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평화 올림픽’
이상한 ‘평화 올림픽’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1.2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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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아이스하키 세라 머레이 감독이 결국 ‘허수아비’가 됐다. 사상 첫 올림픽 참가라는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의 부푼 꿈과 기대는 결국 ‘대의(大義)’라는 갑질(?)에 의해 짓밟히고 말았다. 이제 되돌릴 수는 없다. 의지와 무관하게 남북 선수들은 한반도기를 달고 올림픽에 나서야 한다.

전략과 전술, 개인 기량과 상관없이 북한 선수 3명이 무조건 출전하는 방식이다. 한국 선수 3명은 빙판에 서지 못한다. 남북단일팀의 의의를 살린다는 이유로 스포츠에서 금기시하는 ‘허수아비 사령탑’을 만든 셈이다. 그동안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는 줄곧 “우리 선수들의 피해는 없을 것이다. 최소할 것이다”고 말했지만 처음부터 지키지 못할 약속이었다.

치열한 입시난과 취업난을 겪은 2030세대는 공정과 정의를 중시한다. 그래서 올림픽을 위해 청춘을 바친 선수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피해를 보는 데 반감을 표시하고 있다. 갑질에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을처럼 희생당하는 모습에 동질감을 느끼고 있다. 국내 여자 아이스하키 팀은 단 1개, 그게 국가대표팀이다. 실업팀도 학교팀도 없다. 수입은 국가대표 훈련수당 하루 6만원이 전부다. 한 달에 20일 훈련하면 120만원을 받는다.

남·북한이 올림픽 등 국제 스포츠대회에 단일팀 파견 논의를 시작한 건 1964 도쿄올림픽 무렵부터다. 그 이후 첫 단추를 꿰는 데만 27년이 걸렸다. 지난 1991년에야 비로소 탁구와 축구에서 단일팀을 만들어 국제무대에 선보일 수 있었다. 독일이 반세기 전에 성사시킨 종합대회 단일팀은 여전히 먼 이야기다. 평창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남북이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운영에 합의했지만, 이 또한 거센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았다.

지금으로부터 62년 전인 1956년 1월, 코르티나 담페초(이탈리아)에서 열린 겨울올림픽 개회식에 독일선수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 선수 52명과 여자 선수 11명. 여느 대표팀과 다를 바 없는 63명의 선수들이었지만, 전 세계가 이들을 주목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독과 서독으로 나뉜 독일이 하나의 깃발 아래 올림픽에 모습을 드러낸 첫 무대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단일팀의 명칭을 ‘독일(Germany)’로 정했다. 검정과 빨강, 노랑의 삼색기를 국기로 썼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의 하이라이트 ‘환희의 송가’를 국가 대신 사용했다.

동·서독이 올림픽 단일팀을 구성한 과정은 2018 평창올림픽 단일팀을 준비 중인 남·북한보다 체계적이었다. 논의는 올림픽 개막 2년 전인 1954년부터 시작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단일팀 구성의 디딤돌을 놓았다. IOC 비가맹국이던 동독을 올림픽 무대에 끌어들이기 위해 ‘동·서독 단일팀’이라는 아이디어를 냈고, 두 나라가 이를 받아들였다.

선수 선발 기준은 간단했다. “정치적 안배 없이 오직 실력만으로 뽑는다”는 원칙 하나만 정했다. 이는 동독과의 단일팀 구성에 반대하는 일부 서독 국민들을 달래기 위한 결정이었다.

두 나라의 스포츠 기조(基調)가 서로 달랐지만, 독일은 충분한 준비 기간과 객관적인 선수 선발을 통해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다.

평창올림픽 이후에도 국제대회 단일팀 구성과 관련한 논의가 이어진다면, 충분한 준비 기간과 객관적인 선수 선발로 논란을 잠재운 독일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남북 스포츠 교류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지만 독일처럼 시간적 여유를 갖고 진행할 때 진정하고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가 있다.

신영조 시사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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