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쇼(No-Show)
노쇼(No-Show)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1.15 21: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골프를 즐기기 위해 예약을 했다가 못갈 형편에 놓이면 보통 3~4일 전까지 취소 통보를 한다.

골퍼들은 누구나 다 안다. 취소 통보를 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이다. 또 골퍼들간 골프 약속을 하면 펑크를 내는 일이 거의 없다.

한 번 약속을 어기면 다음엔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 칼 약속이라고나 할까.

그런 골퍼들도 식당 예약을 해놓고는 그냥 안가는 경우가 있다. 예약부도, 이른바 ‘노쇼’(No Show)인 것이다. 노쇼의 이유는 당연 위약금을 물거나 다른 불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소상공인연합회에 따르면 음식점·미용실·병원·고속버스·소규모공연장과 같은 5대 서비스업종의 예약부도로 인한 매출 손실이 연간 4조5천억원이나 된다고 한다.

예약부도의 대표적인 사례는 단연 음식점으로 각종 모임이나 회식을 위해 식당을 예약한 후 통보도 없이 나타나지 않는 비율이 20% 정도라고 한다.

10개의 예약 중 2개가 펑크가 난다는 얘기다. 음식점은 준비한 식재료를 버려야 하고 다른 손님을 받지 못해 이중으로 피해를 보게 된다.

소상공인들은 손님이 예약에 대해 ‘가벼운 약속’ 쯤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어 피해가 꾸준히 발생한다고 호소한다.

노쇼와 관련한 자료를 찾다가 1998년 3월에 난 어느 일간지 기사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가던 “예약문화가 뒷걸음질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사에서 호텔은 금·토요일이면 예약실 직원들이 일요일과 월요일 예약자들의 투숙 여부를 확인하지만 4~5건은 예약부도가 난다고 했다.

고급문화의 상징인 예술의 전당도 예약부도율이 30%나 된다고 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노쇼’에 대한 한국 사회의 자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별로 개선된 것 같지 않다.

그러다 보니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소비자분쟁해결기준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노쇼로 인한 소상공인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소상공인 보호를 위한 외식서비스업 위약금 규정 개선’ 내용이 담겼다.

종전에는 돌잔치, 회갑연 등 연회시설 등 일정 규모 이상의 업소에 대해서만 위약금을 규정했지만 이번 개정안에는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외식업에도 예약 취소시기에 따라 위약금을 차등적으로 규정했다.

음식점의 경우 예약시간 1시간 전을 기준으로 예약보증금을 환급토록 한 게 개정안의 골자다. 예약시간을 1시간 이내로 앞두고 취소하거나, 예약 취소 없이 예약 장소에 나타나지 않으면 한 푼도 돌려받을 수 없도록 했다. 다만 기준 이전에 예약을 취소하면 예약보증금 환급이 가능하다.

공정위가 소비자분쟁해결기준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해서가 아니라 건전한 상거래 차원에서라도 노쇼는 사라질 때가 됐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현장에 가지 못한다면 취소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다. 골퍼들처럼 꼭 불이익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비윤리적 소비문화는 개선돼야 한다. 역지사지라는 말이 있듯이 내가 업주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을 한 번쯤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웃 나라인 일본에서는 예약을 지키지 않는 것은 가게 주인은 물론 다른 손님에게도 폐를 끼치는 ‘민폐’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박선열 편집국 부국장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