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학 칼럼] 여성을 신으로 보는 ‘마누라’
[박정학 칼럼] 여성을 신으로 보는 ‘마누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1.07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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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앞산과 뒷산 사이에 간지깽이(장대)가 걸쳐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의 산골인 울주군 삼동면 출강리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자식들을 공부시키려는 어머님의 안목에 따라 형이 고 1, 내가 삼동초교 3학년이던 해 11월에 부산으로 이사를 했다. 농사꾼이 아닌 군인과 학자로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님의 그런 영향 덕분이었다.

그래서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1년에 2차례의 모임을 갖고 있던 기전댁 7남매가 이런 부모님들의 안목에 감사하고 길이 남기자며 어머님의 택호를 딴 ‘기전장학금’을 만들었다. 1997년 삼동초교 졸업식 때부터 매년 100만원씩 지원하는데, 처음에는 매년 7남매가 분담하다가 장남이 주된 역할을 하여 이제 5천만원 가까운 기금이 모아져 그 이자로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 얘기를 꺼낸 것은 우리 집 자랑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부산 이사가 아버님보다 어머님의 주장에 의한 것이라는 말을 듣고 ‘부산에서 살 수 있는 재정기반도 없이 여성으로서 어떻게 그런 결단을 했는지’ 궁금해 하다가 얻은 결론을 소개하려는 것이다.

얼핏 생각해보면 ‘레이디 퍼스트’ 문화 속에 있는 서양의 여성들이 우리나라보다 남성들로부터 대우를 더 잘 받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내가 어릴 때 보고 들은 우리 문화와 역사를 공부하면서 알게 된 창세기를 통해 보면, 우리나라의 여성에 대한 기본인식이 서양과 완전히 다르고 훨씬 높은 예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내가 삼동에서 태어나 자라는 과정에서 아이를 점지하고 무탈하게 자라게 하는 존재가 ‘삼신할미’라면서 어머님이 거의 매일 아침 우물가에 정화수를 떠놓고 삼신할미에게 비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성인 남자들이 자기 부인을 ‘마누라’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서 컸다.

대표적인 우리 겨레 창세 이야기인 『부도지』의 마고신화에서는 율려(律呂)의 어울림에 의해 마고가 태어나고, 마고에게서 궁희와 소희가, 궁희에서 청궁·황궁이, 소희에서 흑소·백소를 거쳐 24명의 천인 천녀들이 태어나 인간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반면, 성경의 창세기는 남성격인 여호와가 남성인 아담을 먼저 만들고, 그 갈빗대로써 여성인 이브를 만들었다고 하여, 여성을 남성의 부속물처럼 보아 결혼한 여성은 남성의 성을 따른다.

남자와 여자를 보는 시각이 이처럼 완전히 다르다. 남성 중심인 성경과 달리 우리 조상들은 사람을 창조하고 관리하는 신은 모두 여성이며, 그 과정도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고, 율(律)과 여(呂)가 어우러져 창세를 하듯 남자와 여자가 어우러져야 인간이 태어나고 함께 인류사회를 관리한다고 하여 우주섭리인 ‘어울림의 원리’를 오롯이 담고 있다. 특히, 울산지역에서 많이 사용되는 ‘마누라’라는 말이 자기 부인을 낮춰 부르는 말이 아니라 ‘여성을 신으로 대접하는 높임말’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어머님의 결단의 뿌리가 상당히 명쾌해졌다.

언어학자 박병식, 박 현 씨의 주장에 따르면 ‘마누라’의 ‘마’는 ‘마~ 그렇지 않나!’는 등 울산 사람들이 많이 쓰는 우리 옛말로 ‘진정한’이라는 뜻이다. ‘마고’는 진정한 신이란 의미가 된다. ‘누’는 누이, 누나 등에서 보듯 여자를 의미하는 우리말 줄기이며, ‘라’는 태양을 뜻하는 고구려말로서 그 후 태양과 같이 높은 ‘하느님’을 뜻하는 말로 뜻이 확대되었다. 그러니 ‘마누라’는 ‘진정한 나의 여자 태양’ ‘여자 하느님’이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조선왕조 태종 때 여성을 낮추어보는 의식이 형성되었지만, 우리 겨레는 아주 오래 전부터 여성을 ‘창조와 어울림이라는 인간 관리의 주체’로 보고 예우해 왔다. 그런 문화와 말이 있는 울산에서 자란 우리 어머니가 원래부터의 총명에 그런 조상들의 의식이 더해졌기 때문에 앞을 내다보고 부산으로 이사할 결심을 했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울산이 가진 이런 문화에너지를 살리면 다가오는 여성의 시대를 울산이 선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박정학 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예비역 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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