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안전위원회 결정, 대통령도 뒤집어선 안 돼”
“원자력안전위원회 결정, 대통령도 뒤집어선 안 돼”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8.02.20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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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름 ‘월성1호기 지킴이’ 박재준 에이원공업사 대표
캐나다서 배운 노하우 시운전 간부 능력 밑거름
몸에 밧줄 묶고 격납건물 들어가 중수 누출 수습
용기 있는 행동으로 ‘한전 영웅상’ 까지 받고<
 

32년 근속 ‘골수 韓電맨’ 월성1호기에 집착

‘월성1호기’ 소리를 들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그만큼 월성1호기는 그에게 신앙적 존재다. 문재인 정부 출범으로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은 국내 제2호 원전이지만 그래도 애정은 남다르다. “멀쩡한 월성1호기 왜 죽이나?”(2017.7.3) “월성1호기를 살릴 묘책은 없는가?”(2018.1.18)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울산제일일보에 두 차례나 기고한 것도 다 그 때문이다.

월성1호기를 향한 그의 집념은 ‘애착’ 수준을 지나 ‘집착’ 수준에 가깝다. 그럴만한 사연들이 성성한 백발만큼 숨어있는 듯했다. 궁금증도 풀 겸 박재준(70) 에이원공업사 대표를 남구 달동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부산 성지공고 기계과 1회 졸업생인 그는 골수 ‘한전(한국전력)맨’이다. 졸업하던 그 해(1967년) 1월 곧바로 입사해서 1998년 명예퇴직 할 때까지 햇수로 32년 내리 ‘한전 밥’만 먹은 이유가 결정적이다.

월성1호기 시운전멤버… 15개월 캐나다 연수

준공 시기가 ‘국내 제1호 원전’ 고리1호기보다 5년 늦은 월성1호기가 시운전에 들어간 1980년 5월만 해도 월성원전(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은 분사(分社, 2001년) 이전의 ‘순수 한전’ 소속이었다. 월성1호기는 1983년 4월에 준공, 1983년부터 상업운전을 시작한다.

입사 후 10년간은 영남·울산·서울(당인리)화력 등 화력발전소에서만 전문성을 쌓았다. (한전은 ‘한 자리에만 눌러 있으면 썩는다’ 해서 순환보직 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입사 11년차인 1977년엔 간부시험을 거쳐 한전 본사 장비관리사무소 차량계장 보직을 맡아 1년간 근무했다.

그러던 차에 기회가 왔다. 원자력 계열 근무희망자 공개모집 공고가 나붙은 것. 한전의 직군이 발전·원자력·사무 등 3개로 막 나뉜 무렵이었다. “그때는 발전 직군에서 원자력 직군으로 옮기기가 대단히 힘들었어요. 그래도 고참직원이나 간부들은 응시 기회가 주어져 직군 변경이 가능했지요.”

이후 1년 3개월 동안 캐나다 ‘캔두(CANDU)에너지’에서 기술연수에 몰입했다. ‘캔두’라면 가업중수로 시스템을 한전에 판매한 캐나다의 메이저급 원전회사다. 이 무렵 전수받은 품질관리, 기계보수의 노하우와 사명감은 ‘월성1호기 시운전 간부멤버’의 중책을 능히 감당하게 만든 필수자양분이 됐다.

현재 월성원전 원자로의 유형은 2가지. 설비용량 67만8천∼70만kW인 월성1∼4호기는 가압중수로(CANDU)다. 반면 설비용량 100만kW인 신월성1∼2호기는 가압경수로(OPR-1000)다. 삼중수소를 발생시키는 가압중수로 보유는 국내에서 월성원전이 유일하다.

 

▲ 전국에서 모은 나무지팡이 앞에서 포즈를 취한 박재준대표.

목숨 건 ‘월성1호기 중수누출사고 수습작전’

한전 근속 32년 경력의 박 대표에게 지금도 쉬 지워지지 않는 추억거리 두 가지만 들라 한다면? 이 물음에 그는 1984년 11월에 일어난 ‘월성1호기 중수 누출 사고’와 2011년 10월에 세상에 알려진 ‘원자력 스캔들’의 두 가지를 지목한다.

중수 누출 사고는 순환보직에 따라 기계부 터빈과장 맡은 지 얼마 안 있어 일어난 아찔한 사고였다. “11월 25일 낮 11시 45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알람(비상경고음)이 여기저기서 한꺼번에 울려대기 시작한 겁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원자로 격납건물’(reactor containment building) 중수저장탱크의 ‘과압방지용 안전밸브’(rupture disc, 파열판)가 터지면서 냉각재인 중수가 밸브로 새나가 돔 안에 흥건히 고이게 된 중대 사고였지요.”

뿜어져 나온 증기 상태의 중수가 금세 물방울로 맺혀 갔다. 중수 누출! 온도가 급상승하면서 언제 연쇄폭발 참사로 비화될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이 이어졌다. “계통 전체가 터졌다”는 말까지 나왔다. 한시가 급했고 결단이 필요했다. 그러나 배전반에 몰려든 임직원들은 한숨만 쉴 뿐 누구 하나 용기 있게 나서는 이가 없었다.

“내가 들어가야 해.” 결심을 굳힌 박재준 과장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발전소장이 시야에 잡혔다. “제가 들어가 보겠습니다.” 말을 들은 소장의 얼굴이 백짓장으로 변했다. 그러더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들어가면 죽을 게 뻔하니 못 들은 척 나가버린 것으로 이해했다. 얼마가 지났을까. 이번에는 부소장의 눈과 마주쳤다. 이심전심의 기가 통했다. 즉시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자신의 몸에 밧줄부터 묶었다. 유사시, 시신을 건져 올리는 데 도움을 주겠다는 비장한 각오의 몸짓이었다. 해치를 열고 격납건물 안으로 들어간 그는 응급조치를 서둘러 끝내고 사태를 수습했다. 이 엄청난 일에는 멋모르고 따라 들어간 보수요원들의 도움도 컸다. 문자 그대로 죽음도 불사한 ‘사투(死鬪)’였다.

박정기 前한전사장 “朴과장 당장 찾아봐” 호통

박재준 대표는 초를 다투던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술회한다. “월성1호기는 건설비용이 자그마치 10억 달러(당시 6천억)나 들어간 국가적 주요자산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2조 2천억에 맞먹는 거금이지요.”

그의 지론인즉 이랬다. 냉각재가 소멸되면 최후수단으로 맹물이라도 부어넣어야 원자로를 식힐 수 있는데, 그리 하면 폭발사고는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원자로를 사용불능 상태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는 것. “얼마나 큰 국민세금 낭비입니까?” ‘월성1호기를 반드시 살려내야 한다’는 일념에서 나온 비장한 애국적 행동이라는 얘기로 들렸다.

하마터면 세인들의 기억 속에서 영영 사라질 뻔했던 그의 이 무용담은 후쿠시마 원전 폭발참사(2011년 3월 11일 발생)가 일어난 지 2개월 후 우연한 기회에 세상 밖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 해 5월 박정기 전 한전 사장이 한전 대구지사 오찬 모임에서 이 이야기를 옛 부하간부(최문수 전 자재과장)로부터 전해들은 것이 단초가 됐다. 박정기 전 사장이 이런 지시를 내렸다. “이 양반들,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사장 눈 귀 다 가리고 어떻게 된 거야. 박 과장을 당장 찾아봐.”

2013년판 한전 OB수첩에 이름을 올려놓은 것이 결정적 도움이 됐다고도 했다. 이 일을 계기로 박재준 대표는 대구지사 오찬모임 두 달 후 원자력 안전운전에 매진한 공로로 한전에서 주는 특별상(‘한국전력 100년사 톱-텐 영웅상’)을 받게 되고, 박정기 전 사장을 정신적 지주로 받들기에 이른다. “저는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꾸밈이 없어 보이는 그의 말이다.

전국서 모은 지팡이 900개, 氣수강자에 대여

사실 그는 현재 다니고 있는 울산시민교회에서의 직분이 집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스스로를 독실한 크리스천이라고 자부한다. 부인 김정옥 여사(64)와 함께 신앙생활을 30년 가까이 같이 해오고 있다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싶었다.

1남1녀 두 자녀도 신앙의 길에서 한 치 흐트러짐이 없는 것도 그의 자랑거리다. 다 부모의 영향 덕분이라며 은근슬쩍 우스갯소리도 던진다. “장로 아들 교인 못 만든다는 말이 있지만 제 자식은 집사 아들인데도 신실한 교인 노릇 잘하고 있습니다. 허허.”

경북 청도군 풍각면 흑석리가 고향. 한전 재직기간 중에도 초빙강의에 나섰고, 그 일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원자력연수원에서는 한수원 직원들을 대상으로 ‘발전소 전 제어계통’에 대해 강의했고, 삼성·대우·엘지·현대 등 대기업에서는 ‘중수로형 원자로 일반’에 대해 특강을 베푼 적도 있다.

소음·진동 제어설비 제작회사인 ‘에이원공업사’ 간판을 10년이나 유지해 오면서도 ‘기(氣) 와 건강(健康)’ 전도사 역이라면 미련을 버리지 않는다. 최근에는 매주 금요일마다 울산테크노파크 인문학 강의 교실에서 3시간짜리(오전 10시∼오후 1시) 강의를 맡고 있다. ‘전세계 인류의 희망의 빛’이란 자신의 저서를 교재삼아…. “퇴직 후 20년 가까이 전국을 돌며 모아둔 나무 지팡이가 한 900개는 될 겁니다. 돈 받고 파는 게 아니라 강의를 듣는 수강생들에게 무상으로 대여해 주는 것들이지요.”

그에게 마지막 말을 부탁했더니 화제는 다시 ‘월성1호기’로 돌아갔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법대로 수명을 2022년까지 연장해주었는데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손바닥 뒤집듯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어요. 원안위 결정대로 재가동시켜야 됩니다. 1∼2개월이면 끝날 전체점검정비(overhaul)를 8개월 넘게 끌다니 말이 됩니까? 선진국에서 비웃을 일이지요.”

글=김정주 논설실장·사진=장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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