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전박대(門前薄待) 속의 ‘굴욕외교’
문전박대(門前薄待) 속의 ‘굴욕외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12.12 23: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오늘 방중(訪中)의 길에 올라 16일까지 3박4일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한다. 이번 방문의 형식은 시진핑 주석 초청으로 이뤄지는 국빈(國賓) 방문이다. 한·중 정상은 지난달 11일 베트남 G20 정상회의 만남이 있은 지 한 달여 만에 다시 만난다. 한국과 중국의 풀어야 할 난제가 아직 남아있기에 체감온도는 영하권 날씨처럼 차갑다. 이번 방중에선 사드·북핵·경제 3가지 매듭을 풀어나가야 한다.

한·중은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訪中)과 관련해 한·중 관계의 ‘새로운 출발’이라는 의미를 부여해 왔다. 그러나 결국 사드에 대한 중국 측의 계속된 압력과 이견 때문에 정상회담 이후의 ‘공동성명’(Joint Statement)은 물론 이보다 급(級)이 낮은 ‘공동 언론발표문’(Joint Press Statement)도 내지 못하게 됐다. 물론 공동 기자회견도 하지 않기로 했다. 문전박대(門前薄待) 속의 굴욕외교가 될 전망이다.

1992년 한·중 수교 이래 역대 우리 대통령이 중국을 국빈 방문한 경우는 일곱 번 있었다. 이 가운데 1차 북핵 위기 중인 1994년 3월 김영삼 전 대통령 국빈 방중 때만 아무런 결과 문서가 없었고, 나머지 여섯 번은 ‘공동성명’이나 ‘공동 언론발표문’이 나왔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모두 취임 첫해 중국을 국빈 방문해서 ‘한·중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중국 국가주석과 공동 기자회견도 열었다.

문 대통령은 방중 기간에 시 주석 외에도 리커창(李克强) 총리, 우리 국회의장 격인 장더장(張德江)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그리고 천민얼(陳敏爾) 충칭시 당서기와 만난다. 하지만 중국은 문 대통령과 리 총리의 15일 회담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애초 계획했던 오찬 면담을 늦은 오후로 연기하는 등 국빈 방문의 격(格)에 맞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또,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 국빈 방문을 이틀 앞둔 11일 중국 관영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안보동맹의 근간을 흔드는 이른바 ‘3불(不) 원칙’을 중국 인민 앞에 직접 표명해 달라는 황당한 요구를 받았다. 문 대통령은 “사드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며 즉답을 피해 갔지만, 중국에서 ‘사드 보복 부분 철회’를 고리로 사실상 한국에 안보주권을 일부 포기하라는 요구가 계속될 것으로 보여 파문이 예상된다.

지난달 미국 전역을 사정권에 두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 이후 진행하는 문 대통령의 방중을 미국은 ‘친중(親中)의 의심’으로 숨죽여 보고 있다. 물론 절박한 중국 견제 심리는 있다지만 한국의 사드 추가배치 중단, 미국 미사일 방어(MD) 불참, 한·미·일 3국 군사동맹 불가 등 ‘3不’ 입장이 불을 지폈다. ‘3불’만이 아니다. 중국의 일대일로에 맞서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이견도 미국이 서운해 하는 부분이다. 한국의 이런 행보가 중국을 의식해 미국의 아시아 구상에서 발을 빼고 싶어 하는 모습으로 비치고 있다.

지난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북핵 해결에 중국 도움을 얻기 위해 어정쩡한 모습으로 천안문 망루에 섰던 사건이 떠오른다. 그 사건 이후 한·미 관계는 미묘하게 틀어졌었다. 북핵 문제 악화로 중국에 대해 서운함을 넘어 배신감을 느끼는 미국에서는 한·중 정상회담 결과를 주의 깊게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북핵 문제뿐 아니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나 방위비 분담금 협상 등 한·미가 논의해야 할 주요 이슈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판단이다. 이제라도 ‘속 빈 강정’ 같은 굴욕외교는 하지 말자. 그리고 미국과 중국의 ‘주판놀음’에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질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신영조 시사경제칼럼니스트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