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산책] 롤모델급 리더들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
[대학가 산책] 롤모델급 리더들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1.29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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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스포츠 스타가 탄생했다. 우리나라 테니스의 새 역사를 쓴 ‘정 현’. 4대 메이저 테니스 대회에서 활약하며 이른바 ‘정 현 신드롬’의 주인공이 되었다. 스스로 “천재 아닌 노력형”이라 말하는 정 현 선수. 그를 보며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1990년 초반 대학생이었던 삼촌의 영향으로 테니스 경기를 자주 보았고, 그 때 피트 샘프라스라는 선수를 알게 되었다. 16살 때 프로에 데뷔하여 세계 랭킹 839위로 시작해서 그해 97위를 기록한 것도 대단한데, 1990년 US오픈 대회에서 최연소 기록으로 우승하는 모습을 보고 피트 샘프라스처럼 멋있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테니스 자체가 생소했던 시절이라 우리나라도 저렇게 역경을 이겨내는 훌륭한 선수가 나와서 친구들과 함께 테니스 이야기를 신나게 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바람대로 최근 정 현이 혜성같이 등장했다. 테니스 영웅의 탄생에 라켓, 옷, 레슨 문의가 폭주하며 봄바람이 불고 있다. 그러나 나의 시선은 이슈의 중심이 아닌, 그의 ‘롤모델’에 있었다. 노바크 조코비치(Novak Djokovic)! 그가 있었기에 ‘정 현’ 선수도 성장할 수 있었다. 닮고 싶은 그의 샷을 수없이 따라했다고 근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2016년 1월의 첫 대결에서 0:3으로 졌던 정 현이, 2년 후 3:0으로 자신의 기준인 노바크를 넘어섰을 때, 둘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정 현 선수를 보면서 ‘롤모델(Role model)’의 영향력과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사전적 의미는 “한 사람을 정해 그 사람을 표본으로 여기고 성숙할 때까지 모델로 삼는 것”을 말하지만,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다. 앞선 이들을 영양분삼아 성장하는 김연아 키즈, 박지성 키즈를 봐도 알 수 있다. 누구나 각자의 모델을 가지고 모방하며 자란다. 엄마의 입모양을 따라 하는 아이처럼 말이다. 나 또한 그러했듯이.

25년 전 울산 비평준화 시절에 고등학교를 다녔다. 중학교 때와 달리 성적이 비슷한 학생들끼리 같은 공간에서 경쟁하다 보니, 3년 동안 각자가 치열해질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학생들 사이에서 공부로는 1등을 못할 것 같았고, 그 대신 등교를 제일 빨리 했다. 성실함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마치 수업을 미리 준비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모양새에 부모님은 좋은 자세라며 칭찬해 주셨다. 그러다 보니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몸에 배어 대학생이 되어서도 항상 일찍 가서 수업을 준비하게 되었다. 습관대로 오전 9시 강의면 7시에 먼저 와서 앉아 있어야 하루 종일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2년 남짓 보내고 났을 무렵 처음으로 7시 30분쯤에 문이 열렸다. 한 젊은 여성이 강의실에 들어와서 둘러본 후 나에게 말을 걸었다. “학생은 왜 이렇게 일찍 와서 강의실에 앉아 있지?” 나는 “일찍 오면 기분이 좋아서요”라고 답했다. 그분은 학교 선배이자 학과에 첫 부임해 오신 강사분이셨다. 그날 이후 나의 성실한 면을 눈여겨봐 주시고 높이 평가해 주셔서 더욱더 열심히 하게 되었고, 학과성적도 갈수록 올랐다. 나는 대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싹트고 점점 커져서 그분의 길을 따라 걷게 되었다. 자연스레 본보기 상으로 삼고 열심히 뒤쫓았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모여 현재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원하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울산제일일보 기사를 읽던 중 나의 이름을 발견했다. 대학생 칼럼인 ‘무지개떡’에 연재된 글 중 “이렇게 항상 새로운 다짐을 할 때 가장 큰 원동력이 되어 주는 나의 롤모델 강소은 교수님께 이 지면을 빌어 깊이 감사드린다.”라는 글을 본 것이다. 깜짝 놀랐다. 단 한 번도 내가 누구의 롤모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 울컥 두려움이 몰려 왔다.

다른 이에게 지향점이 된다는 것의 책임감과 그 무게는 생각보다 훨씬 더 어마어마했다. 10년 동안 학생들에게 했던 강의 내용과 나눈 상담, 대화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혹시 잘못된 행동이나 조언을 한 적은 없었나?’ 기억을 더듬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으로 며칠을 고민하다가 새해를 맞아 결심했다. ‘조코비치처럼 멋있는 롤모델이 되어야지. 혹시 나를 본보기로 생각하는 학생들이 또 있다면 나보다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길을 내 주어야지. 내 몸짓 하나에도 사명을 가지고 마음을 담아야지’ 이렇게 2018년을 시작했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누군가의 소망일 수 있다. 이상향을 그리는 이도, 이미 정점에 서서 누군가에게는 모델인 사람도, 서로가 존재하기에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밀고, 밀어주면서 내실을 채워 가는 한 해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강소은 울산대 식품영양학과 겸임교수·울주 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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