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의 쉼터 ‘학성공원’ 광장기능을 되살려야지요”
“시민들의 쉼터 ‘학성공원’ 광장기능을 되살려야지요”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7.12.26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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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성공원 지킴이’ 박주태 학성공원노인회 회장
▲ ‘학성공원 지킴이 ’ 박주태 학성공원노인회 회장.

삼지환·이지환·본환을 1·2·3층으로 불러

공원 근처 토박이 주민들은 공원 안의 넓은 마당(광장)을 높이에 따라 1·2·3층으로 나눠 부른다. ‘서덕출 노래비’가 있는 맨 아래 광장이 1층, 원두막 모양의 정자가 있는 한가운데 광장이 2층이고 작은 연못이 있는 맨 꼭대기 광장은 3층이다. 학성공원(일명 ‘울산왜성’, 해발 50m)의 일본식 명칭을 따라 부르기 거북한 탓도 있다. 어쩌면 왜색(倭色)에 대한 원초적 거부감이 더 큰 때문인지 모른다.

입소문 덕에 ‘회장님’으로 추대된 ‘학성공원 지킴이’ 박주태 학성공원노인회 회장(83, 중구 반구2동·사진). 1·2·3층이란 말이 이젠 그에게도 설지가 않다. 한 달 전에 신청한 ‘고위층 면담’이 성사됐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부랴부랴 구청을 찾아간 것은 지난 9월 25일. 김정헌 총무(68, 반구1동) 등 노인회 임원 4명도 자리를 같이했다.

박 회장은 모조지에 서툰 솜씨로 그리고 적어 넣은 ‘학성공원 산책로 신설 및 편의시설 증설 제안도’를 구청에 건넸다. ‘공원 3층, 2층, 1층’이란 표현도 어김없이 들어갔다. 어떤 의미일까? 층수 표현을 이해하는 데는 인내가 필요했다. 왜성에 대한 공원 안내판들이 이해를 도왔다. 1층은 ‘삼지환(三之丸)’, 2층은 ‘이지환(二之丸)’, 3층은 ‘본환(本丸)’을 의미했다. 모두 왜성(倭城) 연구에 필수적인 축성(築城)용어들이다.

‘산책로 신설’ 고위층 면담, 실망으로 끝나

박주태 회장을 공원에서 만난 것은 지난 23일 오전. ‘공원 산책 인터뷰’에는 김정헌 총무가도 동행했다. 구청 고위층 면담 뒷얘기가 궁금했다. 두 분 얼굴에 잠시 구름이 지나갔다. 답변은 조심스러웠다. “직원들을 큰소리로 야단치십디다. 우리 건의는 문화재위원회 승인이 나야 된다고 하고.” 부하직원에 대한 호통은 거부의 몸짓으로 들렸다. ‘공원시설의 현상변경 불가’ 판정이 내려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산책로 신설, 편의시설 증설 제안은 추풍낙엽 신세가 됐다. “면담 다음날인가, (공원 북쪽) 민가 근처 공터에 동백나무 수십 그루가 심어졌습디다.” ‘민가 근처 공터’라면 공원노인회가 ‘산책로터리’와 산책로를 내주기 바랐던 바로 그 자리다. 구청으로선 노인회 요구가 부담스럽고 ‘동백 테마공원화’에 더 구미가 당기는 눈치였다. ‘면담신청서’를 믿고 맡겼던 지인의 농간(=스파이 짓)이 작용한 것 같다는 진단이 노인회 내부에서 나왔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 당장은 어쩔 도리가 없다고 했다.

면담신청서엔 노인회 회원들의 의견을 모아 정리한 건의사항이 몇 가지 더 있었다. 그중에서도 노약자 즉 보행약자(어린이, 노인, 휠체어장애인 등)들도 3층까지 힘 덜 들이고 올라갈 수 있도록 산책로를 신설해 달라는 건의는 더 이상 늦출 사안도 아니었지만, 노인회 임원진은 일언지하에 거절당한 분통을 쉬 삭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정자 증설’ 요구 노인회에 ‘누각 건립’ 귀띔

임원진의 전언 중에는 특기할만한 내용도 있었다. 2층 한 군데에만 있는 원두막형 정자를 1층, 3층에도 설치해 주었으면 한다는 건의에 대한 답변만 해도 그랬다. “구청에서 누각 2개를 새로 지을 계획이 있다는 겁니다. 구청 관계자도, 건설업자도 말이 다 같았지요.”

구청에서 구상하는 누각은 어떤 것이고 어디다 짓겠다는 것일까? 귀띔과 추론에 근거한 판단이지만, 해답이 금방 나올 것도 같았다. 박 회장은 3층(본환) 오르막 길목의 평지를 가리켰다. 왜성 동쪽 ‘나팔등’(=성 외곽의 토성 터) 안내판이 서 있는 자리. 본환 성벽 보강공사 때(2015~2016) 동쪽 석축 면까지 2m 정도 늘렸다는 증언이 있었던 지점이었다. 구청에서 말했다는 ‘누각 건립 예정지’가 바로 이곳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본환(本丸) 출입구’ 안내판을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폈다. 흥미로운 설명이 눈에 들어왔다. “(본환은) 동쪽과 북쪽 2곳에 출입구가 있고, 동쪽 것이 주 출입구로 남쪽의 선착장(=船入址·선입지)과 연결된다. 성문은 석축과 석축 사이에 누각 건물을 걸쳐놓고 그 아래에 출입문을 설치한 2층 문(아구라몬, 櫓門)으로 2층 건물 벽면에 총구를 만들어 유사시 조총사격 거점으로 사용했다.”

누각은 일본식일 거라는 추론이 가능했다. 만약 구청 계획대로 일본식 누각이 들어선다면 시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공원 서쪽입구 화단 언저리에 왜장(倭將)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좌상 설치 계획이 반대여론에 부딪혀 ‘없던 일’로 치부된 마당인지라 우려와 궁금증이 동시에 교차했다.
 

▲ 울산왜성의 ‘선착장 터(先入址 학남마을 소재)’가 내려다보이는 남쪽 산자락에서 담소를 나누다 기념촬영에 응한 공원 주변의 토박이 어르신들.대부분 학성공원노인회 회원이다. 왼쪽 세 번째가 박주태 회장,오른쪽 세 번째가 김정헌 총무. 장태준 기자

‘일본왜성 사진’으로 짜 맞춘 왜성시설 안내판

‘공원 산책 인터뷰’는 공원 동쪽입구 부근에서도 이어졌다. 마침 남쪽 학남마을의 ‘선입지’(=선착장 터)가 내려다보이는 양지바른 중턱에 노인 일고여덟 분이 햇볕을 쬐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부분 노인회 회원들이라 했다. 임원진을 보더니 말을 먼저 꺼낸다. “왜 하필 왜색을 내려고 하나?” “그러게 말이야, 나 원.”

듣자 하니 학성공원 왜성시설 안내판에 붙여놓은 일본 현지 왜성시설의 사진이 민족 자부심을 상하게 한다는 것. 꼼꼼히 뜯어보니 그런 얘기가 나올 만도 했다. ‘삼지환’ 안내판엔 일본 아코성(赤穗城)의 카부키몬(冠木門) 사진이, ‘이지환’ 안내판엔 이요마츠야마성(伊豫松山城)의 전투용 누각 사진이, ‘본환’ 안내판엔 구마모토성(熊本城)의 누각 사진이 실명으로 붙어있었다.

박 회장은 그 근처에 팽개치듯 내려놓은 듯한 벤치 몇몇도 가리켰다. (박 회장은 벤치를 ‘등받이의자’라고 불렀다.) 노인회 요청에 따라 며칠 전 중구청에서 갖다 놨다는 벤치는 모두 7개였다. “새것인 줄 알았는데 니스 칠도 다 벗겨진 중고품이네요.” 땅속에 든든하게 박히질 않아서인지 들면 수월하게 들렸다. 안전사고라도 난다면…?

임원진은 노인들과 단체 기념사진을 몇 커트 찍은 뒤 발길을 ‘3층’ 본환 쪽으로 돌렸다. 날씨가 그리 춥지도 않은데 찾아온 사람은 가물에 콩 나듯 했다. 박 회장이 묵혀 두었던 말을 ‘묵은 지’ 꺼내듯 끄집어냈다.

“광역시 승격 후에 1층 광장에 넓적한 바닥 돌을 깔고 계단을 돌계단으로 만든 뒤부터 노약자들의 발길이 뜸해진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위층 면담 때 가져간 제안서에도 바닥 돌을 제거해 달라는 요구사항을 넣어 놨었지요.”

박 회장은 공원 분위기를 침체시킨 가장 큰 요인이 ‘바닥 돌’이라는 인식을 고집스레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밖에 △1층 돌계단 재시공 △기존 음수대 수질검사 및 음수대 신설 △공원 수목관리 조례의 제정 △광역시 승격 이후의 공원시설 개선 내역 공개도 면담하러 갔을 때 동시에 요청했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나도 감감 무소식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노약자 외면한 공원… 바닥돌·돌계단이 주범

나중엔 김정헌 총무도 한 마디 거들었다. 공원노인회 회원들의 말을 인용해 가며 학성공원이 ‘한참 잘 나가던 때’의 광경을 얘기로 들려주었다. “봄, 가을 소풍 철에는 아이들 소리로 넘쳐났고 평소에도 1층 광장에서는 음악회다, 무슨 행사다 해서 사람 소리가 그칠 날이 없을 정도였지요.”

박 회장도 100% 공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바닥돌을 깔고 돌계단을 새로 꾸미면서부터 공원은 갈수록 활기를 잃어 갔다. 공원 분위기는 2008년 7월 이후가 ‘빛의 시기’였다면 광역시 승격(1997. 7) 이후는 ‘어둠의 시기’였다는 게 ‘공원 토박이’들의 주장이라 했다. 사실 이지환의 원두막형 정자나 공원 구석구석의 벤치, 음수대와 같은 편의시설들은 대부분 2008년 7월을 기점으로 새로 들어섰다.

‘바닥돌’과 ‘돌계단’이 실제로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일까? 물음표를 던졌더니 “그렇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바닥 돌’은 걸려 넘어지면 곧바로 부상으로 이어지고 ‘돌계단’은 계단 돌의 높이가 너무 높다 보니 오르내리기가 힘들어 외면할 수밖에 없다는 지론이었다. “아침에 2층 광장에서 에어로빅 마치고 나오는 부녀자들이 계단 가까이 오면 약속이나 한 듯이 욕을 합니다. 부딪히거나 넘어져서 다칠까봐 겁이 난다고 말입니다.”

다리가 성한 사람도 그런데 보행약자들은 오죽할까? 그런 생각에 2·3층은 놔두고 1층만이라도 휠체어 장애인들이 올라갈 갈 수 있을지 간접체험에 나서기로 했다. 결론은 ‘불가’였다. 북쪽 둘레 길로 돌아간다면 3층 입구 격인 요산대(樂汕臺) 아래쪽까지만 갈 수 있고. 서쪽 입구에서 학남마을 쪽으로 돌아간다 해도 부축하는 이가 없으면 광장 진입은 전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불편한 것은 네모반듯한 돌계단만이 아니었다. 듬성듬성 자연석을 깔아 만든 비정형 계단도 정도차이만 있을 뿐 마찬가지. 단골 산책객들이 ‘자연석계단’ 옆에 계단식 홈을 파서 흙계단을 만들어놓은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공원노인회 회원들은 얼마 전 구청에서 ‘야자섬유발판’인가 뭔가 따로 만들어 깔아놓아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못 된다고 입을 모은다. “구청에 여러 번 건의해도 한쪽귀로 흘려듣기만 해서 참…. 안전은 뒷전인 거지요. 구청 직원들, 2년마다 자리가 바뀌니 누가 깊이 관심 가지겠나, 내 참.”

“우범지역 안 되게 동백나무도 제거해야”

지난 5월 발기인대회를 거쳐 2개월 후(7월) 회원 65명으로 명함을 내민 ‘학성공원노인회’. 순수한 공원애호가들의 모임이면서도 애향심, 민족감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어르신 모임이다. 회원들이 구청에 혹은 시청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박 회장에게 총정리(?)삼아 질문을 던졌다. 결기에 찬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휠체어를 타고도 3층까지 오를 수 있게 해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예전저럼 바닥돌을 걷어내고 광장의 기능을 되살려야 합니다.” 또 더 있었다. “우리 선조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학성공원에 일본식 누각을 세워선 안 됩니다. 그리고 우범지대가 되지 않도록 동백나무를 완전히 제거해야 합니다.”

맨 나중의 희망사항은 2008년 7월에는 받아들여진 적이 있었다. 노인회 회원들은 3층(본환)의 공원 안내비 남쪽 산자락 경사면에 우거져 있었던 동백나무, 대나무, 잡목을 그 무렵 베어내기 전까지만 해도 이 지역은 ‘풍기문란’의 상징 같은 곳이었다고도 했다. “두고 보십시오. 5년만 지나면 동백나무가 엄청나게 웃자라 우범지대를 만들 겁니다.

북구 ‘상연암’이 안태고향인 박주태 회장. 병영초등학교 29회 졸업생인 그는 6.25 피난 시절 부산 숭실학교를 나와 한때는 철도경찰(전남 순천), 미군 병기기지창(부산 적기)에서 근무한 경험도 있다. 1967년도엔 현대자동차 창설멤버로 일했다. “그 당시 태어난 셋째아들(박치욱 씨, 47)이 지금은 아산공상에서 인사부장을 맡고 있지요. 허허.”

2년 연하인 부인 안말연 여사와의 사이에 1녀3남을 두었다. 중구 반구1·2동에서 35년째 살고 있으니 ‘반구동 토박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터.

글=김정주 논설실장·사진=장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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