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의시네에세이] 삶과 죽음, 그리고 운(運)
[이상길의시네에세이] 삶과 죽음, 그리고 운(運)
  • 이상길 기자
  • 승인 2018.02.01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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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한 장면.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장면은 사실 도입부에 나온다.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모스(조쉬 브롤린)가 화면상에 처음 등장하는데 그는 지금 텍사스 사막에서 사냥 중이다. 모래 언덕 위에서 그가 사냥하려는 건 멀리 초원에 모여 있는 사슴 무리들. 장총에 달린 망원경을 통해 그 중 한 마리를 겨냥한 모스는 마침내 방아쇠를 당긴다. 하지만 총알은 아슬아슬하게 사슴을 비켜가고 만다. 사슴 입장에서는 죽음이 간신히 자신을 비켜간 셈이다.

그런데 모스도 얼마 뒤 사슴과 비슷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모스는 그날 사냥을 접고 집으로 가던 길에 마약 판매상과 구매자로 추정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총격전으로 떼죽음을 당한 현장을 발견하게 된다. 생존자가 한 명 있었지만 “물을 달라”는 그의 호소를 무시한 채 모스는 200만 달러가 든 가방만을 챙겨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죄책감에 모스는 그날 밤 물을 한 통 받아 그 생존자를 다시 찾아갔다가 현장을 찾은 갱단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게다가 200만 달러가 든 가방에는 전파추적기가 달려 있었고, 잠시 후 그에게는 안톤 시거(하비에르 바르뎀)라는 최악의 사이코 패스 킬러가 따라붙어 그를 향해 총구를 겨눈다. 불과 몇 시간 전 모스가 사슴을 사냥하려 했듯이.

‘안톤 시거’라는 존재를 단순한 사이코 패스 킬러로만 본다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그저 흥미 만점의 스릴러 영화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도입부의 모스와 사슴의 관계를 시거와 모스의 관계로 이어서 본다면 영화는 색깔 자체가 달라진다. 아니, 그 철학적인 깊이로 인해 사는 게 갑자기 무시무시해질 거다. 그렇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삶’에 대한 영화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언제 어디서 죽음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위태한 우리들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초원에 모여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사슴들이 멀리 언덕 너머에 숨겨진 모스의 총구를 눈치 채기는 어려운 법. 그건 모스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다 죽어버린 거, 먹고 살기 위해 집어 든 200만 달러라는 행복의 가방 안에 추적기가 들어 있을 줄이야. 게다가 살인마의 추격까지 받게 될 줄 누가 감히 알았을까. 그렇게 사슴이나 모스나, 가장 행복한 순간에도 죽음의 신은 이미 그들 곁에 있었던 거다. 안톤 시거라고 또 다를까. 그는 영화 속에서 먹이사슬의 최상부에 위치하지만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된다. 두 번이나 파란불을 확인하고 교차로를 막 건너려는데 난데없이 다른 차가 옆에서 들이받지만 운 좋게도 죽음만은 피한다. 도입부에서 모스의 총알을 빗겨간 그 사슴과 뭐가 다를까. 결국 우리란 존재가 전부를 걸고 있는 삶과 죽음이란 게 전적으로 운(運)이라는 것. 무섭지 않나? 이거 실화다. 착하게 살면 그분이 복을 내려 줄 거라고? 미안하지만 모스도 죄책감에 착한 일을 해보려고 물을 한 통 들고 찾아가는 바람에 일이 더 꼬이고 만다. 현실에서도 선한 사람들은 일찍 가고, 악한 사람들이 더 오래 사는 경우는 흔하다. 전두환은 장수 노인이다.

해서 코엔 형제는 그 모든 무시무시한 광경들을 지켜봤던 영화 속 노인 경찰관 벨(토미 리 존스)을 통해 무척 겸손하게 마무리를 짓는다. 벨은 경찰을 그만두며 이렇게 말한다. “나이가 들어 늙으면 하나님이 알아서 우릴 보호해 줄 거라 믿었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니 다 부질 없는 기대였어. 하지만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않아. 왜냐면 내가 봐도 나는 참 별로인 인간인걸”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다. 2008년 2월21일 개봉. 러닝타임 1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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