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 눈치 보며 사는 시대
며느리 눈치 보며 사는 시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11.25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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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주변에서 알아주는 시인(詩人)이다. 월탄(月灘) 문학상도 받은 바 있다. 아주 서정적인 시를 쓰며, 말의 맛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어휘 선택에 심혈을 기울이는 사람이다. 물론 이런 일은 시인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런 사람이 첫 손녀딸의 이름을 어느 사주팔자(四柱八字), 이름 보는 사람의 권위에 눌려 뺏기고 말았다. 그 내력은 며느리의 할머니께서 90이 넘으셨어도 정정하게 살아계시는데, 증손녀의 사주팔자(四柱八字:태어난 시(時), 일(日), 월(月), 년(年))를 따져 이름을 지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덜컥 작명소의 지시를 따라 결정해버린 것이다. 진짜 이름값을 지불하셨을 것이다. 한자의 획수와 사주(四柱)가 조화롭게 어울려야 한다는 주장이셨다. 며느리도 자기를 끔찍하게 사랑해주셨던 할머니의 전문가(?) 수준의 합작 작명이니까 이에 따랐음은 물론이다. 이것을 자기가 시인입네 하고 다른 이름으로 바꾸어버리면 사돈댁에서 딸 가진 집이라고 섭섭해 할 것은 물론 며느리는 입이 삐져나올 만큼 화가 나서 자기 아들 반찬을 제대로 챙겨주지 않을 것 같아 참아버렸다. 며느리 눈치를 보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자신이 결혼할 때, 혼자이신 어머니께서 사귀는 여자 친구의 생년월일을 알아오라고 하였을 때, 가짜로 알려드려 손쉽게 허락을 받아냈었다. 다분히 모사꾼기질이 있었는데 막상 손녀의 이름 짓기에서는 그럴 틈이 없었다.

모사(謀事)의 방법은 간단했다. 유명한, 실력이 있다는 사주팔자를 보아주는 집에 찾아가서 자신의 생년월일을 음력으로 적어주고 여기에 걸 맞는 여자 쪽의 생년월일 두개를 알아보아 달라고 한 뒤 복채를 주고 나왔다. 그중의 하나, 나이 차이가 2년이 되는, 실제로는 한 살 차이인데, 이것을 어머니께 드린 것이다. 어머니는 어디 다른 사주팔자 보는 곳에 가서 며느리 감의 사주라고 하면서 아들의 생일과 궁합이 맞느냐고 알아보고 천상배필이라는 대답을 얻었을 것은 명약관화한 것이다. 그러고서 몇 년 동안은 부인의 생일을 두 번 챙겼다. 한 번은 가짜 생일로 자기 집에서, 다른 한 번은 진짜로 처가 집에서 챙겼다. 생일 턱을 두 번이나 받는다고 좋아했으나 몇 년 지나서는 진짜 생일이 시들해지고, 가짜 생일이 진짜 생일이 되고 말아버렸다. 물론 어머니께서 며느리 생일을 잘도 챙기셨기 때문이다. 약간은 시어머니가 떡두꺼비 같은 손자를 낳아준 며느리 눈치를 보며 사시기 때문에 그러셨던 것이다. 또한 당신의 아들한테 잘 해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 사람은 지금 손녀딸이 두 살 또는 세 살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때가 되면 정부의 정책에 맞추어 ‘손자 하나쯤은 더 낳아야 할 것 아니냐?’ ‘저 먹을 것은 다 갖고 태어나는 법이다.’ ‘늙은 우리가 보아 줄 떼니까 하나는 더 낳아야 한다.’고 시어머니를 통해서 넌지시 압력을 넣을 계획을 하고 있다. 벌써 이름을 지어 놓고 태기가 있다고 하면 출생신고부터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손자 보아준다는 말에 자기 부인은 펄쩍 뛰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은근히 기대하는 말이 ‘우리는 아들 딸 구별하지 않으니까 이번에는 아들을 낳을 것이다.’는 이상한 논리를 펼친다고 한다. 며느리 눈치를 보지도 않고 하는 말이다. 큰일 날 소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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