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긴 일제잔재… ‘귀화’도 일본식 표현
질긴 일제잔재… ‘귀화’도 일본식 표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3.01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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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채널 JTBC가 3·1절 99주년을 맞아 <독도와 위안부, 혐일(嫌日)을 넘어 극일(克日)로>라는 주제 하에 내보낸 강연프로그램 ‘차이나는 클라스’는 시청자들에게 매우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초빙강사 ‘호사카 유지(保坂祐二)’ 세종대 교수가 들려준 몇 가지 일화는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호사카 교수는 ‘다른 나라 국적을 얻어 그 나라 국민이 되는 일’이란 뜻의 ‘귀화(歸化)’란 낱말이 ‘일본 천황(=일왕·日王)에 귀속하다’라는 뜻의 일본식 표현이므로 ‘국적을 바꾸다’로 해야 올바른 표현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소준섭 국제관계학박사는 지난해 언론매체에 기고한 글에서 ‘귀화’가 우리 법률용어로 뿌리내린 시기를 일제강점기라고 했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말 중엔 ‘귀화’와 같은 일본식 표현 또는 일제(日帝)의 잔재인 줄 모르고 입에 올리는 말이 의외로 많다. 지난달 27일 국회 교문위 전체회의 때 이은재 의원(서울 강남구丙)이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을 상대로 설전을 벌이다 홧김에 내뱉었던 ‘겐세이’란 표현이 대표적이다. 이 의원은 설전을 말리는 유성엽 교문위 위원장(전북 정읍시고창군)을 향해 “왜 자꾸만 깽판 놓느냐?”, “중간에서 겐세이 놓는 거 아니냐?”라고 쏘아붙여 논란을 일으켰다. ‘겐세이(けんせい·牽制·견제)’란 주로 당구에서 상대방이 치기 어렵게 공을 막을 때 쓰였고, 요즘은 게임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일본식 용어다.

유 위원장은 이날 “(이 의원에게) ‘불경스럽다. 3·1절을 앞두고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더니 이 의원이 즉시 사과했다”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 의원이 이날 같이 사용한 ‘땡깡’이란 말 역시 품위를 떨어뜨렸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땡깡’이란 부르르 떠는 발작 증세에 빗댄 ‘간질병’(=중국어 癲癎·전간/일본어 てんかん·덴칸)을 뜻하는 말로, 일제강점기 때 일제에 복종하지 않는 우리 민족을 비하하는 말로도 사용됐다고 전해진다.

이 밖에도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다수의 일본식 용어가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어 안타깝다. 순우리말 ‘둔치’를 뜻하는 일본식 용어 ‘고수부지’(高水敷地)는 아직도 일부 공무원들이 멋모르고 사용한다. 한때 정치권에서 경쟁적으로 쓰인 ‘코스프레’는 전형적 일본식 조어의 하나다. ‘배우에게 시대에 맞는 의상을 입혀 볼거리를 제공하는 연극이나 영화’를 뜻하는 외래어 ‘코스튬 플레이’(=costume play)를 일본식으로 뜯어고친 용어가 ‘코스프레(コス·プレ)’인 것이다. 울산에서는 만화 등장인물의 의상을 선보이는 ‘의상 쇼’가 ‘코스프레’라는 이름으로 해마다 열린다.

언어는 국가의 정체성과 역사, 문화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라는 말이 있다. 소진섭 박사는 그의 글에서 “말과 글을 강제로 빼앗긴 역사를 지닌 민족으로서 말과 글의 소중함을 쉽게 망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3·1절 99주년이 일제가 남긴 잔재들을 말끔히 걷어내고 우리의 정체성을 되살리는 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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