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가산책]가상화폐의 비이성적 과열
[금융가산책]가상화폐의 비이성적 과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1.16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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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하반기부터 가격이 급등하고 있는 가상화폐가 2018년 새해에도 여전히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가상화폐에 대한 찬반 열기가 뜨겁다.

찬성하는 쪽에서는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는 미래화폐의 대안으로 사용하자는 입장이다. 이와는 달리 반대하는 쪽에서는 가상화폐가 컨트롤타워가 없는 개인 간의 거래이다 보니 가격이 폭등하는 등 투기 양상을 띠고 있으며, 자금세탁, 해킹, 테러자금 등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입장이다.

세계 각국의 입장 또한 나라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제각기 다르다. 미국에서는 비트코인의 선물거래까지 허용하고 있고, 일본과 독일 같은 나라에서는 지급결제 수단으로 허용하고 있다. 반면에 중국에서는 채굴과 거래를 모두 금지하고 있고, 호주에서는 개인 은행계좌를 동결한 상태이며, 이스라엘에서는 금융감독당국이 가상화폐 업자의 영업금지를 검토하고 있다. 특히 이집트에서는 이슬람교 최고지도자가 가상화폐를 이슬람율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투기성 높은 도박과 닮았다며 종교령으로 금지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나라마다 가상화폐에 대한 온도차가 존재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가상화폐에 대한 찬반 열기가 뜨겁다. 우리나라에서는 모 방송 프로그램이 ‘20대의 한 청년이 가상화폐 8만원으로 280억원을 벌었다’는 내용의 방송을 내보내는 바람에 가상화폐 열풍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다. 인터넷에서는 단기간에 수억원을 벌어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등 가상화폐의 투자수익을 인증하는 글이 연일 올라오고 있다. 또한 ‘가상화폐 좀비’, ‘김치 프리미엄’(=한국의 가상화폐 가치가 세계 가상화폐 시장의 40~50% 이상 비싸다는 의미). 가상화폐 투자 소외계층이 걸리는 ‘코인 블루(우울증)’ 등 신조어도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가상화폐에 뛰어들고 있는 연령대는 주로 20, 30대가 많고 10대도 덩달아 뛰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취업이 힘들고 월급만으로는 내 집 마련이 어려운 20, 30대가 가상화폐에 올인을 해서 인생역전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17세기 초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 2000년대 초반의 로또 열풍, ‘닷컴 버블’ 등을 연상시킨다. 닷컴 버블의 붕괴, 주식 폭락, 글로벌 금융위기 등 버블 붕괴에 대한 학습효과를 겪은 세대들은 가상화폐의 과열에 깊은 우려와 불안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러한 양상이 자칫 세대 간의 갈등으로 비쳐질 우려도 적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일본 등지에서는 가상화폐 사기가 증가하는가 하면 가상화폐 계정을 악용한 보이스피싱 범죄인 ‘코인 피싱’ 범죄도 기승을 부려 금융소비자의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 금융소비자들의 주의와 함께 감독당국의 발 빠른 대응이 요망되는 시점이다.

가상화폐의 이념은 ‘자유’와 ‘평등’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실제 보유 현황을 보면 평등이 아니라 부의 편중화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단 4%의 가상화폐 투자자가 전체 97%의 가상화폐를 보유하고 있다.” “가상화폐 채굴량은 중국이 세계의 68%를 차지하고 있다.” “가상화폐거래소의 시장점유율은 중국이 93%로 압도적이다.”

이렇듯 가상화폐 시장의 편중화로 인한 수요공급의 불균형으로 가상화폐 시장이 과열화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이 작금의 양상이다. 지금의 가상화폐 시장은, 1996년 당시 미국 Fed (연방준비은행제도, Federal Reserve System)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이 미국 주식시장의 급속한 상승에 대해 경고한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라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미국 월가에서는 금융맨들의 보너스 시즌에 젊은 금융맨들의 가상화폐 투자로 인한 비트코인 랠리가 시작될 것이라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이제 더 이상의 비이성적 과열이 오기 전에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 공조를 통해서라도 가상화폐 컨트롤타워를 만들어 가상화폐 시장의 제도적 연착륙을 이끌어내야 할 시점에 온 것 같다.

손광호 KB국민은행 울산혁신도시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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