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법치
정치와 법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3.26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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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政治)는 생물이다. 정치란 게 그렇다. 살아서 움직이는 생물 같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은 적이 되어 서로 등을 돌리기도 하고, 어제는 서로 적이었던 이들이 오늘은 같이 힘을 합치는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당연한 거다. 민주주의 하에서 정치란 게 원래 이념이나 지향점, 혹은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이들이 토론이라는 과정을 통해 절충점을 찾는 기술의 일종이기도 하기 때문. 그러니까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정치는 갓 잡아 올린 팔팔 뛰는 생선 같은 존재라는 거다. 역동적이다.

하지만 법(法)은 다르다. 법이 정치처럼 역동적이면 큰 일 난다. 물론 제정 단계에서는 법도 생물처럼 살아 숨 쉬며 변할 수 있겠지만 적용 단계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 무생물인 바위처럼 딱딱하게 굳어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만인 앞에 평등한 법이 될 수 있지 않겠나. 이 사정, 저 사정 다 봐주는 법은 법이 아니다.

이처럼 정치와 법은 본성이 완전히 다른 존재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에서 법과 정치는 대단히 가깝다. 법을 만드는 게 바로 정치고, 법조인이 정치판으로 뛰어 드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데 최근 울산에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로 본성이 다른 법과 정치의 이 아이러니가 몹시도 날뛰고 있다. 바로 김기현 시장과 경찰의 관계가 그것. 지난 16일 경찰은 북구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벌어진 레미콘 업체 변경 과정에서 압력을 가했다는 혐의로 시청 시장부속실과 건축 관련 부서 등 5곳을 일시에 덮쳐 압수 수색을 벌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날은 김 시장이 이번 지방선거 자유한국당 울산시장 후보로 다시 확정된 날이었다. 이에 자유한국당은 홍준표 대표까지 나서 정치적으로 기획 의도된 압수 수색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그러한 주장을 하는 데는 울산경찰을 이끌고 있는 황운하 지방경찰청장의 그간 행보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울산으로 부임한 후 황 청장은 이번 울산시장 선거에서 김 시장의 최대 경쟁자로 거론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송철호 변호사를 지난해 두 차례 만났다. 실제로 황 청장은 올 초 기자 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송 변호사를 두 번 만난 상황에 대해 명확하게 해명하기도 했었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 하지 않았던가. 설령 두 사람 간에 이번 압수수색과 관련해 어떠한 교감이 없었다 해도 의심받는 것에 대해서는 황 청장도 할 말은 없을 듯하다.

하지만 자유한국당도 지금 지나치게 법치를 정치로 몰고 가고 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할 듯하다. 경찰의 압수 수색이란 게 혐의를 토대로 죄를 찾아가는 과정일 뿐, 죄가 확정된 건 아니다. 다가오는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은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법을 적용하는 영역에 속하는 압수수색이 신중할 필요는 없다. 법은 무생물이어야 옳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기계적이어야 한다. 사람이나 상황을 가리기 시작하면 더 이상 법이 아니다. 법치가 정치가 되면 세상은 혼란스러워지기 마련이다.

물론 작금의 이 혼란을 유발했다는 점에서 황 청장도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울산현안과 관련해 아무리 조언을 구할 필요가 있어도 법 집행기관인 경찰이 유력 정치인을 만난다는 건 아무래도 보기 좋지 않기 마련. 법과 정치는 멀수록 좋다. 둘이 가까워지면 무생물이어야 할 법이 생물로 변할 가능성이 높지 않겠나. 때문에 자유한국당과 경찰 모두에게 이번 일과 관련해 개인적으로는 이런 조언을 해주고 싶다. 우리 더 이상 정치하지 맙시다. 그냥 법치로 갑시다. 시민들을 위해.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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