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체험보다 전시에 더 치중할 생각이에요”
“올해는 체험보다 전시에 더 치중할 생각이에요”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8.03.06 22: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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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미술인으로 돌아온 윤명희 전 울산광역시의회 의장
외손자 다니던 유치원 아이들과
‘그림여행 전시회’ 벌써 네 차례
폐교 궁근정초 갤러리로 재단장
경주지진으로 개원 3개월 지연
연 4천 관
▲ 윤명희 전 울산광역시의회 의장.

지난 2일 오전, 옛 궁근정초등학교 터((울주군 상북면 석남로 832)에 자리 잡은 ‘다담은 갤러리’ 제3전시실. 앞으로 한 달간 선보일 ‘자작나무회 초대전’ 겸 ‘온산 한마음 유화전’의 출품작 20여 점의 설치작업이 한창이다. 박현수 수석교사(65, 다담은 갤러리 교육프로그래머)도 ‘레이저 수평기’로 작업을 거든다.

“선(線)을 맞추세요. 조금 더 내리시고. 그림은 너무 높이 거는 것보다 조금 내려놓는 게 좋아요.”

‘눈이 저울’이라는 ‘윤화랑’ 운영경력 15년의 윤명희 여사(69). ‘울산 최초의 사설 갤러리’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 ‘윤화랑’의 설립자로, 울산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선구적 예술인이다.

지금은 내노라 할 직함이 없다. ‘갤러리 운영책임자’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그래도 한때는 대단했다. 그 기품이 먼발치서도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115만 울산시민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던 울산시의회 의장직을 2년간 맡은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오직 미술과의 사랑을 즐길 뿐이다.

그래서일까, 표정이 무척 밝다. 그리고 스스럼이 없다. “매일 매일이 즐겁다며 소리 내어 웃기도 한다.

“요즘 하도 많이 웃다보니 눈가에 주름살 생긴다고 주위에서 많이 말려요. 그만 웃으라고.”

그러고 보니 양쪽 눈언저리에 미세한 잔주름이 부챗살 모양으로 번져 있다. 파스텔 톤이다.

스스로를 ‘꽁하는 성격’이라 했다. 어떤 일에 손대기 전엔 심사숙고하는 편, 그리고 언짢은 일은 빨리 털어버리는 성격이라고도 했다.



아이들 그림 지도… 童心의 세계로

윤 여사가 민선 3∼4기 시의원과 의장직을 거쳐 금배지마저 내려놓은 시기는 2010년 6월. 그 이후론 외부와의 연락을 씻은 듯 끊었다. 공식석상엔 얼씬도 안 했다.

“아예 안 나타나면 많은 분들이 편하지 않겠어요? 의전 문제로 신경 쓸 필요도 없고….”

그 대신 팔순노모의 병수발에 매달렸다. 모친 박금련 여사는 평생을 교육에 헌신한 분이다. 온양·청량·춘도·용연초등학교는 물론 폐교와 동시에 갤러리로 변신한 궁근정초등학교에서도 교편을 잡은 적이 있다. 옛 활터의 이름 ‘궁근정’이 모녀(母女)를 다시 엮어준 셈이다.

2013년 12월, 모친이 끝내 돌아가셨다. ‘집 나이’로 향년 87세. 모친의 별세는 윤 여사가 다시 바깥세상으로 눈을 돌리는 계기가 됐다.

▲ 지난 2일 다담은갤러리 제3전시실에서 전시작품 설치를 마친 윤명희 전 울산시의회 의장(앞줄 가운데)과 온산 한마음회 강신성 회장(오른쪽 두번째) 및 회원들. 뒷줄 왼쪽 두번째 박현수 수석교사.


“그 뒤론 ‘외손자 바보’로 변했어요.”

외손자 김레오 군은 지금 구영초등학교 3학년. 울주군 망성리의 유치원 ‘아름다운 학교’에 다니던 레오와 그 또래아이들 13명을 ‘재미있는 그림여행’이란 그림동아리에 애정 어린 끈으로 꽁꽁 묶었다. ‘재미있는 그림여행’은 윤 여사에게 ‘천국여행’으로 다가왔다. ‘윤명희표 밝은 웃음’의 상표등록은 이때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울산이라면 아이들 데리고 안 가본 데가 없을 겁니다. 야외는 기본이고 대공원, 들꽃학습원 할 것 없이 어지간히 돌아다녔죠. 부산서 열린 ‘이중섭 탄생 100주년 기념전’, 산청의 천문대, 네 차례 열린 태화강 설치미술전도 다 구경시켰죠.”

데리고 나간 아이들은 먼저 체험부터 시킨 다음 그 대상을 스케치북에 옮겨 그리게 했다. 그렇게 하나둘 쌓인 고사리 작품들은 일 년에 한두 번씩 여는 작품전의 훌륭한 밑거름이 되곤 했다. 벌써 네 번이나 가졌던 작품전의 이름은 ‘그림여행 전시회’.

“작년 크리스마스 무렵엔 아이들 그림 전시회를 울주문예회관에서 닷새 동안 열었죠. 올해도 11월쯤 같은 장소에서 열 생각이고요.”

작년에는 8가지 색깔의 모포를 뒤집어쓴 여덟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을 전시회 초청장에 담았다. 레오, 가람, 하람, 하민, 윤재, 가온, 연우, 건우의 장난기 넘치는 표정들이 돌아가며 동심(童心)의 원(圓)을 이룬 초청장이었다.



전공 다른 교사 6명 ‘탄탄한 버팀목’

일제강점기인 1936년 6월 1일 문을 열어 졸업생 3천259명을 배출한 궁근정초등학교. 이 역사 깊은 학교가 학생 수 감소로 상북초등학교에 흡수되면서 문을 닫은 때는 개교 80주년이 되는 2016년 3월 1일이었다. ‘폐교 재구조화’에 소매를 걷어붙인 울산시교육청이 새 단장의 삽질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일이 꼬였다. 그해 9월 12일, 규모 5.8의 경주 대지진이 이 학교에도 불시에 덮쳤던 것.

“잘 아시겠지만, 여기는 울산 도심보다 경주에 더 가깝지요. 지진 때문에 학교건물 여러 군데에 금이 가고 떨어져 나가고, 말이 아니었습니다.”

미술교사 경력 37년의 베테랑 박현수 프로그래머의 귀띔이다. ‘예술 경험과 표현을 모두 다 담고 있다’는 의미를 지닌 ‘다담은 갤러리’의 개원이 그해 12월 12일로 늦춰진 것도 다 경주지진 때문이란 얘기였다. 보수가 불가피했던 것.

6명이 손을 맞잡은 다담은 갤러리의 교사진은 별로 나무랄 데가 없는 편이다. 운영책임자 윤 여사가 맡은 과목은 ‘심리미술’. 고려대 간호학과를 나왔지만 시의원 하는 동안 익산시 원광대에서 보건학(‘예술치료’)을 전공하고 석사·박사학위를 취득한 것이 적잖은 보탬이 됐다. 윤 여사가 그때를 잠시 회상한다. “학위 2개 따는 데 4년이 걸렸는데, 그 당시 김철욱 의장이나 강석구 위원장의 이해가 없었으면 이루기 힘든 일이었죠.”

미술(판화) 전공인 박현수 수석교사, 아크릴화 담당인 서양화 전공 곽영화 선생, 사진을 가르치는 권 일 작가, ‘프라모델’(=’조립식 장난감’ 또는 ‘플라스틱 모델’을 뜻하는 일본식 조어) 담당인 건축디자이너 출신 전우진 선생, 천연염색 전문가인 정영옥 선생도 갤러리를 탄탄히 지탱하고 있는 버팀목들이다. 교육청 소속 주무관 모만식 씨(현대중공업 출신) 역시 갤러리 운영에 없어선 안 될 기둥 같은 존재다.



“저는 ‘인력풀 예비군’, 불러만 주시면…”

다담은 갤러리는 울산시교육청 작품. 지금도 창의인성교육과 김양숙 장학사가 든든한 언덕이 돼주고 있다. 교사진이 말해주듯 ‘학생들에게 심미적 감성을 길러주고 예술적 소질과 적성을 찾아주는 예술체험의 공간’이 바로 다담은 갤러리다.

윤 여사는 그러나 올해만큼은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다. ‘체험’ 위주에서 벗어나 ‘전시’에 중점을 두고 싶은 것. 학생-교사가 동참하는 학교별 전시회 밑그림도 이미 그려 놓았다. 지난달 ‘최병화 작품전’, 이달 ‘자작나무회 초대전’을 유치한 것도 그런 구상을 실천에 옮긴 흔적들이다.

전시는 관람객이 많아야 넘볼 수 있는 행사다. 당연한 얘기지만 윤 여사에겐 그런 자신감이 붙었다. 증거로 ‘2017년 갤러리 운영일지’를 보여준다. “보세요. 많잖아요.”

살펴보니 지난해 6월에만 818명이 갤러리를 다녀갔다. 학생 728명, 학부모 47명, 교사 43명을 합친 숫자다. 거기서 그친 것도 아니다. “정말 놀랐어요. 1년 관람객이 4천은 훌쩍 넘을 걸요. ‘목’이 좋아서 그럴 거예요.”

석남사 가는 길목에 자리한 다담은 갤러리는 울산서만 찾아오는 게 아니라는 것. 석남사, 청도, 부산으로 두루 통하는 교통요지이다 보니 외지인 특히 부산사람들이 많이 찾아준다고 했다. ‘갤러리’ 간판을 보고 호기심에서 둘러보는 사람, 추억을 되살리고 싶어 모교를 찾는 이 학교 졸업생도 다 예비관객들 아닌가. 그래서 더 자신감이 생긴다.

‘빨간 날’과 수요일은 갤러리가 쉬는 날. 그렇다고 자택에만 칩거하는 일은 없다. 매월 첫째·셋째 수요일엔 ‘가라사니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남구 신정2동 세한경로당에서 유화 기법을 가르친다. “대부분 70대지만 배우겠다는 열정 하나는 젊은이들이 못 따라갈 걸요.” 그래서 보람이 두 배다. 스스로를 ‘인력풀 예비군’이라며 “불러만 주면 어디든 달려가겠다”는 각오다. 수탁계약이 올해 끝나지만 교육청이 허락해주면 3년 더 일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1982년에 받은 ‘아숨다’란 가톨릭 영세명이 있지만 현재로선 ‘냉담자’ 신세. 서울시립대, 독일 유학을 거쳐 ‘설치미술 큐레이터’ 자격으로 갤러리 일에도 관여하는 장녀 전혜윤 씨(45)와 범서읍 구영리에서 함께 살고 있다.

글=김정주 논설실장·사진=윤일지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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