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수컷 아닌 듯 수컷 같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남자, 수컷 아닌 듯 수컷 같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 이상길 기자
  • 승인 2018.03.15 22: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영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한 장면.
최근 국내에서도 들불처럼 번지는 ‘미투(#Me Too)’ 운동과 관련해 홍상수 감독은 아마도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간 내놓은 작품들을 통해 그가 한 결 같이 했던 이야기가 바로 “남자라는 것들이 원래 다 이래!”였기 때문.

그랬다. 그는 우리 사회 지도층으로 분류되는 고품격 지식인들도 예쁜 여자 앞에서는 어떻게 찌질해져 가는 지를 늘 적나라하게 그려왔다. 조강지처를 외면한 채 한 젊은 여배우와의 염문으로 사회적으로 여전히 지탄을 받고 있지만 작금의 시대상황에서 분명 홍상수 감독의 작품들은 여성들에게는 남성, 아니 수컷에 대한 좋은 참고서가 될 것 같다. 홍 감독은 아마 지금 속으로 여성들을 향해 이런 말을 곱씹고 있지 않을까. “내가 그렇게나 알려줬는데. 내 영화 좀 보시지.”

반면 남자들의 입장에서 홍상수 영화는 견디기 힘들다. 자신들의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마치 해머로 머리를 한 대 맞는 기분이다. 대체로 그의 작품에서는 지식인이랍시고 남자 영화감독이 최소 한 명 정도는 꼭 등장하는 편인데 비슷한 부류의 지식인들과 예쁜 여자가 낀 자리에서 나름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들로 꽃을 피우다 가끔 발끈해 설전을 벌인다.

하지만 결론은 언제나 ‘여자’다. 거룩한 지식인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발정난 수컷으로 돌변하는 데는 불과 1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기-승-전-잠자리’에서 기승전까지 내뿜던 빛나는 지식들도 결국 그 자리에 낀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함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홍상수 작품 중 수컷들의 그런 찌질함이 가장 빛난다. 아울러 작금의 사태를 미리 예언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 영화 속에서도 영화감독과 교수인 두 남자는 유창한 언변으로 잠자리에만 집착하다 속된 말로 골로 간다.

물론 우리 수컷들에게도 할 말은 있다. 한 때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많은 공감을 얻었듯 남자와 여자는 생물학적으로는 전혀 다른 종족이다. 사랑만 해도 여자에게 있어 그 끝은 ‘포옹’으로 완성될 수 있지만 남자는 힘들다. 대부분의 경우 ‘배설’까지 가야 만족한다. 어쩌겠나. 그게 바로 종족번식의 원동력인데. 멸종할 텐가. 해서 이병헌 감독의 <스물>이란 영화에서 바람둥이 치호(김우빈)는 절친 동우(준호)가 ‘사귀는 것’과 ‘애인 사이’, ‘사랑한다는 것’의 차이를 묻자 이렇게 대답한다. “사귄다는 건 만날 때마다 하는 거고, 애인은 하고 싶을 때마다 만나는 사이. 그리고 사랑한다는 건 만나면 여섯, 일곱 번씩 막 하는 거지.” 성적으로 수컷들의 욕망이 어느 정도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사가 아닐까 싶다. 결국 유부남의 몸으로 그 욕망을 이겨내지 못해 유력 대선 주자였던 정치인은 맛이 가버렸고, 한 유명 배우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확실히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하지만 남자도 여자의 미래다. 둘은 사랑이라는 인생 최대의 행복을 공유할 수 있는 사이이기 때문. 비록 수컷 아닌 듯 수컷 같은 남자들이지만 여성들아. 그렇다고 개나 고양이를 사랑할 건가, 혹은 침팬지를 사랑할 건가. 아니면 북극곰을 사랑할 텐가. 잠자리도 사랑의 한 형태일 뿐. 때문에 지금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미투 운동의 진짜 적은 남자들의 성욕이 아니라 권력이 아닐까. 성추행(성폭행)이 나쁜 건, 원래 남녀가 막 사랑을 시작할 땐 권력이 약자인 여자에게 있지만 성추행은 남자에게 있다는 것. 그가 권력자일수록 더욱 쉽지 않을까. 작금의 미투 운동 가해자들이 주로 권력자인 이유가 또 아니겠는가. 해서 여자 사람들이 이번 미투 운동을 통해 진정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바로 이거지 싶다. “권력으로 마음까지 얻을 순 없다. 그러니 제발 착각 좀 하지마라. 우리 여자들이 사랑하는 건 권력이 아니라 그냥 괜찮은 남자 사람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2004년 5월 5일 개봉. 러닝타임 87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