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수첩의 환희 ­­칼럼 100호를 맞이하며
메모수첩의 환희 ­­칼럼 100호를 맞이하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1.04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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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글쓰기라고는 생판 모르는 우둔한 서생(書生)이 말이다. 단지 자랑(?)이라 하고 싶은 것은 그동안 일기(日記)를 써왔다는 점이다. 그것도 오랜 기간은 아니었다. 중학 1학년 때였던가, 한번 써보라는 국어선생님의 명령조의 말씀 때문이었다. 뭣도 모르고 쓰기 시작했는데 무슨 글인지 내가 써놓고도 알 수 없을 정도로 개발새발이었다. 6년째 되던 고3 대입 준비 때 그만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일기를 쓰느니 차라리 영어단어 하나 더 외우고 수학문제 하나 더 풀어보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였다.

그 후 몇 십 년 동안은 글쓰기와 소원해졌다. 대학교수직을 얻고 난 뒤부터 주변에 일어나는 일을 조금이라도 기억에 남겨두자는 생각에 다시금 시작했다. 길을 걷다가도, 커피 한잔을 조용히 마실 때라도, 뭔지는 모르지만 남겨두고 싶은 것들을 담뱃갑만한 크기의 수첩에 어김없이 메모하기 시작한 거다.

놀랍게도 그 보석 같은 메모수첩이 이제 나의 서가 한가운데를 꽉 차지한다.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아름다운 일들, 황금보다 더 고귀한 금언, 문득 가슴을 울렸던 이야기 등. 어느 때는 한마디 촌철살인의 어휘, 어느 때는 간결한 어구와 짧은 문장, 어느 때는 긴 복문의 글까지 수첩에 빠트리지 않고 기록한 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삶의 대상이 무엇이든 필기구로 문장을 짓는다는 습관이 나의 글의 큰 밑바탕이 된 듯하다. 알고 보니 습작의 기본 단계를 확실히 밟은 거다.

하버드대학에서 글쓰기 프로그램을 20년간 이끌고 있는 낸시 소머스(N. Sommers) 교수가 있다. 그녀가 제시한 ‘글쓰기 비법’ 가운데 중요한 한 가지는 “짧은 글이라도 매일 써보라”는 것이다. 하루 10분이라도 매일 글을 써야 비로소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뼈 속 끝까지 내려가서 생각하는 것이 글쓰기가 아니겠나?

7년 전 처음 칼럼을 쓸 때는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칭찬보다 혹평에 귀 기울여야 하기에. 마치 나의 치부를 보여주는 것 같아 내심 싫었다.

창조적이고 독특한 글을 생산하기란 쉽지 않는 법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창조’가 아니라 ‘창의’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창의적 편성’이라는 말이 적합할지도 모른다. 절대자인 신(神)은 창조할 수 있어도 인간은 그것이 불가능하다. 스티브잡스도 20세기 문화의 창의자라 할 수 있지 않은가! 지나간 수많은 과학자들이 일구어낸 불후의 문화들이 그 기저(基底)가 되었을 것이다. 창의적인 집대성인 셈이다.

이같이 ‘글’도 과학과 문화처럼 같은 맥락일 것이다. 특히 칼럼문화는 글쓴이의 창의적 편성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문장표현이라 단정하고 싶다.

이윽고 나의 칼럼 100호를 맞이하여 나름대로 큰 감회를 느낀다. 선대의 지식인, 예술인 등등장인물은 수백 명에 이른다. 한반도의 후미진 곳에서부터 유럽의 먼 항구까지 그 지리적 장소도 수백 곳에 이른다. 그것뿐인가! 선각자들의 보물 같은 금언, 유명인들의 번뜩이는 명언들이 수없이 인용된다. 하물며 수달, 자작나무, 매미 같은 동식물이나 곤충들도 곳곳에 등장하여 우리에게 삶의 큰 교훈을 던져준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 자부하고 싶다. 보이지 않는 사이버 상에서 수많은 선지식인을 만났고 다량의 고귀한 문헌자료를 섭렵해 보기도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름다운 우리말의 신비스러운 언어감각도 통찰했으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앞으로 이 여정이 험난한 노정(路程)이 될지 모르지만 당당히 극복해나가려 한다.

세계 최고의 첼로니스트가 있다. 스페인의 파블로스 카잘스(P. Cazals)가 그의 나이 90세 때 첼로 연습 도중 토로한 말이 생각난다. “이제야 실력이 조금 느는 것(some improvement)같아요!”라고. 독자 여러분! 새해에는 다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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