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한 수…지법의 ‘찾아가는 법정’
솔로몬의 한 수…지법의 ‘찾아가는 법정’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3.14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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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법이 ‘화해의 징검다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찾아가는 법정’, 다시 말해 ‘출장재판’을 통해 산골마을의 해묵은 분쟁을 원만히 해결해낸 것이다. 울산지법이 개원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찾아가는 법정’이 처음 열린 때는 지난해 7월이었고, 해결된 시점은 지난달이었다. 그리고 그 현장은 동구 서부동 새납마을이었다. ‘새납마을’이라면 울산의 대표적인 산골동네로 1960년대 현대중공업이 울산 동구에서 터를 닦을 무렵 근로자들이 판잣집을 지어 거주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그러나 30여년이 지나면서 법적 분쟁의 소지가 생기고 말았다. 1990년대 중반, 울산시가 주거환경개선사업으로 현재의 마을 모습이 만들어지긴 했으나 땅주인과 주민들 사이에 갈등의 불씨가 동시에 지펴졌던 것이다.

땅주인들은 31세대의 주민들에게 건물 철거와 토지 인도, 토지사용료 지급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장 갈 곳이 없는 주민들은 “마을이 생길 때 처음의 땅주인이 거주해도 좋다고 동의한 바 있다”며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이 문제는 법적 다툼으로 이어졌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울산지법이 꺼내든 히든카드가 바로 ‘찾아가는 법정’이었다. 재판부가 출장재판을 결정한 것은 핵심적인 진술에 나설 일부 주민이 고령이고 거동이 불편하다는 점도 참작이 됐다.

송사 처리를 떠맡은 재판부로서는 고민이 대단했을 법하다. 을(乙)의 처지에 놓이고 법적으로도 수세에 몰린 피고(판자촌 주민)들의 앞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재판부의 고민은 울산지법 관계자의 다음 말에서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그는 “이번 사건의 경우 피고들은 해당 토지를 점유·사용할 권리가 인정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법대로 하면(=법리적으로만 판단하면) 주민들이 수십 년 동안 살아온 삶의 터전을 하루아침에 잃을 수도 있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결국 ‘솔로몬의 한 수’는 재판부(울산지법 제13민사단독, 부장판사 서영효)가 제시한 ‘화해 권고’ 결정이었다. 다행히 원고(땅주인)는 물론 피고 대부분(31명 중 26명)도 이 권고안을 받아들임으로써 원고는 수년간 차임(借賃)의 기회가 생겼고, 주민들도 이주하기까지는 ‘발 뻗고 편히 잘’ 수가 있게 됐다. 양쪽 모두 만족스러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결과를 얻은 셈이다.

관계법은 재판이 기본적으로 법정에서 이뤄져야 함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장은 필요에 따라 법원이 아닌 장소에서 개정(開廷)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도 있다. 울산지법은 바로 이 점에 착안해 원고-피고를 설득,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법원은 재판과정에 법원으로 출석하기 힘든 경우 이를 판단한 다음 ‘찾아가는 법정’을 운영할 수 있다”는 대목을 지혜롭게 활용한 것이다. 출장재판, ‘찾아가는 법정’이 더 자주 열리게 된다면 사회적 약자들도 어깨를 힘을 줄 수 있는 날이 훨씬 앞당겨질 것이다. 재판부의 판단과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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