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영칼럼]“편하고 단순한 것이 최고야”
[전재영칼럼]“편하고 단순한 것이 최고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1.08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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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과거에 즐기던 취미생활 중에 ‘오디오’란 것이 있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대개 음원을 다운받아 스마트폰이나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감상을 하지만, 필자와 같은 베이비붐 세대들은 라디오나 전축으로 음악을 들었다. 또 그것만으로 음악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없을 때는 가끔은 명동 필하모니 같은 음악감상실을 찾아가 당시 집 한 채 이상 값이 나가는 오디오 시스템에서 뿜어 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허기를 달래곤 했다.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이런 고급 오디오는 일부 부유층이나 특권층의 주택 거실 한쪽 벽에 장롱보다도 더 큰 스피커가 차지하며 부를 상징했다. 그러던 고급 오디오가 1990년대 들어와서는 트랜지스터나 IC 회로 같은 전자공학의 눈부신 발달에 힘입어 어느 정도 대중화를 이루게 되었다. 필자도 직장생활 10년 만에 힘들게 모은 비상금을 털어 엔트리급이긴 하지만 ‘오디오’라는 것을 거실에 갖추었고, 그때의 그 감격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대개의 취미생활이 거의 도박이나 마약에 가까울 정도로 중독성이 있어서, 매일 잡지를 뒤지고 중고거래 사이트를 훑고 전문상가를 드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시간을 쪼개어 자주 드나들던 단골 오디오샵을 방문하였다. 그럴 때면 수천만원대의 하이엔드급 오디오를 감상할 생각에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그런데 음악소리도 안 들렸고 감상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조용히 귀를 기울이니 매장 한쪽 구석에서 빈티 나는 음악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보니 오디오샵 사장님이 손바닥만한 트랜지스터라디오로 라디오 음악을 듣고 있는 게 아닌가. 어이가 없어 “왜 이런 걸 들으세요?”라고 물었더니, “난 이런 게 좋아요. 편하잖아요.”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오디오에 푹 빠져 있던 당시의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사건이었다.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오디오 생활에 몰입했다. 손바닥보다도 작은 CD 한 장을 들으려고 거실 벽 한 면을 각종 오디오 기계로 꽉 채울 때까지 나의 ‘오디오’ 취미생활은 계속되었다. 달도 차면 기울듯이, 서서히 열정이 식어가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곡 하나를 듣기 위해서 절차가 너무 복잡한 것이 원인 중 하나였다. 한때는 각 기기에 전원을 넣고, 진공관을 데우고 CD나 LP를 꽂는 것이 즐거움이었는데, 서서히 귀찮은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사업을 시작하면서 현업이 바쁘다보니 전처럼 관심을 쏟기 힘들어졌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오디오 생활도 정리가 되었다.

그동안 하드웨어적으로나 소프트웨어적으로 많은 개선이 이루어져 예전에는 형편 없었던 MP3 음악 파일이 이제는 CD급의 음질로 재탄생하였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음원을 다운받아 수백 내지 수천 곡을 USB메모리나 스마트폰에 저장하여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으며, 심지어 유튜브 같은 곳에서는 무료로 무한대의 음악과 동영상을 받아볼 수 있다. 게다가 이제는 인공지능 스피커가 나와서 말로 특정 곡명을 얘기하면 스피커가 스스로 검색하여 들려주는 시대가 되었다.

그때 단골 오디오샵 사장님 말씀이 이해가 된다. 뭐든지 편한 것이 좋은 것이다. 아무리 좋은 것도 운용하기가 번거롭고 까다로우면 결국 멀어지게 된다. 나의 오디오 생활도 초창기에 쉽게 조작할 때는 열정이 넘쳤는데 시스템이 복잡해질수록 열정이 식었다.

그러나 요즘은 최신 디지털 기술과 소위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인 ‘무선통신과 인공지능’의 결합으로,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쉽게 원하는 음악을 듣게 되니 이게 진정한 오디오 생활이 아닌가 싶다. 예전처럼 오디오 기기 앞에서 음악을 분석하며 듣지 않는다. 아무 때나 아무데서나 음악을 듣고 싶을 때 듣는다. 이제야 비로소 음악을 ‘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 ‘음악’으로 듣게 된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과학기술의 발달이 사람의 일상을 더 복잡하게 하고 각박하게 한다며 아날로그적인 삶으로의 회귀를 꿈꾸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그렇게 매도하던 과학기술 덕분에 아날로그 시대보다도 더 아날로그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물론 지금도 가끔은 진공관의 따스한 불빛이 그리울 때가 있다.

전재영 코렐테크놀로지(주) 대표이사/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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