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경의여행스케치]꿈의 여정 (끝)…알혼섬에 묻다
[김윤경의여행스케치]꿈의 여정 (끝)…알혼섬에 묻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3.07 22: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바이칼 호수 안에는 총 22개의 섬이 있는데, 가장 큰 것은 길이 72km인 알혼(Olkhon) 섬이다. 알혼 섬은 바이칼 호수의 심장으로 ‘나무가 드문’ 혹은 ‘메마른’이란 뜻으로 풀이한다. 바이칼 호수 주변 중에 가장 수심이 깊고 풍랑이 센 곳으로 예부터 뱃길을 항해하는 상인에 의해 몸을 던지게 되는 부랴트(Buryaty) 심청의 인당수가 있다고 전해온다. 처녀가 인당수에 몸을 던지자 금빛 비늘을 가진 물고기로 환생하여 신들의 세계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는 전설이다.

아침부터 날씨가 잿빛으로 잔뜩 흐려 우울했다. 선착장 도착 후 바지선을 이용하여 알혼 섬으로 이동하는 데 20분 소요되고 후지르 마을로 들어가는 데는 40분 정도 걸린다. 휴가철이라서 그런지 배를 기다리는 줄이 너무나 길게 서 있었다. 지루할 만큼 오랫동안 기다려야만 했다. 바지선을 기다리는 동안 안개비가 서서히 스며들었다. 우비를 꺼내 입고 배를 탔다. 시베리아에는 속이 탈 정도로 기차도, 배도 다 느린 것 같다.

도중에 비가 오다가 말았다. 내려서 이곳의 유일한 교통수단인 식빵 모양을 한 특수 승합차(우와직)를 탔다. 차도 아주 낡았고 비포장도로라 덜컹거리고 먼지가 많이 났다. 젊은 청년들이 운전하는데 신나게 흔들렸다. 기름 냄새가 진동하더니 갑자기 서 버렸다. 시동이 안 걸리자 오고 있는 다른 차에 합승하라고 했다. 비좁고 불쾌하지만 걸어갈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도착해서 알혼 섬의 전망대에 가기로 했다. 왕복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언덕길을 올라갔다. 그리 높지 않은 언덕과 구릉지가 끊임없이 펼쳐지는 섬의 모습은 포근함과 차분함을 느끼게 해 준다. 돌도 없고 계단도 없어 걷기는 편하나 나무가 없어 낮에는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전망대에서 보니 남도의 다도해를 보는 느낌인데 바다가 아니고 호수라니 보지 않으면 상상이 안 간다.

그곳에서 러시아인 가족을 만나 보드카와 커피를 얻어 마시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유난히 러시아 아이들이 예뻤다. 정말 바비인형같이 눈이 맑고 아름다웠다. 식생활 때문인지 결혼 후에는 거의 비만으로 가는 편이었다. 전망대에서 내려오면서 사막처럼 모래가 펼쳐진 곳이 보였다. 한 포기 풀도 없는 끝없는 모래사장이다. 햇볕이 내리쬐자 오래 못 버틸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가다가 포기했다.

저녁을 먹고 캠프파이어를 바비큐 광장에서 했다. 불빛 때문에 별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화장실 가는 길에 본 북두칠성과 은하수는 마치 꿈을 꾸는 듯했다. 그렇게 많은 별들이 쏟아지고 밝게 빛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별을 보러 왔다는 사람은 가이드 말만 듣고 방에서 쉬었다가 새벽 2시쯤에 나왔는데 그 때는 구름이 끼여 잘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 애석하게 생각해서 자랑도 제대로 못했다.

샤먼 바위(부르한 바위) 입구에는 화살촉 모양을 한 나무기둥이 장승처럼 줄을 서 있다. 거기에 형형색색의 헝겊을 칭칭 감은 천신과 지신, 인간의 연계 고리라고 하는 13개의 세르게가 있다. 우리나라의 서낭당, 신목(神木), 솟대와 같은 것으로 마치 신궁인 듯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샤머니즘의 성소(聖所)로 올라가거나 훼손할 수 없도록 법령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옛날에 이 바위를 지나갈 때는 말에서 내려 경배했다는 기록이 있다. 바람결에 멀리서 샤먼의 북소리와 누군가 말을 타고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심청전’뿐만 아니라 ‘나무꾼과 선녀’ 또한 바이칼 호가 진원지이다. 나무꾼 이야기는 알타이 산맥을 중심으로 중앙아시아와 내몽골, 티베트, 만주지역까지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으나 여기가 그 원류라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전래설화 ‘젊어지는 샘물’과 같이 바이칼 호수에도 몸을 담그면 젊어진다는 말에 너나없이 뛰어들었다. 스스로 정화하여 썩지 않는 이 호수에 사는 바이칼의 여신 바이겔 하탄(Baigel Xatan)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항상 설레는 마음으로 아름다운 내일을 기다리고 싶다.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인 인생처럼 기차 또한 그러하다. 모두 아쉬운 작별을 하고 언젠가 하늘을 달리는 티베트 칭장열차(靑藏鐵道)를 함께 탈 것을 기약하며 전국으로 흩어졌다. 짐을 풀지 못한 채 저녁 수업에 들어갔다. 시베리아의 심장 알혼 섬이 내 심장을 계속 뛰게 한다. 이 여행기에 로맨스를 가미해 단편소설로 재구성하여 ‘알혼섬에 묻다’가 되었다. ‘동서문학상’ 소설부문에 입선하여 얼마의 상금을 받았으니 나에게는 정녕 잊지 못할 꿈의 여정이었다.

김윤경 여행가, 자서전쓰기 강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