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소리 쓴소리]남북 진영이 뒤바뀐 까닭은?
[단소리 쓴소리]남북 진영이 뒤바뀐 까닭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1.28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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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에 호흡을 맞추고 있는 남북 관계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첨예한 대립을 되풀이하고 있는 여야 사이의 정치적 진영논리를 말하려는 건 더더욱 아니다. 420년 전 정유재란(丁酉再亂) 무렵 조명(朝明)연합군과 왜군이 피를 튀기며 공성(攻城)과 수성(守城)을 거듭하던 도산성(島山城=울산왜성)전투 당시 양쪽 군진(軍陣)에 관한 일화를 전하려 할 뿐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권율-양호 장군 휘하의 조명연합군 지휘부는 현재의 ‘충의사’ 자리인 학성산에다 진을 쳤고,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왜군의 장졸들은 현재의 울산왜성(학성공원)에다 진을 쳤다. 그 처절한 피비린내 현장 ‘학성공원’을 찾는 이라면 정유재란 1차 전투 당시(1597.12.23∼1598.1.4)의 전황을 대충은 짐작할 수 있는 2개의 부조(浮彫)와 2개의 동상(銅像)을 지금 당장이라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동상은 원래 세 장수의 조형물을 세우기로 했으나 쪼그린(?) 모습의 왜장 가토 가요마사(加藤淸正)의 것은 다 만들어 놓고도 빛을 못 보고 말았다. 거친 부정적 여론에 밀린 탓이다.

그래서 볼 수 있게 된 것은 말을 탄 조명연합군 장수 2명의 모습뿐이다. 조선의 도원수 권율(權慄)과 명나라의 최고지휘관 양호(楊鎬)가 그 주인공. 여기서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처음 밑그림과는 달리 동상의 위치가 180도로 바뀐 사실이다. 북쪽에 세우기로 한 조명연합군 두 장수의 동상이 남쪽으로 내려감으로써 설자리가 바뀌고 만 것.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까닭이 있었다. 그 이유, 즉 두 동상의 위치변경에 대한 설명은 공사 관계자들의 전언에 따른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

동상과 부조가 들어서 있는 ‘학성공원 서쪽 진입로’ 앞 화단은 남쪽이 넓은 반면 북쪽은 좁다. 특히 공원 화장실이 올려다 보이는 북쪽은 동상 2개가 한꺼번에 들어가기가 버거울 정도로 좁다. 누가 보더라도 그렇게 느낄 것이다. 그런데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설계담당자에게 착각이 생겼던 것일까? 처음 설계도면대로라면 정유재란 당시의 전투지형(戰鬪地形) 그대로 권율-양호 장군의 동상은 북쪽에, 가토 기요마사의 동상은 남쪽에 배치될 참이었다. 하지만 차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기형적 배치’를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동상이 설자리는 남(南)과 북(北)을 바꾸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설계변경이 이뤄진 것이다. 그런 와중에 또 다른 악재가 터졌다. 왜장(倭將) 가토 기요마사의 동상 건립 소식이 전해지면서 반대여론이 맹렬한 기세로 불붙기 시작한 것. 결과는 일본인 관광객 유치에 심혈을 기울여 온 학성공원 관리 주체의 판정패로 끝이 났다. 중구는 사정이 더 나빠지기 전에 백기(白旗)투항(?)으로 위기 수습에 나섰다. 불명예도 무릅쓰면서 발 빠르게….

흥미로운 사실은 또 한 가지 더 있다. 두 장수의 동상이 자리를 바꾸는 바람에 ‘조명연합군 진영’과 ‘왜군 진영’의 동태를 알 수 있게 대리석에 새긴 두 종류 부조의 위치변경이 불가피해진 일이다. 5가지 전투상황도와 5가지 상황설명이 곁들여진 ‘조명연합군 진영’ 부조, 그리고 4가지 전투상황도와 4가지 상황설명이 곁들여진 ‘왜군 진영’ 부조 역시 남북으로 자리바꿈을 하면서 끝내 기형적 배치로 굳어지고 만 것.

‘기형(畸形)’은 권율 장군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에서도 찾을 수 있다. 숨은그림찾기라도 하듯…. 동상이 위치한 곳은 왜성(倭城) 앞쪽이다. 그러긴 해도 장군의 시선은, 물론보기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조명연합군의 지휘부가 있는 북쪽 혹은 북동쪽을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장군의 얼굴은 공원 입구 주차장에서가 아니라 공원 화장실을 뒤로한 채 똑바로 서야 바로 볼 수 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도 일종의 ‘역사적 아이러니’인가?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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