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도 사랑하는 정치인을 기다리며
동물도 사랑하는 정치인을 기다리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4.03 22: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도의 성인으로 국민적 추앙을 받는 정치인이자 비폭력운동가인 마하트마 간디(1869∼1948)는 “한 국가의 격은 그 나라의 국민들이 동물들을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약자들은 물론 말 못하는 동물들까지 배려할 줄 아는 사회야말로 진정 정의로운 사회라는 사실을 함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는 어떠할까요?

유기견의 통계수치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포경을 금지한 법을 예사롭게 위반하는 사례들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행동을 놓고 갈등을 겪는 일상 역시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자신의 애완동물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는 것도 동물을 사랑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그리고 물리적 행동뿐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폭력적 언어들도 동물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반려견 1천만 시대에도 여전히 우리는 개를 욕설에 이용합니다. 자신과 뜻이 다른 사람을 비난하기 위해 죄 없는 개의 행동에 비유하는 일도 다반사입니다. 아무튼 동물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품격은 아직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그리고 이 같은 대부분의 악습들은 어른들의 입에서 시작됩니다. 깊이 성찰하지 않고 내뱉는 어른들의 말은 반드시 사회적 상처를 남깁니다.

상흔은 찰나이지만, 회복하는 시간은 매우 길거나 영영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사회지도층의 말은 더 깊은 상처를 남기기에 더욱더 신중해야만 합니다.

최근 우리나라의 저명 정치인이 TV에서 한 국가기관을 “광견병에 걸린 미친 개”에 비유했습니다. 설령 한 마을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는 개가 병에 걸렸다는 의심이 든다고 칩시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옳을까요? 선진사회 국민이라면 당연히 정확한 진단부터 내리고, 예방주사를 맞히고, 마을의 사람들과 다함께 보살피고 키워나가지 않을까요?

반대로 야만적 사회와 국민이라면 어김없이 매와 몽둥이로 다스리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라도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적어도 한 사회를 이끄는 정치인이라면 “몽둥이가 약”이라는 그 폭력적인 언행을 우리의 아이들이 보고 듣게 해서는 아니 됩니다. 아무리 정치인의 정치적 셈법이라 하더라도 결코 그것만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동물을, 사람을, 그리고 한 조직이나 시스템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때려서 고치겠다는 것은 합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인간적이지도 않습니다.

모든 것을 떠나서 우리의 미래세대가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먼 나라 간디의 평전이 아닌, 대한민국 정치인의 평전을 우리 아이들에게 읽어 줄 수 있는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황지연 남부경찰서 생활안전과 신정지구대 경장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