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학 칼럼] ‘꾸꾸루미하다’라는 말
[박정학 칼럼] ‘꾸꾸루미하다’라는 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2.22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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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니 17년 전 이맘때쯤 삼동초등학교 졸업 40주년 기념 책자를 만들자며 동기생들 만났을 때의 기억이 새롭다. 71명이 입학하여 51명이 졸업하고, 전학 간 동기생을 합쳐 중학 진학생이 15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32회였다.

처음에 ‘책을 만들자’고 제안했을 때 “책? 우리가 무신 글을 씨노? 몬 씬다카이 자꾸 케샀네∼”라며 생뚱맞은 제안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결국은 3월부터 열심히 쫓아다니며 옛날 풀도 찾고, 얘기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추억해낸 끝에 7월 31자로 174쪽짜리 『문수산 아침해 솥발산 맑은 물』-진달래 먹고 물장구 치고?라는 책을 출판했다. 이 기념 책자는 8월 첫 일요일 총동창회 때 참석한 300여명의 동문들에게 나눠주었다.

책 제목은 ‘문수산 아침해에 영기를 띠고 솥발산 저녁놀에 잠긴 그림자∼’로 시작되는 교가에서, 부제는 당시 많이 불렀던 동요에서 따왔다. 동기생 22명의 글, 선배선생님 4명의 글, 딸과 며느리, 형과 동생 등 가족 6명의 글도 실었다. 컴퓨터를 잘 다루거나 그림을 잘 그리는 동기생의 딸들은 컷과 지도를 그리고 사진 교정도 도와주었다. 함께 모여 당시의 놀이라든가 주전부리에 대해 얘기하고, 그것을 묶어서 정리하기도 했다. 그리고 삼동면지와 백과사전 등에서 각 마을별 내력과 전설, 옛 농촌에서 사용하던 농기구 등의 사진도 수집하여 동기생들의 사진과 함께 실었는데, 책을 받아보고 자신의 글을 보면서 눈이 휘둥그레지던 동기들의 반응이 눈에 선하다.

오늘은 책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책을 만드느라 몇 번 만나 옛날을 회상하는 이야기를 하고, 어떤 내용들을 실을 것인지 의논도 하고, 산 속을 뒤지며 기억 속의 풀들을 찾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야, 인드라야 굴카면 우짜노?”, “가아 그거 아직도 알라 아이가!”와 같이 어릴 때 쓰던 옛날 말들이 튀어나왔고, 그런 말을 들으니 그 친구의 어릴 때 모습이 떠올라 새삼 옛 추억에 잠기기도 했는데, 그 중에서 ‘우리를 넘이 아니게 만드는’ 정다운 말 하나를 소개하려는 것이다.

어느 날 내가 서울에서 출발하면서 울산에 살고 있는 신복필이라는 여자 동기생에게 울산역으로 차를 가져오라고 전화로 부탁을 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내려가면 과메기를 한 번 먹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마침 집에 얼마 전에 구해놓은 과메기가 쬐께이 있는데 꾸꾸루미 하이 그렇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중에서도 ‘꾸꾸루미’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아 되씹게 되었다. 깊이 생각하고 한 말이 아니라 평소에 쓰던 그대로 나온 말이겠지만, 내가 울산에서 자랐으니 그 말의 뜻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참 ‘정감 넘치는 섬세한 표현의 사투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과메기는 완전히 말리지 않고 약간 덜 마른, 꿉꿉한 것이어야 제 맛이 난다고 한다. 이렇게 완전히 마르지도 않고 젖은 상태도 아닌 중간 정도의 꿉꿉한 상태에 대해 울산에서는 ‘피들피들하다’, ‘꼽꼽하다’처럼 여러 가지로 표현한다. 이 가운데 ‘꾸꾸루미하다’는 ‘꿉꿉하다’는 말과 연결되는 ‘꾸꾸룸한’ 상태, 그냥 꿉꿉하다고 하기에는 약간 더 마른 쪽으로 기울어진 듯한 그런 상태를 나타내는 말일 것이다.

우리말에는 ‘노랗다’에서 나온 ‘노르스름하다’, ‘뉘리끼리하다’, ‘비슷하다’에서 나온 ‘비스무리하다’란 말처럼 약간씩의 상태 변화를 표현하는 말들이 상당히 많다. 자주 듣던 말이 아니라도 듣는 사람이 그 의미의 섬세함을 대략 알아듣는다. 참 멋있고 정겨운 말 습관이라 생각된다.

지금 울산의 젊은 사람들도 이런 표현의 의미를 정확하게는 모를지라도 대략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영어를 잘하지 못해 영어와 같은 외국어에 이런 섬세한 표현을 할 수 있는 단어가 있는지 모르지만, 이처럼 다양하게 변화시키는 표현을 할 수 있는 우리말이 참 자랑스럽고 정겹게 느껴진다. 이런 말들이 없어지기 전에 찾아서 정리해 두었으면 한다.

박정학 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전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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