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의 시네에세이]처칠과 나 -‘다키스트 아워’’
[이상길의 시네에세이]처칠과 나 -‘다키스트 아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3.29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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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다키스트 아워' 한 장면.

내 초등학교 시절 우리 집에는 40권 분량의 세계위인전집이 있었다. 80년대였던 그때 당시만 해도 책을 파는 방문판매원들이 간간히 동네를 찾았는데, 어머니는 나도 책 속 위인들처럼 훌륭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서 큰마음 먹고 사주셨다.

하지만 독서보다는 친구들과 밖에서 노는 걸 더 좋아했던 나는 위인전집에는 아예 손도 대지 않았고, 결국 어머니만 그걸 다 읽고 말았다. 공부는 안하고 놀기만 한다고 자주 혼나던 시절이었는데 그 때마다 어머니는 “공부하기 싫으면 위인전이라도 좀 읽어라”면서 자주 다그치셨다. 그러면서 꼭 언급하셨던 위인이 바로 영국 수상이었던 ‘처칠’이었다.

40명이나 되는 위인들 중에 어머니가 유독 처칠을 자주 언급하셨던 건 이유가 있었다. 어릴 적엔 꼴통이었던 처칠이 커서 위인이 된 것처럼 공부보다는 노는 걸 더 좋아했던 내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고 싶으셨을 테지. 어렸어도 그 마음을 잘 알았던 나는 ‘이순신’편이 더 당겼지만 결국 ‘처칠’편을 먼저 읽게 됐다. 내 인생 최초의 위인전이었다.

다 읽고 난 후의 내 느낌은 사실 그랬다. 위인은 어릴 적에도 남달랐다는 것. 특히 라틴어에 소질이 없어 선생님으로부터 “머리 나쁜 구제불능”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처칠이었지만 그것마저도 위대해 보였다. 결과는 위인이니까. 하다못해 똑같이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노는 걸 더 좋아 했지만 처칠의 그건 특별해 보였다. 마치 위인이 되기 위해 놀았다고나 할까. 그러고 40여년이 흘렀고, 난 이제 위인전이라 하면 그냥 웃고 마는 불혹의 나이가 됐다.

그런데 며칠 전 우연히 한 지인의 추천으로 <다키스트 아워>라는 영화를 보게 됐다. 영화는 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전시 내각을 구성한 영국 의회가 무능한 수상 체임벌린(로널드 픽업)을 대신해 처칠(게이 올드만)을 수상으로 선출한 뒤 히틀러의 독일 군대에 맞서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러니까 영화는 처칠이 수상에 오른 뒤 폴란드와 벨기에, 프랑스까지 접수한 독일군의 막강한 화력 앞에서 협상을 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중론을 이겨내고 결사 항전을 결정하는 과정까지만 묘사하고 있다. 모두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조금 의외였던 부분들이 제법 있었다. 아니, 어느 정도는 예상한 일이었는데도 드라마적인 구성을 통해 그 때 당시의 디테일한 모습들을 눈으로 확인하니 다소 충격적이었던 것. 처칠이 수상이 될 수 있었던 이유만 해도 그렇다. 그냥 여야 간의 정치적 계산이 깔린 차악(덜 나쁜)의 추대였고, 수상이 되기 전까지는 오히려 무능한 지휘관으로 지탄받았었다.

심지어 튀는 행동과 독선적인 성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그를 위인이라기보다는 영락없이 불완전한 인간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협상보다는 결사항전을 선택하는 과정도 그냥 히틀러를 극도로 혐오해왔던 자신의 취향 탓이 컸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그의 고뇌 어린 선택은 옳았고, 영불해협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영국과 독일간의 전쟁에서 영국은 파죽지세의 히틀러에 첫 패배를 안기는 성과를 거둔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마치 인간 같지 않은 놈들에게는 협상보다는 항전이 옳다고 말하는 듯하지만 고려시대 야만족인 거란의 침입 당시 적장 소손녕과의 협상으로 전쟁을 막았던 우리나라 위인 ‘서희’를 감안하면 그것도 꼭 정답은 아닌 것 같다. 사실 당시 영국이 독일에 맞서 승리할 수 있었던 건 바다가 사이에 있었던 이유가 가장 컸다고 한다.

그래 맞다. 위인도 그냥 ‘인간’일 뿐, 사는 건 다 비슷하지 않을까. 그렇게 불혹의 나이에 다시 접한 어릴 적 위인 처칠의 전설은 위대하기 보다는 많이 지쳐보였다.

2018년 1월 17일 개봉. 러닝타임 125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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