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친화도시
함께 사는 친화도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4.02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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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10여 년 전 어린아이와 함께 일본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작은 쇼핑몰의 화장실을 다녀온 남편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 남자화장실에 기저귀 교환대가 있어”라고…. 그 당시 우리는 외출할 때 아이를 돌보는 수유실이 따로 있는지, 기저귀 교환은 어디서 하는지가 관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빠가 아기를 돌볼 수 있는 공간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어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당시 일본 여행 중에 필자와 남편은 누구랄 것도 없이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쾌적한 환경에서 분유를 먹이거나 기저귀를 갈 수 있었다. 그 뒤로 우리나라에서도 도서관, 행정기관 같은 공공시설이나 백화점, 대형할인점 같은 곳의 남자화장실에 기저귀 교환대가 만들어졌고 최근엔 아빠가 아기띠를 두르고 외출하는 모습을 더 자주 볼 수 있게 되었다.

남자화장실에 기저귀 교환대가 생긴 것은 아빠를 위한 일일까? 아니면 엄마를 위한 일일까? 아빠가 아기를 돌보기에 편리한 환경은 아빠의 불편함을 덜어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아이 돌봄 환경이 좋아지면 엄마의 사회참여 기회가 늘 수 있고, 육아의 부담을 부모가 함께 지는 사회가 된다. 이를 두고 엄마와 아빠 중 어느 한쪽 편에 이익이 된다거나 어느 한쪽을 위한 정책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많은 도시에서는 현재 추진하고 있는 정책이나 도시의 지향점을 나타내기 위해 ‘여성친화도시’, ‘보행친화도시’, ‘고령친화도시’, ‘아동친화도시’와 같은 용어를 곧잘 활용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지향점을 국제공인기관을 통해 인정받고 그 세부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인증기관의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다보니 여성과 남성, 보행자와 차량, 노인과 청년, 아이와 어른으로 정책이 구분되는 것처럼 보여 어떤 ‘편’이 만들어지고 그 편에 들지 못하면 정책에서 배제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앞서 예로 든 필자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어떤 부분에 비교적 취약한 계층을 배려하는 정책이라고 오직 그 편만 위한 정책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아빠에게 편리한 아이 돌봄 환경은 가족의 생활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부모의 역할변화를 통해 모두가 함께하는 사회로 바꿀 수 있다. 보행자를 위한 교통시설 조성과 안전시설 확보는 운전자의 안전도 함께 보장하고, 보행하기 편리한 환경은 대중교통 이용률을 높이기도 하며, 쾌적한 보행환경은 정주공간 전체를 모든 계층이 살기 좋은 공간으로 바꿀 수도 있다.

노인인구가 많아지면서 관심이 늘고 있는 ‘고령친화도시’는 단순히 누구나 고령자가 될 수 있으므로 관심을 가지자는 개념이 아니다. 고령자가 증가함에 따라 기반시설, 의료·복지, 소비, 여가활동 등 여러 분야에서 나타날 수 있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연령에 따른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면서 나이에 관계없이 모두 함께 조화로운 사회로 만드는 것이 목적일 것이다.

특정계층을 위한 도시처럼 보이는 여러 ‘친화도시’들도 따지고 보면 모든 시민이 나이나 성별, 사는 장소,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어떤 정책에서 소외되거나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울산에서도 여러 친화도시를 겨냥한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친화도시는 특정분야가 아닌 시민과 공간, 거버넌스 부분을 다루는 총괄적 개념에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시민계층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하며, 도시공간간의 격차를 해소하고 맞춤형 적정시설을 확보하며, 여러 참여주체 및 조직의 적극적인 참여와 투명성이 확보된 거버넌스를 확충할 필요가 있다.

친화도시는 편을 갈라 적대적인 다른 편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차이가 있음으로 해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편가름을 지양하고, 또한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공감함으로써 본래는 함께 살아가는 같은 편이었음을 알아가도록 하는 것이 친화도시이다.

이주영 울산발전연구원 도시공간팀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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