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부영 지부장의 해명과 대의(大義)
하부영 지부장의 해명과 대의(大義)
  • 이상길 기자
  • 승인 2017.12.17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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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35대 대통령인 ‘존 F. 케네디’가 상원의원 시절 집필해 퓰리처상까지 받은 책으로 <용기 있는 사람들>이라는 저서가 있다. 개인적으로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필독서로 자주 추천해온 책이다. 내용은 미국 역대 정치지도자들 중 다수의 거센 압력 속에서도 자신의 원칙과 양심을 지켜온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쉽게 말하면 재선, 즉 권력유지라는 자신의 이익을 과감하게 버리고 보다 큰 대의를 선택한 정치인들의 이야기다. 존퀸시 아담스, 다니엘 웨스터, 에드먼드 G 로스, 셈허스튼, 조오지 노리스, 로버트 A 태프트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남북전쟁 등을 거치면서 선택의 순간에 당의 명령보다는 양심의 명령을, 지역의 이익이나 당의 이익보다는 국익을 먼저 생각한 결정으로 모두 후세에 용기 있는 사람들로 추앙받고 있다.

일례로 존퀸시 아담스와 다니엘 웨스터의 그 때 그 용기 있는 선택이 있었기에 미국은 지금의 우리나라처럼 남과 북으로 갈리는 분단의 아픔을 겪지 않을 수 있었다.

본보 12월 14일자 ‘현대차노조 하부영 지부장 정년연장 이율배반 행보 논란’ 기사에 대한 하부영 지부장의 반박 해명을 읽으면서 벌써 십 수 년 전에 읽었던 이 책이 떠올랐던 건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자신의 블로그에는 정년연장이 청년실업을 부추기는 사회적인 적폐라는 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그토록 강하고 멋있게 피력해놓고는 본보 기사에 대해서는 “노동조합의 생리를 모르는 기사”라고 반박했더라. 요지인 즉은 “개인적 판단이나 운동 신념과 5만1천 노동조합 지도자가 됐을 때 행보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다행스러웠던 건 “정년연장이 옳지 않다”는 자신의 생각은 변함없다는 것. 불리할 땐 “기억 안 난다”는 말로 일관했던 기성 정치판처럼 “그 사이 생각이 바뀌었다”고는 말하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하 지부장은 자신이 ‘지도자’라는 사실을 잊고 있더라. 그는 분명 5만1천의 조합원들을 대표하는 지도자다. 게다가 현대차 노조는 대한민국 노동계 대표주자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이는 아무도 없다. 결국 지금 하 지부장은 지도자로서 정년연장과 관련된 선택의 순간에 자신의 블로그에 밝힌 ‘올바른 사회 구현’이라는 대의는 저버린 채, 그보다 훨씬 작은 ‘조합원들의 이익’을 선택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무릇 지도자가 되려는 건 자신이 꿈꾸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함에 있다. 그런 이상이 없으면 지도자를 꿈꾸면 안 되고. 복잡하게 꼬인 이해관계 속에서 국민의 뜻이란 것도 자장면이나 짬뽕으로 통일할 때 쓰는 다수결의 결과일 뿐, 결국 옳은 선택은 지도자가 갖고 있는 이상, 즉 원칙과 양심에 따른 결단으로 이뤄지기 마련이다.

<용기 있는 사람들>에서 미국의 위대한 정치인들이 성난 황소처럼 흥분한 지지자들의 뜻을 뒤로 한 채 자신의 원칙과 양심에 따라 더 큰 선택을 내릴 수 있었던 까닭이 아니었을까. 그랬거나 말거나 지금은 국민 다수도 하 지부장이 블로그에 밝힌 생각처럼 정년연장보다는 청년취업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것. 그래서 다소 듣기 싫겠지만 하 지부장에게 이 질문을 꼭 던지고 싶다.

“현대차 지부장이 왜 됐어요? 설마 조합원들 비위나 맞추려고 된 건 아니죠?!”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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