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수단이 된 ‘플리바게닝’
거래수단이 된 ‘플리바게닝’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2.20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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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생(各自圖生)중인 MB 집사들 자백으로 플리바게닝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한국형 플리바게닝’은 ‘정의의 무기’인지 ‘악마의 거래’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잇따라 혐의를 인정하게 된 배경과 관련, 갖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법조계에선 이들이 수사에 협조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생긴 것 때문이라고 해석하는데, 그 중 하나로 거론되는 것이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양형 거래)’이다.

플리바게닝은 쉽게 말해 수사에 협조하면 구형 형량 등을 줄여주는 것을 말한다. 마약사건 및 조직폭력, 뇌물죄 수사에 도움이 큰 제도지만, 국내에선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플리바게닝에 대한 법적 근거는 없으나, 기소에 대한 검사의 재량을 폭넓게 인정하는 기소독점주의와 기소편의주의를 채택하고 있어 플리바게닝과 비슷한 형태의 수사가 암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 때문에 아예 플리바게닝을 공식적으로 제도화해 양성화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도입 여부를 놓고 법조계에선 찬반이 엇갈린다. 거악 척결과 진실 규명을 위해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과 수사편의를 위한 남용 또는 공판중심주의 무력화 등이 우려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국내에서 비슷한 제도를 찾자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상의 리니언시(leniency) 제도가 유사하다. 가격담합행위에 있어 자진신고자에 대해서는 과징금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제도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는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구속 이후 더욱 힘을 받고 있다. 그보다 앞서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 역시 이명박 전 대통령과 관련한 혐의를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오랜 측근들이 이처럼 수사에 협조를 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은 배경으로 법조계는 수사과정에서 압박감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이나 이명박 전 대통령 관련 수사를 거치며 플리바게닝 도입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수사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둘째 치고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 자체가 수사 일선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한편 지난달 리얼미터가 플리바게닝 도입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입증하기 어려운 범죄수사에 도움이 되므로 찬성한다’(57%)는 답변이 반대의견(29.3%)의 두 배 가까이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영미법계에서 플리바게닝의 요건은 ‘자신의 범행에 대한 고백’ 한가지다. 해외의 플리바게닝은 협상을 통해 자신의 범행에 대한 죄를 스스로 인정하고 그 보답으로 형사처벌의 감면 혜택을 약속받고, 곧장 기소인부절차에 따라 증거조사가 생략되고 곧바로 양형 절차로 이전돼 재판을 신속하게 종결하게 되는 제도라는 점에서 한국형 제도와는 구조가 다르다.

제도 도입의 가장 큰 명분은 ‘거악 척결’이다. 이른바 ‘깃털’을 처벌하지 않더라도 그의 자백이나 증언 확보를 통해 ‘몸통’을 효과적으로 적발하여 처벌하는 것이 합목적적이고 실용적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우려도 적지 않다. 우선 이 제도가 범죄의 실체적 진실 발견과 사법정의 실현을 위한 최후 수단이어야 함에도 검찰이 수사편의상 최우선 순위로 고려되는 수사 방법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범죄자임에도 불구하고 사법협조를 이유로 형사책임을 감면하는 ‘플리바게닝’ 도입은 ‘거래수단’의 다양화와 편법을 부채질하는 악수(惡手)란 생각이다.

신영조 시사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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