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기업 편지]마을에 들다
[마을기업 편지]마을에 들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3.26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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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치고는 볼까지 얼얼했던 이른 봄날. 주민 요청이 있어 현장 상담 겸 컨설팅을 하러 나갔다. 옛 마을은 으레 사람보다 나무가 원주민이다. 성동마을 언덕 위 감나무 집. 앞산을 품은 마당에 견고하게 중심을 잡은 커다란 감나무 한 그루가 맨몸으로 서 있다.

마을기업을 하고 싶다는 주민 몇 분이 모였다. 잠시 마을 이야기로 꽃을 피우다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연로한 어르신들이 고단한 새벽시장 나들이를 하시지 않아도 되게 작물 생산지인 마을에서 소비까지 하게 연결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가지 사업 아이템과 모델, 일의 우선순위와 과정을 말씀드렸다. 늘 그렇듯이, 주민들과의 만남은 예상한 시간을 훌쩍 넘기기 마련이다.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의 양을 미리 정해 두었다가 자를 수 없는 게 이 일의 고충이자 보람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충분한 소통의 시간을 가진다는 의미도 된다.

일어서려는 순간 벽면의 공간디자인에 잠시 시선을 빼앗겼다. 갈고리와 지폐, 끝이 휘어진 엉성한 살 사이로 지폐 몇 장이 걸려 있다. 필시 이 집과 사이가 좋은 지인들이 걸어둔 것이리라. 저 지폐를 걸면서 번영과 안녕을 기원했을 심성들이 이심전심으로 느껴졌다. 두어 군데 마을에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에 내 마음속의 갈고리와 마을기업을 떠올려 보았다.

필자는 모든 마을주민들이 4대 보험에 가입할 수 있을 만큼 눈앞의 경제적 성장이 보장되는 마을기업을 지향하지 않는다. 마을 일자리는 그러한 무리수를 둘 수 없는 여러 경영환경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결과만 요구하는 것이 정량적 평가라지만, 그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는다손 치더라도, 과정의 꾸준함과 성실함과 진솔함을 더 높게 보려고 애쓴다. 과정의 공평하고 정당함, 열려 있는 ‘함께의 가치’ 등 공동체를 향한 수평적 기업의 가치를 지닌 것이 참된 마을기업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 가치 위에 더딘 시간과 내공을 쌓아올려 4대 보험 혜택을 여러 주민들이 누릴 수 있는 기업으로 성장시켜야 한다. 그것이 바람직한 마을기업이다. 필자는 그러한 과정의 지속가능함을 공동체성에서 찾는다. 그것이 행정안전부에서 마을기업 육성사업 정책을 만들 때 고민했던 방점이었을 거다. 그러한 믿음에 뿌리를 두고 지금의 일을 선택했으며, 오랜 시간 현장으로 달려갔던 것이다.

얼마 전, 전국지속가능발전 사례집을 받았다. 제19회 전국대회에서 울산마을기업지원단이 시민들을 위해 추구해온 사업방향, 다양한 기획과 실천들, 추진한 활동들이 담겨 있었다. 예산은 늘 적었기에 직접 현장을 발로 뛰고 지역관계망을 씨줄, 날줄로 엮어 오지 않았던가. 긍정적 결과를 위한 과정의 진솔함이었다고 셀프로 동기부여를 해 보았다.

마을기업지원단 사업 전반의 활동을 알리기 위해 시작한 대회 준비와 발표로 수상 영예를 안았다. 전국 장려상을 받으면서 사례 스토리가 번역이 되어 유네스코에도 보낸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가슴이 뿌듯했다. 사업진행, 문화기획, 각종 평가와 행사를 진행하며 쪽잠을 잤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막상 사례집을 받고 보니 홍보 기회를 주었던 울산시 환경정책과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국민과 함께 열어간다는 지속가능한 미래,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주민이 있다. 마을이 있다.

일본 국화는 벚꽃이다. 일본에 벚꽃 관련주가 400여 종이 넘는 걸로 알고 있다. 아이디어를 실천으로 이끌어 시민생활 기반의 경제가 꽃피는 데는 다양성이 중요하다. 주민들의 작고 소소한 것에 큰 응원과 정성을 보여주자. 크고 빠르고 거대하고 폼 나는 것에만 집중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주민들의 소소한 일상을 연결하고 서로 세워주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러한 다양성에 바탕을 둔 생활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지속가능한 마을, 지속가능한 사회의 안에는 그러한 일상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박가령 울산경제진흥원 마을기업지원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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