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정성 원리’
‘불확정성 원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3.12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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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 특히 미시 세계에서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정확히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론이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라고 한다. 쉽게 생각하면 추를 실에 달고 돌리면 추는 구심력을 중심으로 원운동을 한다. 이때 추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정확히 측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위치를 고정하면 속도로 인한 운동량을 측정하기 어렵고, 정해진 속도로 움직이면 정확한 위치를 측정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제 불확정성 원리는 과학에서만이 아니라 철학이나 사회학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인과에 대한 결정론 또는 운명론에서 자유의지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단어의 원뜻대로 무엇이든 명확하지 않고 여운을 남기는 결과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되지만 우리는 종종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거나 모두 잘 되었으면 하는 어려운 일들을 겪으며 살고 있다. 여성의 경우 집안일도 잘하고 사회 일도 잘하고 싶은 마음,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갖지는 못하지만 좋은 아빠가 되고 싶은 마음, 살을 빼고자 운동을 하면서도 운동한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열량을 섭취하면서 위로를 받는 것…,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수학의 공식처럼 모두가 동일한 상황으로 결정되거나 증명되지 않는 것이 우리들의 일상생활이다.

내가 지금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하여 원하는 직장에 다 취직이 될 수 없듯이 바르고 정직하게 산다고 하여 모든 사람에게 밝은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것은 상황과 변수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기술이나 산업의 발달에 발맞추어 가지 못해서 산업의 지표가 나빠지는 것이 확실히 보이는데도 지나친 낙관과 자신의 보장된 미래만 보고 안일에 빠져 있다면 장래는 보장되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속담이 있다. 옛날에도 사람의 말은 속도감이 있었던가 보다. 한양에서 일어난 일이 부산까지 알려지는 것이 사람의 걷는 속도만큼 빨랐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놀랄 일이다. 요즈음은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소식들로 가득 차 놀라고 있다. 미투 운동이 그 중 한가지이다.

잠재된 정보는 두려움까지 가져온다. 많은 사람들이 몸을 움츠리고 긴장하고 있을 수도 있다.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 불확실하고 확정된 일들이 하루에 뒤바뀔 수 있다는 것에 불안해 하지 않는가? 아니다 오히려 미래를 모르고 있기에 우리는 하루하루를 잘 살고 있는지 모른다. 이미 확정된 사실을 알면 삶이 무의미해지고 살아가는 행위 자체가 무가치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앞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가 궁금하여 점을 본다든가 타로를 하기도 한다. 이 세상에서 자신의 운명이 결정된 상태로 살아간다는 것만큼 불행한 것이 없다.

불확정성 원리는 상대적이다. 경기에서 내가 승리하면 기쁘지만 상대는 패해서 아쉽기도 하고 판정에 불만이 있으면 분하기도 할 것이다. 군대조직에서 장성이 되기 위한 별자리는 하나인데 3명이 경쟁을 한다면 분명 2명은 탈락의 아픔이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자신의 미래를 훤히 다 알고 살아간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고 형벌이다. 사람에게 확정된 미래를 볼 수 없게 한 것이 신의 한 수이다. 불확정성을 부여하여 살아갈 이유가 있게 하고, 상황을 변화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둔 것이다.

지금 젊은이들이 취직이 어렵고 산업의 발전이 정체되고 있다고 주저앉아 있으면 이는 확실히 앞날의 걱정거리임이 틀림없다. 이때 위치와 속도를 바꾸거나 조절해 보자. 상황이 바뀔 것이다. 수학에서 조건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정답이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불확정성 원리가 물리학에서는 애매한 이론의 원리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서는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원리로 적용될 수 있다. 불확실하다고 하여 미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항수 울산테크노파크 지역산업육성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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