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잔에 단팥빵
커피 한잔에 단팥빵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3.27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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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다니는 대형서점 초입에 조그마한 빵집이 하나 있다. 상쾌한 어느 날 모닝커피 한 잔을 사러 가는 길에 우연히 발견한 나만의 퀘렌시아다. 큰 빵집도 아닌 그냥 가두에 있는 간이점에 불과하다. 흔히 말하는 장인이 하는 빵집도 아니고 그냥 20대 초반의 젊은이 몇 명이 하는 가게다.

빵이라 해봤자 케이크 같은 고급스러운 것은 있지 않고 그저 몇 가지의 식빵과 단팥빵, 소보로빵밖에 없다. 어느 빵집도 다 그렇겠지만 금방 나온 단팥빵은 맛깔스러운 빛에 정말 침이 돈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사주었던 단팥빵 맛, 그때나 지금이나 전혀 변함없는 맛이어서 마치 옛날로 되돌아간 듯하다. 그들의 빵 만드는 모습은 늘 즐겁지만 커피 한 잔에 갓 나온 단팥빵 하나 먹는 보통의 일은 나의 하루를 늘 행복하게 해준다.

나는 아침밥은 꼭 먹지만 한두 시간 일을 하다보면 좀 헛헛하여 단팥빵 하나를 먹는 습벽이 생겼다. 점심은 제대로 챙겨먹는 편이나 저녁은 그냥 대충이다. ‘점심은 황제같이 저녁은 거지같이’라는 말도 있듯 그렇게 먹는 것이 건강에 최고란다.

모닝커피는 몇 걸음 걸어 간이커피점에서 산다. 명품 커피점의 가격에 비하면 반값도 채 되지 않는 싼 커피지만 향기와 맛은 못하지 않다.

그곳에서 일하는 스텝들의 매너 또한 주인정신으로 가득하다. 바지 뒷주머니의 휴대폰이 아슬아슬하게 걸려있기는 하지만 젊은이답고 민첩해서 좋다. 상냥하게 응대하는 모습도 커피애호가들을 유쾌하게 해준다. 이 또한 ‘도시 속의 아름다운 정경’이 아닐까.

‘커피’는 자고로 향기와 맛을 동시에 느끼며 마셔야 제대로 음미하는 것이다. 코와 혀와 목젖으로 마신 후, 입과 목에 남은 여운의 맛까지 느낄 줄 알아야 한다. 커피는 갈증이 나서 마시는 음료가 아닐진대 커피 한 잔에는 사랑의 맛, 위로, 행복의 맛 등 '삶의 철학'이 듬뿍 담겨 있다.

커피의 맛은 천 번의 키스보다 달콤하다고 ‘바흐’가 말하지 않았나! 작곡의 원동력이라며 아침마다 60알의 원두를 갈아 마신 ‘베토벤’이 있는가 하면, 과하긴 하지만 하루 50잔의 커피를 즐겨 마신 극작가 ‘발자크’도 있으니 그것은 분명 신들린 기호물임에 틀림없다.

작가 ‘이효석’은 커피 한잔을 탐미하기 위하여 십리나 떨어진 나남(함북 청진시 남부지역)까지 다녀올 정도였다고 한다. 가을향기 듬뿍 나는 그의 걸작 에세이 ‘낙엽을 태우면서’(1938)에서 ‘낙엽 타는 냄새같이 좋은 냄새가 있을까? 갓 볶아낸 커피 냄새가 난다’고 커피를 강렬히 음미하고 싶은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시인 ‘신달자’는 이럴 때에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한다. ‘견디고 싶을 때’라고. 인고(忍苦)의 감각을 은근슬쩍 표현하고 있다.

혼자만의 공간도 좋지만 일상인이 공동으로 삶을 영위하는 공간도 좋다. 그곳에서 여유로운 생각을 하며 한 잔의 커피를 마시는 일은 더욱 행복한 일이 아닌가? 그럴수록 자아의 주관적 방향이 분명해지니까 말이다. 이렇게 아무런 신경 쓸 필요 없고 누구로부터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는 편한 날, 도시 속 현대인들이 모여드는 공간에서 한 잔의 커피를 음미해 보라! 일상을 사는 도시인들의 상(像)은 마치 빌딩숲 속 틈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의 형상과 유사하다.

야릇한 커피의 향과 맛에서 소소한 행복감에 젖을 때, 시들어가는 사람이나 위로받고 싶은 사람에게 다시 한 번 연소시켜줄 힘을 준다. 그래서 많은 문학 예술가들은 커피야말로 ‘창작’의 힘을 불태워주는 놀라운 연료로 생각하는 것이다.

김원호 울산대 인문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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