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일기]설날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목회일기]설날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2.11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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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을 예전에는 원단(元旦), 세수(歲首), 연수(年首)라고도 했으나 일반적으로 ‘설’이라고 한다.

설날 세시풍속에서 복조리를 빼놓을 수는 없다. 섣달 그믐날 자정이 지나면 복조리 장수들은 복조리를 팔러 집집마다 찾아다녔다. 복조리를 사 주는 사람들은 “새해 벽두, 집에 걸어두면 복이 들어온다”는 생각 못지않게 복조리 장수의 어려운 처지를 생각해서 인정을 베풀기도 했다.

설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미리 장만해둔 ‘설빔’이라는 새 옷으로 갈아입고 가족 친척들이 한데 모여 차례를 지냈다. 아이들이 세배를 올리면 어른들은 “복 많이 받고 잘되라”는 덕담과 함께 세뱃돈을 주시기도 했다.

설날에는 맛난 음식을 풍성하게 준비하여 나눠먹고 윷놀이, 널뛰기, 연날리기 등 민속놀이를 하며 모든 근심걱정을 내려놓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새해를 맞이하는 것이 예전의 설날 풍경이었다. 설날은 오늘날도 어김없이 맞이하지만 설날 모습은 옛날과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설날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뿌리를 찾아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옛날에는 음력을 사용했기 때문에 설날이 새해 첫날이었고, 새해 첫날에 조부모님이 계신 고향을 찾아가 가족이 다 모인 가운데 조상님께 차례를 지내고 조부모님께 세배를 드렸다. 이처럼 설날은 “나는 누구의 자손”이라는 정체성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설날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보다도, 민속놀이를 하며 즐기는 것보다도, 설빔을 입고 기뻐하는 것보다도 가족들과 함께하며 관계를 확인하는 데에 있었다. 그러므로 옛날 조상들은 돌아가신 조상님들도 가족으로 여기고 설날에 차례를 지내면서 얼굴도 모르는 손자들에게 증조할아버지·할머니를 소개하기도 했다. 설날에 자녀가 부모님을 찾아뵙고 세배를 드리며 문안하는 것은 가족을 소중히 여기고 어른을 공경하는 설명절의 아름다운 문화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설날이 되면 해외로 여행 떠나는 사람들로 공항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자녀, 손자들 만날 날을 기다리던 어머니, 아버지는 “해외여행 때문에 이번 설에는 집에 갈 수 없다”는 아들의 전화를 받고 겉으로는 “잘했다. 재밌게 잘 다녀오라”고 하지만 속으로는 섭섭하고 허전하기만 하다.

오늘날에 차량 정체와 장시간 운전에 시달리며 고향을 찾기보다 해외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설날 풍속도가 너무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는 말들을 자주 한다. 시골에 혼자 사시는 어떤 할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신다. “설날이라고 자식들이 오지만 귀가 어두워 잘 못 듣고 늙었다고 젊은 자기들끼리만 이야기를 하고 웃고 떠들며 놀다가 간다”고 말이다. 설날에 자녀들이 와도 이야기는 오랜만에 만난 형제자매들끼리만 하면서 술 마시고 고스톱을 치고, 손자들은 저희들끼리만 노는 바람에 노인들은 여기도 저기도 끼지 못하고 소외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번 설에도 하루만 휴가를 내면 5일간의 연휴를 쓸 수 있으니 4박5일 해외여행을 예약해놓은 가족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부모님이 다 돌아가신 자녀들은 설 명절을 고향에서 보내든 해외에서 보내든 상관이 없다. 하지만 부모님이 살아계시면 해외여행을 부모님도 같이 모시고 가든가 아니면 여행은 휴가 때나 다른 기회에 가고 설날은 부모님과 함께 보내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부모님과 함께 보낼 설날이 앞으로 몇 번이나 남았을지도 모르고, 어린 자녀들에게 뿌리를 알려주는 기회이자 효도를 실천하게 만드는 교육의 현장이 설날이기 때문이다. 이번 설날에는 어른들이 자녀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소외감을 느끼는 일이 없도록 배려하며 즐거운 설날을 함께 보내기를 소망한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명기 5장 16절)

<유병곤 새울산교회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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