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 속의 ‘김영철 환대’
혼돈 속의 ‘김영철 환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2.27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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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 폐회식의 북한 고위급 대표단 김영철의 방한으로 대한민국은 곳곳에서 둘로 갈라졌다. 원인을 제공한 김영철은 환대(歡待) 속에 미션(?)을 마치고 어제 북으로 돌아갔다. 그의 방한 시 천안함 희생 장병 유족과 탈북자들은 북한 대표단이 서울로 향하는 길목인 통일대교 남단 도로로 나와 ‘김영철 방한 반대’ 시위를 벌였다. 정치권도 극심한 갈등을 빚었다.

우리 정부는 지난 25일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북한 고위급 대표단을 통일대교 10여㎞ 동쪽에 있는 군사도로인 ‘전진교’로 우회시켜 임진강을 건너게 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천안함 유족 등이 통일대교에서 ‘김영철 방남 저지’ 농성을 하자 군사도로를 북한에 열어준 것이다. 정부는 이날 김영철 일행을 위해 KTX 특별열차도 편성했다. 특별열차 한 대 편성하는 데는 1천만 원 안팎의 예산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경찰은 김영철 일행이 탑승한 차량이 서울 시내에서 멈추지 않고 달릴 수 있도록 신호를 잡아주고 도로를 통제했다. 경찰은 워커힐 호텔 진입로를 막고 통행 차량을 전수 검문했다. 이와 관련해선 “‘천안함 전범(戰犯)’의 원활한 방문을 위해 정부가 종일 과잉 의전을 제공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25일 오후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평창 모처에서 비공개로 만났다. 이날 오전 청와대가 사후(事後)에 공개한 브리핑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비핵화’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고, 천안함 폭침 등 그동안 김영철이 주도했던 각종 대남(對南) 도발에 대해서도 거론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손님에 대한 예우라지만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일로 문재인정부의 지원세력인 2030세대도 일부 분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려대에는 대자보가 붙었다. 천안함 폭침 46명, 연평도 포격 2명 등 48명의 희생 장병 이름과 함께 “문재인정부가 김영철을 국빈으로 모시려 한다. 가증스럽고 역겨워서 참을 수가 없다. 가짜 평화를 위해 이렇게까지 치욕적으로 굴종해야 하느냐”는 내용이었다. 포털사이트 여론도 어수선했고 보수 단체들도 반발했다. 인공기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사진을 불태웠고 경찰이 이를 막으면서 서로 충돌했다.

논란 속에 방한한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은 숙소인 서울 워커힐 호텔에 머무르며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대신, 우리 정부의 외교·안보 최고위급 인사들이 차례로 워커힐 호텔을 찾아가 김영철을 만났다고 한다. 우리나라 국가안보를 책임지는 사람들의 알현(謁見)식 ‘오·만찬 외교’는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뒤흔드는 사건이란 비판이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중국 방문 당시 ‘혼밥(혼자 먹는 밥)’을 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논란이 되었고, ‘역대급 굴욕’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우리 정부 외교·안보 라인 핵심 당국자들이 줄줄이 호텔을 찾아 천안함 폭침 주범(主犯)을 ‘알현’하는 모양새가 됐다”는 비판도 나왔다. 통일부와 국가정보원 등 정부 당국은 이번 회담을 위해 북한 대표단 숙소인 워커힐 호텔에 회담 베이스캠프를 차렸고, 김영철 등 북 대표단은 호텔 한 층을 통째로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박에 1천800만원 하는 특급 호텔이다.

정부는 “보안상의 이유로 호텔이 아닌 다른 곳에서 회담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생각이다. 밀접하고 의미 있는 대화를 위해서 만들어진 국민들의 ‘자존심 스크래치’는 누가, 어떻게 치유할지 걱정이다.

신영조 시사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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