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고백’ 그 이후
‘아픈 고백’ 그 이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2.11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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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문단의 한 여성문인은 ‘아픈 고백’이 맞다고 했다. 서지현 검사에 이은 최영미 시인의 뼈를 깎는 폭로로 판이 커지기 시작한 ‘미투(#Mee Too)’ 운동을 두고 한 말이다. 이런 움직임이 요즘 중앙문단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모양이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1994년)로 필명을 날린 그녀의 시(詩) ‘괴물’에 등장하는 ‘En선생’이 얘기만 해도 누군지 알 수 있는 원로시인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싱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로 시작되는 ‘괴물’의 파괴력은 가히 ‘쓰나미급’이었다. 최 시인은 추행사건 당시의 심정을 ‘똥물 마신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당사자로 찍힌 원로시인도 최근 말문을 열었다. “30년 전 일이라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당시 후배 격려 취지의 행동이 오늘날 성희롱으로 규정된다면 잘못된 행동이라 생각하고 뉘우친다.”

‘뉘우친다’는 그의 말이 또다시 구설수에 오를지도 모른다. 성적(性的) 기행의 뿌리가 워낙 깊어 보이는 탓이다. 기행은 경향신문 J기자의 2월10일자 기사에서도 엿볼 수 있다. 제목은 <‘술과 문학은 한 몸?’ 최영미 시인이 말한 ‘문단풍경’이 이런 걸까?>. 그는 기사 속에, 어느 작가단체 총무를 지낸 L시인이 S월간지 2011년 5월호에 쓴 글을 인용했다. 문인들 사이에 ‘고주부 소주사건’으로 알려진 ‘En선생’의 기행에 대한 묘사 일부는 이랬다. “…(시인은) 강연 전 가까운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강연장에 들어갔다.… 전작이 있었던 시인은 강연 중에도 소주를 마셨는데, 강연을 시작한 지 1시간이 채 안 됐을 때 사건이 터졌다.… 말끝을 흐리는 등 횡설수설했다. 그 때문에 강연시간 1시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독자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그가 강연할 때 마시던 소주를 들고 내려와 맨 앞줄에 앉아서 열심히 박수를 치고 있던 주부 4∼5명에게 다가가 입을 억지로 벌려 소주를 들이붓는 돌발적인 행동을 한 것이다.”

J기자는 기사 말미에 ‘파리에 거주하는 작가 M씨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는 글’도 인용했다. “70년대도 아니고, 무려, 2011년에, 소위 문단 술판의 걸쭉한 광경들이 훈훈한 뒷얘기인양 포장되어 월간지에 연재되었다. 최영미 시인이 증언한, 자신에게 성추행을 시도한 놈들이 한둘이 아니란 얘기가 다른 각도에서 서술되고 있다.” J기자는 “두 글 모두 L시인이 지근거리에서 목격한 문인들의 술자리 풍경과 술에 얽힌 일화들을 남성 중심적 시각에서 적은 것”이라고 토를 달았다. L시인이 S월간지 2011년 6월호에 쓴 글의 제목은 <‘문인들의 술 풍경(하)-술과 문학은 한 몸이여’>다.

울산 문단은 의외로 조용하다. ‘오늘날 성희롱으로 규정되는 행동’이라곤 씨알도 찾아볼 수 없는 ‘성희롱 청정지대’여서일까? 말 나오기 무섭게 “천만의 말씀”이라며 고개 흔드는 사람도 있다. 울산은 아니지만, 한 블로거가 최근 이런 말을 블로그에 올렸다. “최영미 시인의 진술에 따르면, 선배문인의 성적 요구를 잘 들어주는 후배 여자시인은 문단에서 성공할 수 있고, 거절하는 여자시인은 문단에서 퇴출되거나 따돌림 당한다는 내용이어서, 정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없는 얘기를 일부러 끄집어내 창피 주자는 건 아니다. 입가짐, 몸가짐을 스스로 조심하자는 뜻이다. <‘술과 문학은 한몸이여’>엔 이런 글도 올라와 있다. “문학이 있는 곳에 항상 술은 따라붙는다. 따라붙은 술은 문인들에게 해학과 익살을 건넨다. 새내기 최영미가 대선배 송기원의 뺨을 때리고, 천승세는 개의 목을 물어뜯는다. 심호택은 뺨 맞고 김준태와 말을 텄고, 만취한 고은은 강연 청중에게 술을 먹이는 ‘고주부 소주사건’을 만들어낸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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