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말과 순 우리말
표준말과 순 우리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11.2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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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새는 낭게 자고, 쥐는 쥐는 궁게 자고, 미꿀 미꿀 미꾸라지 구캐속에 잠을 잔다” 어릴 적 외할머니가 들려 주시던 자장가의 일부다. 가끔 이 자장가가 떠오르면 ‘외 할매가 나를 재울때 사투리를 썼구나’하고 웃어 넘길 수 있었던 것은 고등학교에서 고문(古文)을 배우기 이전까지 였다. 고전(古典)시간에 ‘남ㄱ’이 ‘나무’의 고어 (古語)이고 ‘굼ㄱ’이 ‘구멍’의 어원(語原)이란 말을 듣고 깜작 놀랐다. 1898년 생(生)이던 외할머니가 ‘무식’해서가 아니라 전해들은 순수 우리말을 그대로 사용했단 사실을 알고 야릇한 신비감마져 느꼈던 기억이 난다. 고3 시절, 국어 모의고사에 ‘괜히’를 순수 우리말로 쓰라는 주관식 문제가 나온 적이 있었다. 평소에 그 말 자체가 표준어로 알고 사용해 왔던 터라 ‘순 우리말’과 개념이 혼동돼 암담하기 짝이 없었다. ‘괜히’는 ‘공연(空然히)’란 한자어를 줄인 것이고 순우리말은 ‘백줴’란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 이 ‘백줴’란 말은 경상도 지방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면 으례히 사용했던 기억이 있는 단어기 때문이었다. ‘할 필요가 없었는데 쓸데없이 했다’란 표현을 ‘백줴 했다’고 말 했던 그 말이 ‘괜히’의 순 우리말 일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뒤이어 터진 ‘정구지 사건’도 표준어에 대한 혼란을 가중시키는 계기가 됐다. 서울 토박이 친지 아주머니에게 ‘정구지 부침’을 먹고 싶다고 했는데 무슨 말인지 못알아 듣는 눈치였다. 여러가지 설명과 묘사 끝에 서울지방에선 이 채소를 ‘부추’라고 하며 그 말이 표준어란 사실도 그때 알았다.

최근 표준어에 대한 정의(定義)를 두고 ‘탯말 두레’란 단체가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다고 한다. 표준어 규정에 무슨 문제가 있어 이들이 헌법소원을 낸 것일까. 현 표준어는 1933년 조선어학회가 ‘현재 중류사회에서 쓰는 서울 말’로 정했다가 1988년 문교부 고시(告示)로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쓰는 현재 서울 말’로 변경됐다. 이들이 이의를 제기한 부분은 ‘교양있는’과 ‘서울 말’ 이다. 그들의 주장대로 라면 ‘서울 말을 쓰지 않으면 교양이 없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정치, 경제, 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가 수도권에 집중되다 보니 ‘서울 말’을 사용하는 그 자체가 돋보이는 것으로 착각되던 시절도 있었다. 말끝에 “-어, -니”를 부치면 무조건 표준어로 들릴 것이라고 생각한 경상도 사람이 “서울갔다 ‘시방’ -방금의 사투리-왔어”라고 했다든지 “얘, 돌삥이-돌멩이의 사투리- 위에 왜 앉니?”라고 했단 우스개 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표준어가 잘못 강요되면 ‘언어의 사멸(死滅)을 가져온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다시말해 각 지방이 지니고 있는 특유의 맛과 ‘순 우리말’의 어원이 없어 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울산지방에선 서술형 어미 ‘-이다’대신 ‘-더’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앎더, 모름더’ 가 그 한 예다.

좀 더 위로 올라가 경주지방에 가면 의문형 어미로 ‘는교’를 사용한다. ‘했습니까’ 대신 ‘했는교’를 쓰는 사람들이 많다. 대구지방의 서술문 의문문 말미는 ‘예’로 끝난다. ‘했습니까’대신 ‘했어예’라고 표현한다. 그 위 지방인 상주, 의성으로 가면 ‘-여, -껴’를 서술형과 의문형에 쓴다. ‘모른다’대신 ‘몰라여’라고 하고 ‘압니까’를 ‘아니껴’라고 한다. 반면에 서부 경남인 마산·창원으로 가면 물음문에 ‘-요, -소’를 사용해 외지인들에게 항의, 시비하는 듯한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했습니까’라고 하지 않고 ‘했소’라 한다든지 ‘모릅니다’ 대신 ‘모르요’라고 하는 경우가 그 예다. 그러나 이런 토속어에 너무 치중하다 보면 생기는 문제도 적진 않을게다. 모 국어교육과 교수는 “모든 지역 방언을 다루려다 국민소통은 커녕 방언 간 소통 단절로 이어져 국가 분열사태를 낳을 수 있다”고 했다. 표준어에 대한 새로운 개념 정립이 필요한 시점이 된 것은 분명하지만 각론이 문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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