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당신에게 그런일이 생기는 이유
착한 당신에게 그런일이 생기는 이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2.22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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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리어스 맨’
▲ 영화 '시리어스 맨' 한 장면.

<시리어스 맨>에서 주인공 래리(마이클 스터버그)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는 교수다. 유대인이다. 헌데 나름 평범한 가장으로 성실하게 잘 살아온 래리에게 갑자기 악재들이 덮치기 시작한다. 아내는 바람이 나 이혼을 요구하고, 딸은 성형수술을 하겠다면서 돈 달라고 난리치고, 성인식을 앞둔 아들은 몰래 마약을 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도 비슷했다. 학생 하나가 자신이 받은 F학점과 관련해 재평가나 재시험을 요구했던 것. 안 된다고 하자 몰래 돈까지 건넸는데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면서 누명을 덮어 쓴 래리는 교수 종신재직권 심사까지 받게 됐다. 살면서 저지른 나쁜 짓이라고 해봐야 소싯적에 본 스웨덴 포르노 한 편이 전부였던 래리는 지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그래서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난 아무 짓도 안 했어” 그런데도 자신에게 이런 일들이 생기는 이유가 궁금했던 래리는 해답을 찾기 위해 랍비(유대교 율법교사)들을 찾아 나선다.

사실 ‘나쁜(안 좋은) 일들이 왜 자신에게 생길까’라는 질문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다. 나쁜 일은 스스로 하는 것도 있지만 생기는 것도 있다. 다시 말해 능동형도 있지만 수동형도 성립한다. 내가 나쁜 일을 할 수도 있지만 나쁜 일이 나를 덮칠 수도 있다는 뜻. 내가 나쁜 일을 하면 누군가도 나쁜 일을 하기 마련이고, 누군가가 하는 그 나쁜 일에 내가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그래도 래리처럼 착하게 살았는데 왜냐고? 북쪽을 향하는 기차 안에서 남쪽 객실로 이동한다고 그가 과연 남쪽으로 가고 있는 걸까. 쏟아지는 악재 속에서 나의 선행이란 고작 이런 의미일지도 모른다. 왠지 섬뜩하지 않나. 맞다. 래리는 아무 짓도 안하고 가만있었다. 하지만 래리 주변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작게는 래리 주변의 아내와 자식들, 또 학교에서 가르치는 제자부터 넓게는 태양계를 비롯한 우리은하와 저기 먼 안드로메다은하, 아니 우주 전체는 계속 변하고 있었다. 게다가 우주는 빛과 어둠으로 이뤄졌다. 이제 감이 좀 잡히시는지.

하지만 우리 인간들은 이 문제에 늘 지나치게 심각했다. 이 영화의 제목이 ‘시리어스(Serious:심각한) 맨’인 이유이기도 한데, 이 지점에서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에서 조커(히스 레저)의 명대사인 “Why So Serious?”가 겹친다. 왜 그렇게 심각하냐는 거지. 그 영화에서 악당 조커는 자신의 무시무시한 악행에 심각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묻고 다녔다. 따지고 보면 조커의 말대로 심각할 게 없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선이 있으면 악도 있고, 삶이 있으면 죽음도 있고, 창조가 있으면 파괴도 있기 마련. 문제는 우리 인간만은 유독 자신에게 일어나는 파괴, 즉 나쁜 일(안 좋은 일)에 대해 “왜 하필 나냐!”면서 심각하게 생각해왔다. 그래서 오래 전에 종교가 만들어졌고, 지금도 그 질문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그분(神)도, 아니 그 누구도 그걸 풀어보라고 한 적은 없다. 똑똑해지면 스스로 특별하다고 착각하기 마련인 법. 그냥 고통을 못 견뎌하는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숙제일 뿐이지 않을까. 해서 감독인 코엔 형제는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유대계 성서 주석학자인 라시(Rashi)의 격언을 통해 이런 조언부터 던진다. “당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단순하게 받아들여라” 맞다. 온갖 죽을병에 지진 같은 자연재해, 소행성 충돌, 또 사건사고가 난무하는 이 위험천만한 세상에서 우리도 어차피 바람에 흩날리는 깃털 같은 존재일 뿐. 이를 깨달은 래리도 마침내 동양인 학생의 F학점을 C로 고쳐준다. 하긴. 그게 머시라꼬.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거지.

2010년 3월 25일 개봉. 러닝타임 105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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