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울타리 밖으로 내친다고 좋은 건 아니죠”
“학교울타리 밖으로 내친다고 좋은 건 아니죠”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8.01.09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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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혜숙 울산시교육감 권한대행
▲ 류혜숙 울산시교육감 권한대행.

‘탈(脫)권위’ 좋아하고 책읽기 즐겨

“연간 100권 읽는 모임 만들고파”

부교육감실에서 만난 류혜숙 울산시교육감 권한대행(51·부교육감). 지난해 4월부터였으니 9개월을 넘겼다. 거의 매일같이 하는 오전 첫 행사 ‘7인 간부회의’의 흔적이 덜 가신 원탁에서 인터뷰가 시작됐다. 류 대행의 얼굴화장은 ‘미소’.

비밀의 커튼을 가벼운 질문이 열어젖혔다. “제 취미? 등산이죠. 주말에 서울서 산행과 ‘산사(山寺) 108배’를 즐긴답니다. 불교신도는 아니지만….” 북한산행 땐 두선사, 관악산행 땐 연주암을 찾는다고 했다.

가까이 서 있던 현태준 공보담당관이 슬쩍 끼어든다. ‘마라톤 완주’ 얘기다. 류 대행이 말을 받았다. “42.195km 코스 완주, 8번쯤 했을 거예요, 5년 전까지. 그 사이 몸이 늘었으니 다시 만들어야겠죠?” 자신과의 싸움인 마라톤 완주. 업무에 쫓길 땐 ‘마음의 사치’쯤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며칠 전의 기자간담회 얘기가 나왔다. ‘남긴 업적 가운데 딱 한 가지만 찍는다면?’ 이 질문에 류 대행은 ‘탈(脫)권위’를 지목했다. ‘권위’란 말에 ‘의전’, ‘인사말’이 꼬리로 붙었다. “행사 때의 인사말, 원고는 준비해도 그대로 읽진 않는답니다. 청중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이 무엇인지 먼저 짚어낸 다음 ‘나의 말’로 바꾸기 때문이죠.”

신영복 교수의 ‘담론’이나 목민심서 같은 데서 마음에 드는 글을 메모했다가 인용하곤 한다. 그만큼 책읽기 마니아다. 역점시책 ‘책 읽는데이’가 말해주듯 류 대행의 지난 한해는 ‘독서’에 매달린 1년이었다.

자신의 아이디어로 지난해 처음 시교육청이 선보인 ‘사람책 도서관’의 제1호 대출자도 류 대행이었다.

울산자연과학고의 대출 요청에 따라 12월엔 학생 200명 앞에서 특강을 베풀기도 했다. ‘사람책’이란 자신이 걸어온 인생을 책에 비유해서 붙인 용어.

류 대행은 울산에 와서 ‘주책단’(=1주에 책 1권 읽는 동아리 모임)에 가입, 매월 책을 10권씩 읽고 있다며 앞으로는 ‘연백단’(=연간 책 100권 읽는 모임)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또 책을 읽을 때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을 직접 손글씨로 베껴 써서 모으고 있다며 이를 ‘한줄 서평’이라 부르기도 했다.

자율학습 강제에 “애들 언제 씻고 자나?”

흘끗 시계를 본 다음 다소 무거운 질문 순서로 넘어갔다. 아쉬웠지만, 교육부가 멈칫거리거나 시교육청 스스로 속 시원히 매듭짓지 못한 시책은 원론적 답변에 그치곤 했다. ‘법외노조’ 딱지를 떼지 못한 ‘전교조’ 문제가 대표적.

학원의 심야교습 시간에 대한 대비책은 염두 밖인 듯한 느낌을 받았다. “현장 얘긴 못 들어 봤어요.” 솔직해서 좋았고, 이해는 갔다. 2016년 7월 1일 부임해서 한동안 최고결정권자(=교육감)의 눈치를 봐야 하는 부교육감 처지였으니 그럴 만도 하지 않았겠는가.

그래도 나름의 의견은 제시했다. “자율학습 얘긴데요, 말만 자율이지 거의 강제나 다름없어 보였어요. 마치면 학원 가는 시간 늦어질 텐데, 아이들이 언제 씻고 자나 싶어 의아한 생각마저 들었죠.”

서울의 고교생 학원교습 제한시간은 밤 10시까지이지만 1시간 더 앞당기자는 여론이 비등한 편. 하지만 밤 12시까지인 울산은 아예 손을 놓은 실정. (단속 권한은 강남·강북 교육지원청이 쥐고 있다.)

‘씻고 자야 하는’ 학생들의 건강권은 대학입시 성적에 대한 학부모와 교육당국의 집념에 짓눌려 관심권에서 멀어진 지 오래라 해서 지나치지 않을 성싶다.

이 문제는 6·13 지방선거에서 선출될 신임 교육감의 몫으로 돌려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울산형 혁신학교 ‘서로나눔학교’에 애착

류혜숙 교육감 권한대행이 지난해부터 애정을 갖고 심혈을 기울여 온 역점시책이 하나 있다. ‘울산형 혁신학교’의 추진이다.

새 학기에 ‘서로나눔예비학교’라는 멋진 명패를 내걸게 된 학교는 병영·삼동을 비롯한 초등학교 6곳. “교직원 50% 이상, 학부모 50% 이상이 찬성해서 시범을 보이게 된 학교들인데 기대가 큽니다. 하지만 성패는 구성원들이 얼마나 마음을 모아주느냐에 달려 있겠죠.”

서로나눔예비학교의 성공추진을 위한 그물도 촘촘히 짜 두었다. △교원 역량강화 연수(1.23~25, 30명), △교원 워크숍(2.20~21, 40명), △학부모 설명회(3월 중, 6개교)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혁신학교’라면 김상곤 교육부총리가 경기도교육감 재직 당시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사업의 하나. “지금은 국정과제에도 들어가 있는 경기도발(發) 성공모델이라 할 수 있죠.”

그럼 그렇지.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순간이었다. 류 대행은 김상곤 부총리가 경기도 교육을 지휘할 때 기획조정실장(2014년 1∼12월)을 맡아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 문득 이런 예감이 들었다. 울산시교육감이 새로 당선되고 인수인계가 끝나면 류 대행은 행정고향 격인 교육부로 되돌아갈지 모른다는…. (행정고시 33회 출신 국가공무원인 류 대행은 연세대 교육대학원에 적을 두었던 1990년 그 해 4월, 교육계에 첫발을 내디뎠고, 2002년 교육부 서기관에 임용된 바 있다.

그런 경력이 밑거름이 된 것일까? 류 대행은 ‘권한대행’ 이름표를 단 뒤로 해묵은 지역의 교육현안을 무더기로 해결해 내는 저력을 보였다.

울산교육연수원 이전. 성신고(자율형 사립고) 사태, 중학교 전면 무상급식 문제들을 거뜬히 해결해 냈다. 선출직 교육감으로선 좌고우면하다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골치 아픈 난제들을 그야말로 ‘단칼에 베어내고’ 말았던 것. 교육청 기자실에서 한동안 회자된 “3연타석 홈런을 쳤다”란 말도 그런 배경에서 나왔다.

원탁회의·원탁토론… 원탁모임 즐겨

이전신축 대상인 교육연수원의 밑그림이 어느 정도 그려져 있는지 궁금했다. “스페이스 프로그램(space program)이 아직 러프(rough)하다고 할까요?” ‘초안(草案) 수준’이란 답이 돌아왔다. 다만 회의실, 분임실이 몇 개 정도 있어야 한다는 개인적 밑그림은 맛보기삼아 그려 보였다. ‘원탁 회의실’ 얘기도 나왔다.

그러고 보니 류 대행은 ‘원탁(圓卓)’을 무척 좋아하는 것 같았다. 부교육감실의 회의용 탁자도 원탁이고, 지난해 11월 22일 울산MBC컨벤션에서 처음 선보인 ‘학부모와 함께하는 토론’도 원탁에서 이뤄졌다.

‘울산 미래교육을 함께 만들어가는 학부모의 역할’이란 주제로 열린 이날의 원탁토론의 큰 주제는 △함께 소통하는 올바른 자녀교육 방안 △미래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우리아이 진로교육 △학부모의 주체적 교육활동 참여 활성화 방안 등이었다.

어쩌면 원탁은 이른바 ‘진보교육감’들이 즐겨 이용하는 것으로 미루어 ‘탈권위’와도 무관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조희연과 좋은 교육을 꿈꾸는 OO원탁@학부모’란 행사를 2014년도에만 10회나 마련한 바 있다.

“고교는 적성 파악, 외국어는 대학에서”

다소 엉뚱하게 비쳐질지 모르는 질문도 적잖이 끄집어냈다. ‘한글 전용’과 ‘한자 병용’에 대한 견해, 울산외국어고등학교의 전공외국어 변경 가능성, 선행학습 관련 숙제 폐지에 대하 의향 등이 그것. 그러나 그는 차분한 어조로 소화해냈고, 진솔한 답변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첫 번째 질문은 학습효과에 초점을 맞춰 건넸다. 류 대행이 말했다. “우리나라 전체 언어의 60% 이상이 한자어라 할 수 있잖아요? 그리고 학문용어 가운데 수학과 과학 쪽의 용어는 일본 서적에서 차용한 것들이 대부분이고요.” 학습효과 측면에선 ‘한자 병용’(한자 같이 쓰기) 정책이 바람직할 수도 있다는 어감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한글 전용’ 주창자들의 견해와 맞부딪칠 수도 있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어서 추가질문은 삼가기로 했다. 그 대신 일선학교에서 언제나 접하게 되는 ‘우측통행’이란 용어를 순수한 우리말로 바꾸어 쓰게 할 의향이 없는지, 넌지시 물었다.

‘원론적인 답을 듣는 선에서 매듭이 지어졌다. 국가에서 정한 ‘국가용어’인 까닭에 교육청 단위에서 결정지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

울산외고의 전공외국어 변경 문제는 나름의 설득력이 있었다. 풀이하기에 따라선 문재인 정부의 지침대로 ‘외국어고 폐지’ 쪽으로 해석될 수 있는 소지도 없진 않았지만…. “고교 과정은 학생들이 저마다의 적성을 알아가는 단계이죠. 정말 필요하다면 대학에 가서 전공으로 삼아도 되지 않을까요? 전공외국어 변경 문제는 시간을 두고 검토할 문제라고 생각해요.”

일선 교육현장 교원들의 성비 불균형 문제에 대한 의견도 듣고 싶었다. 류 대행은 여성 교원의 비율이 70%나 되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엄마(학부모)는 다 여자이지만, 여교사들이 더 많아서 아이들이 여성화된다고 문제 삼지는 않잖아요? 우문현답이란 생각이 들었다.

학교폭력의 효과적인 예방과 신고 촉진 방안으로 ‘페널티’ 대신 ‘인센티브’를 주는 게 어떻겠느냐는 질문에 대한 류 대행의 답변에는 단호함이 있었다. 교육부의 매뉴얼대로 하면 된다는 것. 그러면서 이런 소견도 덧붙였다. “가해학생이나 피해학생이나 모두 ‘내 아이’ 아니겠어요? (가해학생을) 학교 울타리 밖으로 내치는 것만이 교육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교육감 공백 잘 메워… 홍조근정훈장 수훈

시교육청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지역 부교육감의 임기는 보통이 2년, 길어야 3년이다. 류혜숙 부교육감(교육감 권한대행)은 오는 6월말이면 2년 임기를 다 채우게 된다. 그러나 태산 같은 할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6월 13일 치러지는 제7회 전국동시 지방선거에 따른 뒤치다꺼리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교육감의 취임 날짜는 7월 1일. 누가 새로운 교육감이 되든 ‘업무 인수인계’ 절차가 남아있다. 이 막중한 일을 류 부교육감이 감당해야만 한다. 교육부 인사 대상인 류 대행으로선 지금 이 시점, 자신의 거취를 미리 예단할 처지에 있진 않다. “인사는 종이를 받아봐야 안다”는 그의 말에서도 쉽사리 짐작이 간다.

교육감이 유고(有故)인 상태에서 류 대행은 엄청난 흔적을 울산에 남겼다. 그런저런 공로로 새해 초엔 정부포상인 홍조근정훈장을 수훈하는 영예도 거머쥘 수 있었다. ‘2017년 우수공무원’이란 업적 증명(?)과 함께….

여기서 ‘우수공무원’의 정의는 이렇다. ‘국정의 각 분야에서 업무를 창의적인 자세로 성실히 수행해 국가경쟁력 강화에 기여한 공무원’인 것. 다만 ‘훈장 대상자’는 우수공무원 포상 대상자의 상위 20%만 해당된다고 한다. 그 두드러진 업적을 류 대행이 지난해에 남겼다.

연세대 교육학과-교육대학원을 거쳐 2001년 5월 미국 코넬대에서 교육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 기획실 기획담당관(2005.9), 경기도교육청 기획조정실장(2014.1), 서울시교육청 기획조정실장(2014.12)를 두루 거친 이력만으로도 ‘교육정책 기획의 대가’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울산시민들이 언젠가는 그의 떠남을 아쉬워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글= 김정주 논설실장·사진= 장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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