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웰다잉의 길, 왕생이길을 걷자
웰빙·웰다잉의 길, 왕생이길을 걷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12.10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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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남구에는 ‘왕생이길’- 왕생로(王生路)가 있다. 이 길은 ‘왕생혈(王生穴)’ 설화에서 비롯됐다. 설화의 중심을 이루는 줄거리는 ‘임금이 태어날 곳(王生)’이다. 이를 남구청에서는 시대를 뛰어넘어 ‘각 분야의 최고(왕)’로 해석했다. 참신한 아이디어라고 생각된다. 전승문화는 hand-down적 답습이 아니라 시대적·시의적으로 hand-over적으로 재창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접근 방식으로 남구청에서는 동·서로 이어진 삼산로∼월평로의 약 1㎞ 거리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명장(名匠)의 산책(散策)’과 ‘울산 명장들의 손 프린팅’으로 가치를 극대화했다. 이제 왕생이길에서는 인생의 질곡과 굴곡, 파안과 미소와도 같은 로터리, 그리고 작은 삼거리와 큰 사거리, 작은 사거리 등 인생의 열두 고개를 인문학적으로 만날 수 있다.

남구청은 지난달 13일 왕생이길에서 점등식을 가졌다. 내년 2월까지 ‘러브 풀 라이트’를 주제로 야간에 조명을 켠다. ‘행복 가득한 미래’를 테마로 가로수 조명, LED 은하수, 바닥 조명, 중앙보도 라이트 월, 대형 하트 조형물 등 다양한 조명을 설치했다. 이 또한 왕생이길의 존재가치를 북돋우는 일로 여겨진다.

지난 6일에는 ‘남구의 뿌리를 찾아서’ 사업의 하나로 왕생이길에 ‘울산(삼산)비행장’ 표지석을 추가로 세워 의미를 더했다. 필자는 이 길을 몇 차례나 걸으면서 그 분위기를 만끽했다. 가족과 연인, 구민과 시민들에게 감동과 추억의 공간으로 이용할 것을 쌍수를 들고 권한다.

한동안 왕생이길을 ‘왕생이들’로 부른 적도 있었다. 그 지역이 과거에는 갈대가 무성한 습지였던 점을 감안한다면 아마도 한때는 왕골 즉 갈대가 무성한 들이었을 거라고 상상해도 무리는 아니지 싶다. 모화(毛火), 굴화(屈火)와 같은 지명에서도 엿볼 수 있는 자연생태적 접근의 산물일 것이다.

지명에서 접두어 ‘왕-’은 ‘크다’, ‘넓다’ 등의 의미를 지닌다. 왕생이들이 한때 넓은 습지였다는 점에서도 짐작할 수 있겠다. 아무튼 필자는 ‘왕이 날만한 곳’이라는 정해진 개념의 틀에서 자유로이 벗어나고 싶다. ‘왕생(王生)’의 동음이어인 ‘왕생(往生)’을 대비시켜 웰빙과 웰다잉이란 인문학적 스토리텔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이러한 시도는, 다양한 스토리텔링이 지역경제의 활성화와 관광객의 지속적인 방문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는 긍정적인 관점에서 비롯됐다.

왕생(王生)이길은 소통과 웰빙(Well-being)의 길이다.

왕생이길은 행복의 길이요, 너와 나의 길이요, 연인의 길이다. 왕생이길은 부모의 길이며, 자식의 길이며, 우리 모두의 길이다. 왕생이길은 연말과 연초에 누구나 걷는 길이 되기를 기대한다. 부모는 자녀의 건강과 행복을 염원하며 걷는 길이며, 자식은 부모의 건강과 행복을 소망하며 걷는 길이다.

2017년 지자체 행정정책 행복지수 평가에서 울산 남구가 ‘삶의 질 부문’에서 대상을 받은 것을 웰빙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싶다. 남구에는 우즈베키스탄, 인도네시아, 중국, 베트남 등 10개국에서 건너온 1만 2천여 명의 다문화가족이 있다. 왕생의길이 다문화가족의 새로운 만남의 광장으로 활용되고 활성화되길 기대한다. 왕생이길은 이제 나라를 초월한 소통과 힐링의 장소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왕생(往生)이길은 효도와 웰다잉(Well-dying)의 길이다.

올해 8월 기준 우리나라의 100세 이상 어르신은 남자 3천933명, 여자 1만3천588명으로 집계됐다. 왕생이길을 걸으면 더 이상 바람 불고 낙엽 떨어지는 낙목한산(落木寒山)에 홀로 선 쓸쓸한 노인의 모습이 아닌, 80세에도 왕성한 건강미를 자랑하는 ‘바운스(bounce)’의 길이다.

2016년 통계청의 생명표 발표에 따르면 현재 40살인 남성은 앞으로 40년을 더 산다고 했다. 단, 40년 중 13년은 유병(有病)이란다. 만약 왕생이길을 한번 걸어서 유병의 세월이 1년씩 줄어든다고 믿으면, 열세 번만 걸으면 천수를 누리는 셈이 된다. 왕생이길에서 부모와 자식이 함께 걷는 힐링을 지속하면 100세 인생에서 유병과 저승사자는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 왕생이길은 날고 싶은 이들에게는 날개가 되고, 달리고 싶은 이들에게는 뒷바람이 되는 곳이다.

왕생이길은 웰빙과 웰다잉이 공존하고, 자연과 인문이 함께하며, 해맞이와 해넘이가 더불어 있는 곳이다. 도한 왕생이길은 진급, 진학, 결혼, 건강, 무병이 이루어지는 소원성취의 길이다. 이럴진대 어찌 당장 왕생이길 걷는 것을 마다하겠는가? 어디에서 만날까, 어디로 걸을까?를 고민한다면 망설일 필요가 없이 당연히 왕생이길을 떠올리자. 웰빙과 웰다잉이 공존하는 왕생이길은 ‘묻지 마라 잘 된다’ 길이자, 로터리같이 슬슬 풀리고 사거리 뚫리듯 시원하게 통과하는 인생의 웃음길이다. 우리 함께 왕생이길을 애써 찾아서라도 걸어보자.

김성수 조류생태학 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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