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학급 졸업생 표창, 후임자도 이어갔으면”
“특수학급 졸업생 표창, 후임자도 이어갔으면”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8.01.23 2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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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형범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울산지사장
정부 장려금 지원에도 일반사업장 장애인 고용 꺼려
장애인 자립의지 확산 위해 부모교육의 필요성 강조
직업훈련원 취업률 95%… 직장인식도 함께 바뀌어야
▲ 송형범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울산지사장.
장려금보다 부담금 더 많은 고용비용

현대해상빌딩(남구 번영로 131) 10층 전체를 너르게 사용하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울산지사. 자동문이 열리면 남구청에서 파견 나온 안내 여직원의 밝은 미소가 내방객을 맞는다.

‘몸에 밴 친절’은 “장애인이 주인”이라는 송형범 지사장(57·지체장애 3급·사진)의 복무 철학. 호흡을 같이하는 다른 직원 20명도 무언의 원칙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어려울 수도 있는 질문부터 불쑥 던졌다. ‘150세대 이상 거주하는 울산지역 아파트에서 경비원·미화원으로 일하다 자치위원회 결정으로 해고된 장애인이 50명이 넘는다’는 보도에 대한 느낌에 대한 질문, 바꾸어 말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후유증에 관한 질문이었다. 망설임 끝에 답이 돌아왔다. “사실이라면 대규모 아파트 용역업체에서 그랬을 가능성이 크지요.” 정부 지침도 있고 해서 1월 말쯤엔 용역업체에 대한 실태조사에 나설 참이라 했다.

대화는 일반사업장 쪽으로 옮겨 갔다. 장애인을 고용하면 정부에서 1인당 13만원씩 장려금을 지원키로 했지만 잘 먹혀들지 않는다는 게 송 지사장의 진단이다. 부연설명을 하자면 이렇다. 그동안 사업장에서 장애인을 고용하면 장애 정도에 따라 여성은 1인당 30~40만원, 남성은 1인당 50~60만원의 장려금을 지원해 왔다.

정부에서는 새해 최저임금제 시행에 발맞춰 1인당 13만원씩 고용장려금을 지원한다고 했으나 ‘이중지원’을 해도 되는지 아직 명확한 지침이 없어 주춤한 상태라는 것.

그의 진단은 흥미로운 현상과도 무관치 않다. ‘흥미로운 현상’이란, 공기업과는 달리 일반기업들이 장애인 고용을 고의로 꺼리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고용장려금을 받기보다 고용부담금을 무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기업들이 의외로 많습디다. 지원하는 장려금보다 걷히는 부담금이 더 많은 기현상이 나타나는 이유지요.”

장애인 부모 “얘는 이런 일 시키면 안돼”

정식 등록된 울산지역 장애인 수는 4만9천700여 명. 미등록 장애인까지 합치면 약 5만 명이다.

그러나 이는 전국 18개 광역시·도 중 제주도 다음으로 적은 숫자.(부산은 약 19만 명). 그런저런 이유로 울산지사는 지난해부터 경남지사에서 떨어져 나온 양산·밀양지역 장애인 고용문제까지 도맡고 있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궁금증을 송 지사장이 풀었다. ‘장애인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라는 잘못된 선입견 탓이 제일 크다고 했다. 80~90년대와는 달리 2010년 이후로는 집안형편이 좋아서인지 ‘내가 나가서 꼭 돈을 벌어야지’하는 장애인 스스로의 목표의식이 엷어진 탓도 한 몫을 거든다고 했다.

울산지역 장애인들에 대한 특징적 느낌도 얘기했다. “가정환경 탓인지 ‘극과 극’이란 느낌을 받지요. 울산에는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SK와 같은 대기업 영향으로 부티 나는 장애인도 많아서인지 소득 양극화 현상이 뚜렷한 면도 있고요.” 그런 특징은 깨끗하고 깔끔한 옷차림이나 외모에서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더러는 황당한 경우와 맞닥뜨리는 일도 있다. “어떤 장애인 부모들은 20~30대 장애인 자녀를 보고 ‘얘는 이런 일 시키면 안 된다’고 계속 우기시는 겁니다. 자립의지를 키워주지 않고 언제까지 그러고 살아갈 건지….” 결론적으로 송 지사장은 ‘장애인 부모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요즘은 세태가 또 변하고 있다고 했다. 고용공단 지사를 찾아오는 장애인들 중에 잘 사는 집 자녀들이 더 많아졌다는 것.

울산장애인, 부산 기장서 주로 훈련

장애인고용공단의 주요 업무는 문자 그대로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일. 이 일을 위해 공단은 전국 5곳(일산, 부산, 대구, 대전, 전남)에 직업능력개발원을, 전국 4곳(서울, 인천, 대구, 광주)에 발달장애인훈련센터를 두고 있다.

장애인들은 자연스레 가장 가까운 교육훈련장을 찾기 마련이다. 울산지역 장애인들이 주로 찾는 곳은 부산 기장군 정관읍에 있는 180명 수용 규모의 부산직업능력개발원. 울산에서는 항시 20명 안팎의 장애인들이 이곳 신세를 진다. 그러나 청각장애인들만은 발길을 대구 쪽으로 돌린다. 개발원 간 ‘훈련생 받기’ 경쟁의 산물이라고 했다.

교육훈련기간은 6개월에서 2년 사이로 수시 입교와 수시 수료가 물 흐르듯 이뤄진다. 출퇴근도 가능하지만 기숙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훈련비는 전액 공단 지원이다. 취업률이 평균 95%라니 꽤나 괜찮은 성과다.

송 지사장은 15곳이나 되는 중증장애인재활작업장에도 관심과 애착이 많다. 울산 혜인학교 출신이 70%나 되는 중구 성안동 ‘하늘물고기’도 기회 있을 때마다 도운 곳 중의 하나. 도울 수 있는 것이라곤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의 다리를 놓아주는 일이었다. 이 때문에 같은 고용노동부 산하 공기업 책임자를 여럿 만나기도 했다.

발달장애인이 20명 가까이 일하고 있는 하늘물고기의 경우 중증장애인들이 받는 대가는 1인당 많아야 월 20만 원 남짓. 그래도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런 말을 한다. “돈 한 푼 안 받아도 좋으니 데리고만 있어 달라”고….” 그 이유를 송 지사장이 설명했다. 지내기 편하고 친구도 사귈 수 있어 좋은데 일반사업장에 가면 외롭고 ‘왕따’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

수도권 장애인 배려로 본사는 분당에

울산혁신도시에는 원래 고용노동 관련 공기업과 에너지 관련 공기업 본사가 대거 입주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울산에 둥지를 튼 고용노동부 산하 기관은 산업인력공단, 산업안전공단, 근로복지공단 선에서 그쳤고, 장애인고용공단 본사는 성남시 분당구에 남고 말았다. “장애인들이 수도권에 대부분 몰려 있다 보니 그분들을 배려하는 차원의 결정이었을 겁니다.”

알고 보니 송 지사장의 이력에는 노동계 몫의 ‘대구혁신도시 선정위원’(2005~2006)도 들어가 있다. 바로 그 무렵 그는 민주노총 소속 산별노조인 ‘연구전문노조’의 위원장직을 맡고 있었다.

노동 관련 직함은 그밖에도 더 있다. 장애인고용공단의 3대, 5대 노조위원장직을 역임했던 것. “당시 조합원은 전체직원 380명 가운데 90%나 됐고, 약 800명으로 불어난 지금도 85%가량은 조합원일 겁니다.” 그는 노동조합에 관여한 사실에 아직도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았다.

4년 전 현직에 부임한 송형범 지사장에게 울산 근무는 올해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4년 세월 동안 잊혀지지 않는 일도 적지 않다. 부산지사 근무 당시의 경험을 살려 특수학교와 고교 특수학급 네 군데 졸업식장을 찾아가 공단 지사장 명의의 표창장을 수여한 일도 그 중 하나다. 표창장은 학교장이 추천하는 졸업반 우수학생들의 손에 쥐어졌다. “표창장을 받는 장애인 졸업생들의 사기가 올라가고 부모님들에게도 공단의 존재를 알릴 수 있어 보람이 컸습니다. 이 의미 있는 행사, 제가 떠나더라도 후임 지사장이 전통으로 이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 9월 울산 개최

장애인고용공단과 울산시의 공동 주최로 오는 9월 울산서 열리게 된 ‘2018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는 송 지사장이 2년간 설득한 끝에 일구어낸 수확물이다. ‘전국 순회’로 열리는 이 대회가 다른 광역시는 다 돌았지만 유독 울산시만은 신청조차 하지 않았고, 그래서 한동안 실망이 컸다.

“지난해는 광역시 승격 20주년이기도 해서 울산에 유치 신청을 하자고 여러 번 요청했는데도 시에서 미적거리는 바람에 작년엔 부산서 한 번 더 가져가고 말았지요.” 그의 말 속에는 섭섭함이 한가득 묻어 있었다. 전체 소요예산 18∼20억 가운데 시가 분담할 비용은 1억 원뿐인데도 그랬다면서….

하지만 모두 과거지사일 뿐이다. ‘울산 개최’로 가닥이 잡혔으니까. 18개 시·도에서 지역예선을 거쳐 꾸려질 시·도별 선수단 규모는 기본이 350명. 6월 중 지역예선에서 선발되는 직종별 금메달리스트들은 9월 중 3박4일간 열리는 울산대회에서 다시 자웅을 겨룰 것이다. 특히 전국대회 금메달리스트에게는 4년마다 열리는 세계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 한국예선에 출전할 자격이 주어진다. ‘국가대표’ 자리를 다투게 되는 것.

공단 본부로서는 연중 가장 큰 행사의 하나인 대회 준비로 촌각을 쪼개 써야 하고, 개최지에 소재한 울산지사로서는 갈수록 더 바삐 움직여야 한다. 대회장소 선정에서 전국 선수단 숙소 예약에 이르기까지 할일이 태산 같다. 울산대회의 성공개최는 자신의 명예도 걸린 문제이기에 송 지사장의 마음은 벌써부터 벅차다.

김신 대법관·문병원 시의원과도 교유

송형범 지사장은 중복장애인과의 사이에 얽힌 아름다운 에피소드도 간직하고 있다. 지금은 보통나이 30에 어엿한 김해세무서 공무원이지만 2년 전만 해도 그(당시 28세, 특례입학으로 서강대 경영학과에서 수업)는 부모를 애태우는 집안의 고민거리였다.

“헬렌 켈러 아시지요? 하루는 그의 아버지가 장문의 편지를 보내왔는데 아들이 시각장애 1급. 청각장애 2급. 지체장애 3급의 중복장애인이라며 간곡하게 상담을 요청해 왔어요. 부산에 내려가 당사자와 부모를 만났는데 사연을 받아 적고 상담하는 데 무려 4시간이나 걸렸답니다.”

송 지사장은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그에게 그 뒤로도 성실하고 든든한 멘토가 돼 주었고, 마침내 그를 자부심 넘치는 의지의 국가공무원(9급 세무직) 자리에 앉히는 데 성공한다.

부산 좌천동이 고향. 부산고(34회)를 거쳐 부산산업대 회계학과를 졸업(1986)하고 노사관계 최고지도자 과정을 수료(1998)했다.

고교 선배인 김 신 대법관(전 울산지법원장, 부산고 29회)과는 대학 다닐 때 장애인 모임인 청애회(靑愛會) 회원으로 같이 활동하며 우정을 쌓았다. ‘사회선배로 깍듯이 모시는’ 울산시의회 문병원 의원과도 ‘절친’ 관계를 꾸준히 유지해 오고 있다.

‘갑질 추방’ 노력 덕분인지 지난해엔 장애인고용공단 산하 18개 지사 가운데 ‘고객만족 1위’의 영예를 차지하고 그 기쁨을 직원들과 함께 나누기도 했다. “복불복이라 해야겠지요. 허허.” 인터뷰 내내 잃지 않은 그의 웃음이 오랜 잔상으로 남았다.

글= 김정주 논설실장·사진= 장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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