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겨울이 떠나고 봄이 다가오다
2월, 겨울이 떠나고 봄이 다가오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2.04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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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이다. 아니 벌써 2월이다. 한해가 시작된 지 어느 새 2개월이 흘렀다는 사실에 흠칫 놀란다. 4일이 입춘이었다. 한해 스물넷 절기에서 첫 번째가 입춘(立春)이다. 한자 입춘에는 ‘이제부터 또다시 한해의 봄이 시작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쑥대머리 삽살개가 무술년 첫 달을 무심하게 보며 커겅컹 짖던 그날이 어제 같은데 이미 올해도 삼십오 일째를 맞이했다. 겨울은 떠날 채비를 차리고, 봄은 오고 있다는 전갈이 미풍으로 느껴진다. 부쩍 기승을 부리던 겨울 칼바람은 며칠사이 점차 무디어져가고 있다. 반면 봄꽃바람은 고방오리(尻方鴨) 꼬리같이 예리해져 우쭐거린다. 기세등등하던 겨울이 맥없이 떠나고 있다는 증거다.

‘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내 청춘 피고 또 지는 꽃잎처럼…….’ 요즘 들어 이 노래가 동아(冬兒)의 흥얼거림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봄은 갓 짜낸 참기름처럼 고소한 냄새로 다가와 릴랙스(relax)한 천만사(千萬絲) 수양버들 가지에 방울방울 맺혀 있다. 매화나무 봉오리에도 튀었는지 고소한 냄새는 홍조로 드러난다. 조류 조사 길에서 만나는 매화나무 꽃눈이 하루가 멀다 하고 오동통하게 부풀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에 그러하다.

고소한 냄새는 호수에서도 맡을 수 있다. 철새는 후조(候鳥)라는 표현처럼 오고감에 소리가 없지만 문득 그 빈자리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자(寒者)가 아무리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떠난다 해도 마치 사나운 호랑이같이, 예리한 송곳처럼, 높은 소리의 학 울음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맹호는 비록 풀 속에 엎드려도 드러나고(猛虎伏草), 송곳은 주머니에 있어도 예리함을 잃지 않으며(囊中之錐), 두루미는 골짜기 습지에 살아도 그 울음소리를 세상에 전하기 때문이다.(九皐鶴鳴)

가는 겨울의 분위기는 태화강, 외황강 하류에서 더 뚜렷하게 느낄 수 있다. 1월 31일까지만 해도 그 많던 겨울철새가 2월 1일이 되면서 눈에 띄게 줄어든 것만 해도 그렇다. 겨울이 떠나고 있음은 비오리와 넓적부리의 행동에서도 뚜렷이 감지된다. 수십 마리가 떼 지어 서식하는 비오리가 얼지 않은 수면(水面)을 찾아 느긋하게 낮잠 자는 모습에서 가는 동(冬), 오는 춘(春)을 읽을 수 있다. 넓적부리도 겨울 분위기가 옅어질수록 물 빠진 부들자리에 옹기종기 모여 가면(假眠)하는 행동이 자주 목격된다. 동장군은 이미 태화강 하류 명촌교 주변에서부터 떠나고 있다. 수면을 바둑판삼아 촘촘하게 놓여있던 검은 바둑알 같은 물닭, 공작부인 혹부리오리, 호사비오리 등 다양한 종의 많은 개체수가 오십견을 앓는 남자의 장백이 머리카락처럼 듬성듬성해졌다.

겨울 막차의 낌새는 쇠물닭과 물닭의 모습에서도 엿볼 수 있다. 쇠물닭은 무엇을 보고 부끄러워하는지 이마 판의 붉음이 나날이 더해 간다. 물닭은 무엇을 보고 질렸는지 하얀 이마 판이 날로 희어져 가고 있다. 겨울의 봇짐은 직박구리의 뺨에서도 나타난다. 겨우내 그 흔한 보습크림·로션조차 외면하며 민낯을 고집하던 수다쟁이 삐쭉이도 가는 겨울의 마중 길에 나섰는지 갈색 얼굴이 어느 새 붉게 변했다. 발색이 예쁘게 먹은 것은 아마도 색조(色調) 화장술에 내공이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가는 겨울은 동백의 붉은 유혹에 걸려든 앙증스러운 동박새 뺨에서도 찾을 수 있다. 동박새는 진종황제의 권학(勸學) ‘장가드는 데 좋은 중매쟁이 없음을 한탄하지 마라(娶妻莫恨無良媒), 책속에는 얼굴이 옥같이 예쁜 미인이 있다네(書中有女顔如玉)’라는 글월에도 아랑곳없이 얼굴에 온통 노란 꽃가루 분칠로 동백 중매하기에 바쁘다. 까치는 일지감치 1월 초순부터 간짓대 같은 ‘메타세쿼이아’를 선택해 둥우리 짓기에 분주하더니, 2월이 되자마자 가지가지마다 노방 같은 사랑의 하트를 매달고 있다.

2월의 여명은 1월의 새벽보다 부드럽다. 보름달을 배경막으로, 태화강 반영을 무대로 삼아 펼쳐지는 떼까마귀의 군무는 강강술래 원무(圓舞)인양 경이롭고 신비롭고 한결 부드럽다. 보름달이 조명인양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떼까마귀의 날갯짓은 마치 부드러운 사막(絲幕)의 느낌이 더해진 듯 포근함을 느낀다. 이 광경을 느끼노라면 문득 봄맞이 대길(大吉)과 다경(多慶)이 어찌 입춘방(立春榜)에만 머물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많이 잡는다.’는 어른들의 가르침과 같이 부지런함 속에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더하게 된다.

2월은 결코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칙칙한 겨울 빛을 과감하게 걷어내기 시작했다. 이제 싱그러운 초록색 봄을 맞이하자. 비록 미약(微弱)하게 시작한 봄이지만 그 결과는 창대(昌大)할 것이다.

겨울은 플랫폼을 떠나는 기차처럼 서서히 움직이고 있지만 지난 1월은 유례가 드물게 추웠다. 울산기상대 기록에 의하면, 31일 중 영하의 기온이 무려 23일이었고, 평균기온은 -3.3℃이었다. 최저기온은 -12. 4℃(26일)를 기록했다. 영하 23일의 평균기온도 영하 5.2℃이었다. 2017년 1월의 경우, 영하 일수는 20일이었고, 평균기온은 -1.5℃, 최저기온은 -8.7℃(15일)이다. 결국 정유년 1월보다 무술년 1월의 기온이 2배가량 추웠음을 알 수 있다. 모두 낙목한산(落木寒山) 삭풍의 계절을 버틴 까치밥 감처럼 잘도 견뎌냈다. 2월, 겨울은 떠나고 봄이 다가오고 있다.

김성수 조류생태학 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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