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사현정·벽사진경 그리고 처용지형(處容之形)
파사현정·벽사진경 그리고 처용지형(處容之形)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1.02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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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을 표현하는 적절한 사자성어를 선정하기 위해 교수 1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34%가 ‘파사현정’(破邪顯正)을 꼽았다고 교수신문이 전한다.

‘파사현정’은 ‘삿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의미이다. 교수 340명이 선택한 시대·시의적 파사(破邪)는 오랫동안 쌓여온 다양한 부정적 현상이나 해로운 요소들을 염두에 둔 선택으로 생각된다. 이를 한자어로 ‘적폐’(積弊)라 한다. 이 시대에 어찌 교수들만 적폐를 파사해야 된다고 생각하겠는가?

‘벽사진경(?邪進慶)’에서 벽사는 파사의 대상 적폐와 달리 쫓아내는 역질인 점이 다르다. 역질은 열병(熱病), 역병(疫病), 호질(虎疾), 여역(?疫), 온역(瘟疫), 창질(瘡疾), 염병(染病), 두질(痘疾) 등 다양하게 불리고 있는 천연두를 말한다. 우두머리는 역신(疫神)이다. 역신은 역귀(疫鬼), 마마(??-별성, 손님) 등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지만 천연두(天然痘) 질병을 퍼뜨리는 주체로 신격화한 것이다.

근대사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은 물론 전 세계 전체 사망 원인의 10%를 차지할 만큼 사망률이 매우 높고 가장 두려운 질병이 천연두였다.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급성 발진성 질환이다. 1885년 개원한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인 제중원 1차 연도 보고서에 따르면 4세 이전의 영아 40∼5 0%가 천연두로 사망했다. 천연두는 1979년 전 세계적으로 사라진 질병으로 선언됐다.

법화경 약왕보살본사품에서는 ‘법의 소라를 불고 큰 법의 북을 쳐서 모든 중생들의 늙고 병들고 죽는 바다에서 해탈케 하리라’고 대변하고 있다. 또한 중생들에게 고통을 여의게 하고 안락함을 주는 열두 가지를 비유하고 있다. 그중 ‘병든 사람이 의원을 만난 듯한’ 것이다. 처용설화의 중심은 천연두를 벽사하는 즉, 낳게 하는 의사의 방편이 깔려있다. 무릇 생명 있는 것은 모든 질병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살길 원한다. 화엄경(華嚴經) 역시 선재동자가 모든 중생의 모든 질병과 상해를 고쳐주는 위대한 약왕인 보안장자(普眼長者)를 만나게 되는 것도 무병장수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일연 스님은 시대적으로 창궐한 불가항력적 마마 퇴치에 골몰했다. 스님은 인도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한 것을 울산 영축산을 연결시키는 방법으로 역신을 퇴치하여 백성을 위로하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법화경에는 보살의 실천을 크게 개권현실(開權顯實)과 구원실성(久遠實成) 두 가지로 나누고 있다. 무릇 생명 있는 것의 생로병사를 방편으로 위안받고자 하는 것이 개권현실이며, 아니면 부처가 되어 고해에서 영원히 벗어나는 것을 구원실성(久遠實成)으로 설한 것이 법화사상이다. 물론 법화경은 대승불교의 대표 경전 중 하나로 용녀(龍女)가 성불(成佛)한다는 방편을 설하고 있다. 또한 부처가 되면 질병도 퇴치할 수 있다는 것을 방편으로 설하고 있다.

‘처용지형(處容之形)’은 처용을 그린 가면이나 그림을 말한다. “역신이 처용 앞에 꿇고 말하길 제가 공의 부인을 부러워하여 지금 그녀를 범(犯)하였습니다. (생략) 맹세코 이제 이후로는 공의 형용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했다.) 이로 인해 나라 사람이 문에 처용의 형상을 붙여서 삿된 것을 물리치고 경사를 맞아들이게 됐다.” 이때 범의 글자는 간(奸)과 다르다. 즉 예쁜 얼굴인 처용의 아내에게 천연두를 옮겼다는 말이다. 천연두는 얼굴을 얽게 하는 질병이기 때문이다. 이후 삿된 것을 쫓아내는 처용상, 호랑이, 까치, 소금, 붉은 고추, 불, 칼, 창, 침, 주문, 금속음, 금줄, 붉은색, 사천왕, 인왕, 솔잎, 삼두매, 청죽 등 다양한 벽사 도구와 수단 중 처용이 단연 으뜸이다. 처용 형상의 그림과 춤은 현재도 역신을 물리치는 의미로 전승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26일, 울산대병원이 보건복지부 발표 결과 ‘제3기(201 8~2020년) 상급종합병원 재지정’ 대상에서 탈락했다고 전한다. 2014년 이후 ‘선도병원’ 이미지를 착실히 지켜오던 울산대병원의 탈락 이유는 상급종합병원의 평가기준이 되는 △감염관리능력 △의료전달체계 △의료서비스의 질 면에서 좋은 점수를 얻고도 전공의 숫자를 규정대로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상급종합병원의 평가기준 항목 중 ‘감염관리능력’이 크게 눈에 띈다. 울산은 신라시대부터 역질(疫疾)을 깔끔하게 해결하는 의사(醫師) 처용에 관한 설화의 발생지이다. 솔개어깨, 붉은 입술 등 벽사인으로 강하게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지만 처용 앞에 열병신은 입속에서 살살 녹는 참치 횟감이다. 파사와 벽사는 현정과 진경을 드러나게 함이다. 개띠, 무술년이 밝았다. 올해 모두 바른 것과 좋은 것을 맞이하고 질병 없는 한해로 끝을 맺자. 멍∼ 멍∼ 멍∼.

김성수 조류생태학 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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