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자정리(玄羽者定離) 백우자필반(白羽者必返)의 4월
현우자정리(玄羽者定離) 백우자필반(白羽者必返)의 4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4.01 21: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곶감으로 걸어둔 365일을 하나둘씩 빼어먹다 보니 어느덧 274개만 남은 4월이 시작됐다. 4월은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의 달이다. ‘만남은 반드시 헤어짐을 전제로 한다는 말이 회자정리(會者定離)이고, 떠난 자는 기필코 돌아온다는 말이 거자필반(去者必返)이다.’ 이 표현이 어찌 사람에게만 한정된다고 단언하겠는가? 자연의 섭리가 그러하다. 사람 또한 그 속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으리라.

검은 깃이 떠나고 흰 깃이 돌아왔다는 표현도 회자(會者)와 거자(去者)의 확대와 다르지 않다. 겨울이 가면서 3월이 떠나가고, 4월이 오면서 봄이 돌아왔다. 며칠째 기온이 높아졌다. 헤어져야할 것이 두터운 외투라는 말이 실감난다. 쏘옥 올라온 쑥은 봄 도다리와 연인이 되어 쑥국으로 돌아왔다. 겨울은 뒤돌아보지 않고 떠났고 봄은 앞만 보고 돌아왔다. 건조함이 가고 촉촉함이 왔다. 침묵이 가고 웃음이 왔다. 무거움이 가고 가벼움이 왔다. 현우(玄羽) 떼까마귀가 떠나고 백우(白羽) 백로가 돌아왔다. 현조(玄鳥·제비)가 다시 온 것을 보면 검은 깃이라 하여 반드시 가는 것은 아니다. 흰 죽지(잠수성 오리)가 떠난 것을 보면 흰 깃이라 하여 반드시 오는 것은 아니다.

어디 3월이 갔다고 가는 것만 있겠는가? 피는 것, 지는 것, 드러남, 그리고 움직임도 있다. 숨었던 것이 돋아나고 쌓였던 것이 녹는다. 멈추었던 것이 돌고 다시 흐른다. 게으른 한(閑)농부가 돌아가면 부지런한 권(勸)농부가 돌아온다. 가는 것보다 오는 것이 많다. 겨우내 정숙(靜肅)이 4월의 골목길을 도는 순간 장외홈런인 듯 ‘와지일성(?地一聲=뜻밖의 일에 놀라 지르는 큰 소리)’이 곳곳에서 ‘악(愕)’으로 춤춘다. 새벽 찬 기운 속에서도 지빠귀와 딱새와 멧새는 울음소리로 찾아온다. 개나리, 유채, 산수유, 황어는 노란색 옷차림으로 돌아오고 명자, 동백은 정열로 돌아온다.

쇠물닭도 4월이 반가운지 연신 꽁지를 파릇파릇 튕기며 연밭 이 구석 저 구석에서 먹이 찾기에 바쁘다. 남풍을 따라온 사랑 탓일까, 둘레길을 걸어온 탓일까, 콧잔등부터 이마까지 짙어진 홍조를 감추지 못한다. 정열의 포인트 액판(額板=물닭이나 쇠물닭의 윗부리∼이마에 걸쳐 있는 깃털 없이 딱딱한 부분. frontal shield)이 하루가 다르게 붉은 명자꽃으로 돌아온다.

춘치자명(春雉自鳴). 장끼는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울어 4월을 알린다마는 호사다마(好事多魔)라, 구설수에 오를까 심히 걱정된다. 제비가 태화강을 목욕탕삼아 수제비 치기에 여념이 없는 한낮에 일찌감치 삼호대숲에 자리 잡은 테너 왜가리의 목소리는 건강한 자식의 탄생을 예고한다. 직박구리는 무슨 좋은 기별을 들었는지 벚꽃 일산(日傘) 아래 여유롭게 황제 꿀식사를 멈추고 벚꽃 잎 흩뿌리는 산화락(散花落) 화동(花童)이 되어 날아간다.

궁거랑 줄선 벚나무는 4월을 기다린 듯 겨우내 준비한 화등(花燈) 하나씩을 들고 나와 밤을 낮으로 밝히고 섰다. 허세 부리기 2등 하라면 서러울 멧비둘기는 슬쩍슬쩍 황조롱이 눈치를 보며 공중에 높이 떠서 브이(V)자를 과시라도 하듯 날갯짓이 잦아지는 4월이다. 겨우내 립스틱 짙게 바르고 나들이 잦던 ‘붉은부리갈매기’는 주택담보대출 이자에 신경이라도 쓰이는지 입술이 점차 검게 타들어간다.

삼호대숲은 태화강이 완성한 생명의 공존과 탄생의 아름다움의 산실이다. 겨우내 수놓았던 까만 조약돌 같은 떼까마귀는 삼호대숲을 떠나 허공에 흩어져 돌아오지 않고 이제 윤 초시 증손녀가 함께 묻어 달라 했던 분홍 스웨터가 하얀 원피스로 변하기라도 한 듯 백로가 되어 목화로 피어나고 있다. 청딱따구리는 제철을 맞은 양 삼호산에서 ‘딱따그러’, 입화산에서 ‘딱딱’ 생나무를 파는지 종일토록 바쁘다. 비바리 물닭은 일상의 자맥질을 오늘만은 그만두고 물 빠진 자갈밭에 아예 배를 깔고 졸음을 즐긴다. ‘소리쟁이’는 두더지마냥 태화강변을 온통 들쑤셔서 녹색 미소를 감염시킨다.

새벽을 기다렸다는 듯이 울음 우는 지빠귀와 딱새의 노랫소리가 돌아왔다. 산수유, 민들레, 개나리가 노란색으로 돌아왔다. 명자, 동백은 붉은 색으로 돌아왔다. 벚꽃, 앵두꽃, 살구꽃, 매화꽃은 흰색으로 돌아왔다. 청보리, 마늘, 파, 미나리는 녹색으로 돌아왔다. 제비꽃, 자목련은 자색으로 찾아왔다. 삼호산은 낙목한산(落木寒山)이 떠나면서 녹음방초(綠陰芳草)로 돌아왔다.

여명의 태화강변을 걷자. 태화강을 오른쪽에 두고 걷자. 고기비늘같이 숱은 망념이 씻은 듯 지워질 것이다. 태화강을 왼쪽에 두고 걷자. 희망과 행복이 물밀 듯 밀려들 것이다. 4월은 삼동 겨우내 남몰래 찌운 살과도 이별해야할 절호의 찬스이다. 검은 깃이 떠나고 흰 깃이 돌아오는 현우자정리(玄羽者定離)요, 백우자필반(白羽者必返)의 달 4월의 풍경들이다. 오는 봄을 그냥 맞으려 하지 말고, 내 손으로 만들고 내 발로 찾아 나서자.

김성수 조류생태학 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