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문화 맛보기
茶문화 맛보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2.19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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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맑아지는 차 한 잔이 인생을 말하고 삶을 말한다면 차를 모르는 혹자들은 茶(차)를 어떻게 표현할까? 차는 사치이고 인생의 낭비라고 말하는 이도 있고, 부의 상징이라고까지 말하는 이도 있다 그렇다면 진정 차의 본 모습은 무엇일까? 차를 공부하는 한 사람으로서 아직도 차의 참 진정성이 혼란스럽다.

차 문학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차 생활은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게 하고, 흐트러진 나를 바로세우고 참 나를 찾아가는 것이며, 이웃과 마음을 나누고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고전에서 전해지는 옛 사람들의 차 생활은 어떠했을까? 고전에서 전해지는 茶의 의미는 무엇일까?

茶는 마시고 음미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으며, 차 생활에는 인문학의 향기가 진하게 묻어 있다고 했다. 차를 마시는 것은 사람과 정감을 나누는 일이며,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고 감응하는 것이라고 했다. 인간의 착하고 올곧은 심성을 찾아주는 영약이 차이고, 우리는 차 마시는 행위를 통해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중정(中正)을 깨우치며 덕을 기른다고도 했다.

옛사람들은 해맑은 인격과 고매한 학덕과 예를 고루 갖춘 자를 ‘차인’이라 했다. 우리 역사에는 차 마시는 것을 자기수양의 방편으로 삼아 정신과 인격을 고양시켰던 차인들이 많다. 선인들의 차담에 얽힌 일화나 차를 예찬한 글들을 보면 한 잔의 차에서 소통과 통찰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추사 김정희가 동갑내기 친구인 초의선사에게 투정 부리듯 보낸 편지글은 “빨리 차를 보내지 않으면 몽둥이로 응징하겠네!”였다. 우리 차문화 역사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일화이다. 차를 통한 이들의 우정은 세상에 보기 드문 아름다운 만남으로 전해진다. 초의의 스승이었던 다산 정약용이 혜장선사께 차를 청하는 편지글 [걸명소(乞茗疏)]도 유명하다. “나는 요즘 차 벌레가 되어 차를 약으로 마십니다”라고 시작해 “목마르게 바라는 이 심정에 무상 선물을 아끼지 마십시오”라며 차를 구걸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슬며시 웃음이 난다. 그밖에도 “차나 시를 논할 이는 매창뿐이구나!”라고 한탄한 조선의 이단아 허균이 남긴 차시(茶詩), 유배지의 설움을 차로써 풀어내던 정약전과 정약용, 한국 다도 정신의 효시가 된 원효와 설총, 사헌부 감찰들이 날마다 차를 마시며 업무를 조율하던 조선의 감찰다시 등 차에 얽힌 옛 선비들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차 마시는 일을 잃어버린 전통문화의 복원이요, 빼앗긴 민족문화의 부활이라고 말한다. 옛 차인들의 놀이터였던 경주 남산 서출지 연못의 정자에 앉아 신라 사람들이 티타임을 즐기던 경주 반월성 귀정문 터를 보면서 경덕왕과 차인 충담사의 극적인 만남을 상상하고 싶다. 두륜산 일지암 유천에서 초의선사를 추억하며 유천 찻물을 맛보고 싶고, 차문화 발상지인 김해에서는 대한민국 제1호 차인으로 선정된 허황옥 동상 앞에서 온 정성을 다해 차를 올리고 싶다. 최고의 차문화 유적지인 경주 남산 삼화령을 찾아가 구석구석 보석처럼 박혀 있는 흔적을 느끼고도 싶다.

차를 마시는 일은 속도가 지배하는 첨단 디지털 시대에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 생활에서 잠시 나를 돌아보며 인간성을 회복하고 자연과 더불어 조화롭게 사는 세상 이치를 깨닫게 하는 한 잔의 차야말로 현대인에게 더욱 필요한 것이 아닐까. 차인들은 차를 통한 만남을 삼생(三生)의 인연이라고 얘기한다. 그래서 일평생 단 한 번의 만남처럼 그 순간을 귀중히 여기라는 뜻의 ‘일기일회(一期一會)’란 말이 차실(茶室)의 좌우명이 된 지 오래다.

한 잔의 차는 나를 다듬고 세상을 깨닫게 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끊임없이 성찰하게 만든다. 차의 정신이 ‘일기일회’의 일념으로 참됨을 지키고 속됨을 멀리하는 데 있듯 심외무차(心外無茶), 차를 마시되 차가 아닌 자신의 마음을 다룰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차인이다. 참된 차인이 되기 위해 마음을 다스리고, 사람을 대하는 데 예를 다하며, 일상의 성찰을 한 잔의 차에서 배우는 기회를 만들어 널리 보급하는 데 게으르지 않을 것이라 다짐하며 함께 나누는 의미를 새삼 되새겨 본다.

남미숙 향정다례원장 / 시인·시낭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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