 짙은 것.

“앞으론 ‘공부’에 중점을 둘 생각입니다. 사실 그동안 공부 쪽에는 좀 소홀하고 현상유지에 만족하지나 않았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이유수·김송태 회장님 같은 분들이 연구회를 이끌 당시와 비교해보면 뚜렷한 차이를 느끼게 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문호도 활짝 개방할 계획입니다.”

취미는 바둑. 아마 3∼4단 실력이다. 그를 잘 아는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은 김석암 회장을 이렇게 평한다. “정말 울산을 사랑하고 부지런한 분입니다. 선공후사(先公後私)가 확실한 분이고요.”

10년 가까이 정계에 몸담은 적도 있었다. 제2대, 3대 울주군의원(1998.7.1?2006.4.19)을 거쳐 강길부 국회의원 보좌관(4급 상당)과 민주당 계열 울산시당 사무처장(2007?2009)을 지낸 것이 그의 정치이력의 전부다.

충청도 예산이 고향이자 1년 연상인 조규문 여사(61)와의 사이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글=김정주 논설실장·사진=윤일지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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