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들여다볼 때 보이는 행복들-‘리틀 포레스트’’
자세히 들여다볼 때 보이는 행복들-‘리틀 포레스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3.22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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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높이 날면 멀리 볼 수 있다. 또 빠르게 달리면 목적지에 더 빨리 갈 수 있다. 하지만 높이 날거나 빨리 달리면 자세히 보기는 어렵다. 높이 날수록 지상과는 더 멀어지기 마련이고, 빨리 달릴수록 주변 풍경도 후딱 지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마다 취향은 다를 수 있다. 높이 날아서 멀리 보거나 빠르게 달려 목적지에 빨리 가는 게 더 좋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임순례 감독의 신작 <리틀 포레스트>에서 주인공 혜원(김태리)이 그러했다.

혜원은 서울에서 임용고시를 준비하다 몇 달 전 시골 고향집으로 내려왔다. 그녀가 고향집으로 내려온 이유는 딱 하나. 배가 고파서였다. 가난한 취준생으로 늘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던 혜원은 문득 배가 너무 고프다는 생각에 시험이고 뭐고 다 재껴버리고 무작정 고향집으로 내려왔다. 허나 고향집에 그리운 엄마(문소리)는 없었다. 병환으로 아빠가 일찍 세상을 뜬 뒤, 엄마는 혜원의 수능이 끝나자마자 편지 한 장만을 남긴 채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위해 집을 나갔다. 해서 혜원은 어릴 적 엄마에게서 배웠던 각종 레시피를 기억해내며 혼자서 이것저것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어릴 적에 같이 자랐던 재하(류준열)와 은숙(진기주)이 가끔 집에 놀러오곤 했었다.

꼭 그런 건 아니겠지만 도시가 목적지나 결과에만 지나치게 집착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이는 거의 없을 듯하다. 뻔한 이야기지만 남들보다 앞서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때문에 도시인들은 늘 만들어진 걸 먹는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시간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 수많은 도시 취준생들과 합격을 놓고 치열하게 싸워야만했던 혜원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편의점 음식이라도 포만감이 느껴지도록 배를 채울 수는 있었다. 하지만 혜원은 늘 배가 고팠다. 그랬다. 혜원이 진정 고팠던 건 배가 아니라 ‘삶’이었다. 여유도 없었거니와 즐거움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런 혜원에게 서울서 먼저 내려와 과수원을 하고 있던 재하가 의미심장하게 말한다. “그렇게 바쁘게 산다고 문제가 해결 돼?”

이제야 밝히지만 <리틀 포레스트>는 귀농을 찬양하려는 게 아니다. 임순례 감독은 그렇게 촌스럽지 않다. 도시생활이 아무리 각박하다 해도 시골에서 산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건 감독 자신도 마찬가지일 터. 해서 영화는 그저 ‘낮게 날고 느리게 가는 것’의 장점들을 잔잔하게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장점이란 바로 앞서 말했듯 ‘자세히 볼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행복이라는 게 그렇다. 초콜릿처럼 크기나 모양이 다 다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우리에게 행복은 ‘성공’이라는 모양의 엄청나게 큰 초콜릿뿐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초콜릿 가루’는 무시하거나 쉽게 잊고 산다. 허나 어떤 크기와 모양이든 초콜릿에는 가루가 생긴다. 없어보이게 그걸 왜 주어 먹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 역시 재하처럼 이렇게 묻고 싶다. “그럼 그렇게 살면 문제가 해결 돼?”

지나친 달콤함은 당뇨를 부르기 마련. 분명한 건 초콜릿은 가루조차 달콤하다. 은은해서 오히려 더 좋을 때도 있다. 다만 그걸 찾기 위해서는 고도나 속도를 조금 낮춰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잘 안 보이니까. 신기한 건, 도시에서는 그저 시간 낭비고 귀찮기만 한 음식 조리 과정들이 이 영화 속에서는 행복이라는 두 글자와 겹쳐 보인다는 것. 어쩌면 행복은 이루거나 달성하는 게 아니라 눈을 크게 뜨고 찾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2018년 2월 28일 개봉. 러닝타임 103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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