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夫妻)다리’…구삼호교&산전교
‘부처(夫妻)다리’…구삼호교&산전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3.25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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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 관찰·조사 때문에 구삼호교와 산전교를 찾는다. 주기적으로 찾다보니 두 다리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가 어느새 가슴에 자리를 잡았다.

태화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에는 신삼호교, 구삼호교, 십리대밭교, 태화교, 울산교, 번영교, 학성교, 명촌교, 그리고 울산대교가 있다. 그중에서 제일 오래된 다리는 구삼호교(舊三湖橋)다. 동천에는 동천교, 외솔교, 진장교, 병영교, 산전교, 삼일교, 상안교가 있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다리는 산전교(山田橋)다. 구삼호교는 남구 무거동과 중구 다운동을 이어주고, 산전교는 중구 동동과 북구 진장동을 이어준다.

구삼호교는 1924년생이다. 태화강에 최초로 건설된 이 다리는 삼호교(1959년)와 신삼호교(1990년)가 차례로 생기면서 오래됐다는 이유로 ‘구(舊)’자가 붙게 됐다. 2004년 9월 4일, 등록문화재 제104호로 지정됐다.

산전교는 1927년생이다. 과거에는 ‘병영교’로 불린 적도 있었다. 그 산전교의 보수공사가 추진된다는 기사를 읽었다. 철거하면 어쩌나 했는데 보수한다니 무척 다행이다.

구삼호교는 길이 230m, 폭 5m, 경간 9.6m로 설계와 감독은 일본인이 맡았고 노동력은 주민들이 제공했다고 전한다. 1990년 신삼호교 건설로 다운동 쪽 20m가 철거됐다. 산전교는 길이 135.65m, 폭 5m 규모다. 지난 2016년 정밀안전진단 결과 E등급 판정을 받아 현재 통행이 제한돼 있다. 보수·보강공사 이후에 통행이 재개된다고 한다.

구삼호교와 산전교 두 다리는 사람의 나이로 치면 구순이 넘었다. 갑자생 쥐띠(95세)인 구삼호교는 정묘생 토끼띠(92세)인 산전교보다 세 살이 많다. 구삼호교와 산전교는 인생으로 치면 세상일의 어려운 고비를 다 넘겼다. 산전(山戰)은 해방과 6·25를 거쳤고, 수전(水戰)은 태풍 사라(1959년)와 차바(2016년)를 겪었다.

사람들이 물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건널 수 있도록 다리를 놓는 노력과 실천을 ‘월천공덕(越川功德)’이라 부른다. 회심곡(回心曲)에서는 염라대왕이 ‘너는 생전에 깊은 물에 다리 놓아 월천(越川)공덕 하였느냐?’라고 망자에게 묻고 있다. 다리를 놓는 것을 예나 지금이나 공덕 중 으뜸으로 칭송하는 것이다.

‘홀어머니 다리’는 일찍 남편을 사별하고 어린 두 아들을 훌륭하게 키운 어머니를 위해 놓았다는 전설이 있다. 오랜 세월 과부로 지낸 어머니가 물을 건너 밤마실 다녀오는 것을 눈치 챈 두 아들이 손수 징검다리를 놓아 버선발이 젖지 않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다리는 가고, 오고, 만나는 장소이기에 숱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사이먼·가펑클(Simon & Garfunkel) 듀엣은 ‘Bridge over Troubled Water’란 노래에서 “거센 물살 위에 놓인 다리처럼 내가 당신을 편안하게 해 드릴게요”라고 했다. 험난한 물살(인생살이)에서 다리의 역할이 강조되는 노래다.

‘교(橋)’는 우리말로 ‘다리’이다. 다리는 일반적으로 두 개의 교각(橋脚·piloti) 위에 상판을 얹는 형식으로 만든다. ‘각(脚)’은 사람의 다리를 의미한다. 건축물의 다리와 사람의 다리가 같은 소리이기에 은유적 표현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라/ 둘은 내 것인데 둘은 누구 것인가?”(처용가 일부)

어머니가 어느 날 투정부리는 어린 여동생더러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동생이 슬프게 울었다. 오빠는 동생 곁으로 다가가서 “나도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 하던데…”라고 달랬다. 다리 밑으로 건너오는 것은 축복의 탄생이다. 그러기에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한다. 다리 위로 건너가는 것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넘는 것으로 슬픈 이별이다. 노제(路祭)를 다리를 건너기 직전에 지내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다리에는 ‘세움’과 ‘엎드림’이 함께한다. 교각은 세워야 하지만 상판은 엎드려야 한다. 다리의 본질은 엎드리는 것이다. 엎드림은 자기의 역할을 정확히 알고 모자람마저 알기에 원망과 불평이 없다. 다리의 역사를 보는 관점은 시대와 사람에 따라 다르다. 이런 맥락에서 구삼호교와 산전교 두 다리는 나에게 남다른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묘하게도 부모의 생년과 같은 해에 탄생했다. 그러기에 나는 ‘부처(夫妻)다리’라고 이름을 지었다. 조류 조사 나간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두 다리를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태화강과 동천이 주야로 명촌에서 만나 밤새로, 낮새로 훨훨 날아다니는 이야기도 흥미롭지 아니한가? 두 다리에 어떤 사물을 상징해서 이름을 붙여도 좋을 것 같다. 이를테면 ‘견우직녀다리’라고 부르면서 동천 처녀와 태화강 총각이 만나는 초월적 사랑의 이야기를 담으면 된다. ‘사랑다리’는 또 어떨까? 여성은 산전교, 남성은 구삼호교를 찾아가 만남을 기원하면 구태여 전안례(奠雁禮)를 앞세우지 않아도 백년해로가 보장될 것 아닌가?

수년 후면 백년을 바라보는 두 다리의 이야기가 정월대보름의 답교(踏橋), 무병장수 다리와 같이 시의적·시대적으로 걸맞은 다양한 문화콘텐츠 개발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김성수 조류생태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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