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장, 승진과 소신의 갈림길?
학교장, 승진과 소신의 갈림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2.21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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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부터 교육계에서는 이상한 설문조사 결과가 연이어 발표되고 있다. 이상하다는 것은, 설문 주제는 똑같은데 조사 결과는 조사를 주관하는 단체나 발표하는 주체에 따라 극과 극을 달리기 때문이다. 보는 이들을 의아하게 만드는 일련의 설문조사 주제는 교육계의 가장 뜨거운 감자 중의 하나인 ‘교장공모제’에 관한 것이었다. 조사 결과에 대한 반응만 살펴본다면 교육계가 완전히 둘로 쪼개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해석이 다양하다. 설문조사가 꼬리를 물게 한 직접원인은 지난해 발표된 교육부 시책이다. 사실 이 문제는 교육현장의 밑바닥에서 오랫동안 속앓이를 해온 사안이라 해서 틀린 말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교육부는 ‘내부형 교장공모제’로 임용할 수 있는 평교사의 비율을 15%에서 30%로 늘리는 내용의 ‘교장공모제 개선 방안’을 발표하고 이 내용을 담은 ‘교육공무원 임용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그러자 교육단체들은 교장 승진 제도를 둘러싸고 다양한 목소리들을 내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적극적인 설문조사나 의견수렴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유관 교원단체들은 제각기 소속 회원과 교직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 ‘똑같은 내용의 설문에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실제로 한국교총은 교장공모제 전면확대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에 대해 “응답한 교사의 81.1%가 무자격 교장 공모제의 확대를 반대했다”고 밝혔다. 이와는 달리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전국 17개 시도의 유·초·중·고등학교 교사 2천158명을 대상으로 교장공모제에 대한 의견을 물었고, 응답자의 70.5%가 ‘평교사형 교장공모제 확대’에 찬성했다”고 밝혔다. 이어 교장공모제 제한비율을 현행대로 유지하거나 내부형 교장공모제를 폐지하자는 의견은 26.1%에 그쳤다고 덧붙였다.

또한 전국기독교교사모임인 (사)좋은교사운동은 전국 유·초·중·고등학교 교사 1천223명을 대상으로 ‘내부형 교장공모제 확대’를 주요내용으로 하는 ‘교육공무원 임용령 개정안’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80.3%가 ‘찬성’ 의사를 표시해 현장 교사 5명 가운데 4명이 교장공모제 확대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사)새로운학교네트워크, 실천교육교사모임 등 또 다른 교육단체는 교원 3천282명을 대상으로 내부형 교장공모제 확대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71.5%(2천346명)가 ‘찬성’ 의사를 표시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대부분의 교원단체들이 공개한 설문조사 결과는 한국교총의 그것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교사들은 대부분, 교육경력 15년 이상의 평교사들도 지원할 수 있는 내부형 교장공모제를 통해, 보여주기식 실적주의와 행정업무·공문서 최우선의 학교가 아닌, 학생들이 즐거워하는 교육활동과 사제지간 교감 나누기가 보장되는, 따뜻한 학교현장을 소망한다는 사실을 설문조사를 통해 보여준 것이다.

실제로 승진에 도움이 되는 점수를 받기 위해 교육현장에서 ‘교육’이라고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일들이 얼마나 다반사로 일어나는지, 현장의 교사라면 너나없이 이야기를 한 꾸러미씩은 갖고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학생 생활지도와 학교폭력 예방은 교사의 당연한 업무인데도 어떤 교사들은 힘들고 어렵다며 생활지도부에는 얼씬도 하지 않으면서 학교폭력 관련 승진가산점을 받기 위해서라면 실적까지 그럴듯하게 꾸며대는 일을 예사로 하는 것이다. 이는 교장 승진점수와 연관된 현상이다. 학교장으로부터 최고의 근무점수를 받기 위해 회식자리는 물론 학교장의 뜻과 반대되는 의견조차 스스로 포기하게 만드는 비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로 이어지는 현실 또한 교장 승진점수와 무관하지 않다.

때로는 좋은 제도 하나가 세상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내부형 학교장 공모제의 확대’야말로 일그러진 학교현장의 왜곡성과 비민주성을 바로잡고, 교육이 참으로 교육다워지는 ‘백년대계’의 큰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용진 명덕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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