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논단] 시골장날 스케치
[제일논단] 시골장날 스케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12.01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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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정기적인 장날이 없다. 특히 요즈음에는 대형마트가 주종을 이루고 있어서 언제든지 필요한 물건들은 그곳에 가면 쉽게 살 수가 있다. 참으로 편리하다. 물건의 종류가 많아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카드 하나로 모든 것을 계산하고 기계 앞에서 기다려야 하는 모습은 단순하고 인정미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시골장날은 비록 어수선하고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모습이지만 구경거리가 많고 흥정을 하는 재미와 덤을 받는 고마움이 있어 더 좋다. 특히 사람냄새가 베여있는 꼬깃꼬깃 접힌 현금이 오가니 현실감이 있다. 나의 회사와 가까운 곳에 있는 조그마한 면 단위의 시골장날 풍경은 재미가 있다.

선글라스를 팔기 위해 자리를 펴 놓았고 손님이 이 물건 저 물건 만지작거려도 할아버지는 낮잠을 한창 즐긴다. 모양은 잔뜩 낸 안경이지만 가격은 아주 싸다. 어묵을 파는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손길이 펄펄 끓는 기름만큼이나 바쁘다. 부인은 열심히 반죽을 하고 남편은 그것을 규격에 맞게 잘라서 솥에 넣는다. 생선을 파는 아주머니는 싱싱한 횟감으로 먹어도 괜찮다고 나에게 호루래기를 권하지만 그것을 장만해 먹을 만한 곳이 없어 그냥 지나쳤다. 미꾸라지는 담겨져 있는 통 속을 뛰쳐나올 듯한 기세로 활발한 움직임을 한다. 추어탕이 생각난다. 친척이 시장에 와서 자신이 파는 무우를 사 가는 모양인데 하나를 덤으로 경운기에 실어준다. 하나를 더 주겠다는 친척과 괜찮다는 친척간의 가벼운 실랑이는 아름답다. 야채를 파는 할머니는 자기의 물건이 없어졌다고 “어느 년이 훔쳐 갔느냐”고 고래고래 고함질이다. 곧 한 쪽 구석에 있는 물건을 찾고서야 할머니는 머쓱해 한다. 때 늦은 점심을 먹는 과일가게 아저씨는 서서 국수를 먹고 있다. 손님들이 밀려오는 통에 밥을 제때 먹을 시간이 없었단다.

장터 한 가운데, 작은 숫강아지 한 마리가 먹이를 얻어먹으려 애를 쓰지만 순대집 할머니가 휘두르는 막대기에 맞을까봐 부리나케 도망을 간다. 한 쪽 다리를 들어 오줌을 싸면서 영역표시를 해 놓지만 그 개는 집을 나온 주인 없는 개로 보인다. 몸은 비쩍 말라 도망가는 모습이 측은하다. 학교를 마친 인근의 초등학교 조무래기들 몇 명이 얼음과자를 물고 조잘대며 걸어간다. 장날에 맞춰 시장에 나온 어머니나 할머니를 만나 군것질을 졸라댄다. 아직 춥지 않은 날씨와 어울리지 않는 어묵과 국물 그리고 붕어빵을 굽는 수레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빵이 되어버린 붕어 네 마리를 천 원으로 사서 입에 넣는다. 팥 맛이 좋다.

장날에는 특별히 정해진 장터가 없다. 특이한 물건을 가져 와서 자리를 펴면 그곳이 장터가 되는 것이다. 시장의 중심부에 자리 잡지 못하고 구석진 곳에 자리를 편 아저씨가 파는 물건은 참 빗이다. 대바구니와 작은 멍석도 있다. 병아리도 나와 있고, 토끼도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천막을 치고 국솥을 걸어 선지국을 끓이는 곳에서는 막걸리 판이 벌어져 있다. 장날에 물건을 팔러 온 사람과 사러 온 사람이 한데 어우러져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목을 축인다.

오늘은 내가 근무하는 회사가 있는 함안군 칠원면의 장날이다. 3일과 8일에 열리는 5일장이다. 시골 장날을 오랜만에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IMF보다 더 힘든 경제 불황이라고 난리지만 시골 장날에는 훈훈한 인심과 즐거움과 희망이 가득했다. 장터의 사람들은 그동안 넉넉하게 살지 못했고 언제나 빠듯하게 살아 왔기에 이 보다 더 가난하고 어려울 일이 없다. 5일만 기다리면 또 다른 장날이 온다는 생각만 하기 때문이다.

김태식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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