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있는 삶, 감성 에세이집에 담아냈죠”
“쉼표 있는 삶, 감성 에세이집에 담아냈죠”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7.12.05 2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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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에세이집 펴낸 김원호 울산대 명예교수
 

‘생애 첫 작품집’을 펴낸 것은 정년퇴임 후 22개월 만의 일이다. 마음사전의 주어 자리는 언제나 ‘행복(幸福)’과 함께 ‘감성(感性)’이란 낱말이 차지해 왔다. 첫 작품집에도 ‘감성’이란 단어가 들어갔다. 이를 눈치 챈 출판사-’아담북스’가 작품집을 굳이 ‘감성 에세이집’이라고 붙인 것이다.



음악 흐르는 카페 등 ‘울산 얘기’ 가득

김원호 울산대학교 인문대학 일본어·일본학과 명예교수(67·사진). 그의 첫 감성 에세이집은 이 달 14일자로 나온다. <아침에 쓴 좋은 생각-네게서 정말 향기가 나는구나>란 이름표가 붙었다. 출판사는 이렇게 소개한다. “이 감성본(感性本)은 인생에 대한 속 깊은 관조를 아름답고 잔잔하게 서술한다. 저자의 주옥같이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가 듬뿍 담긴 신선하고 야심적인 생애 첫 작품이다.”

김 교수는 49꼭지가 들어간 228쪽짜리 이 에세이집에 ‘울산에서 일어난 모든 것들’을 감성적인 필치로 담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대부분이 울산의 지역신문에 정기적으로 연재한 글들이었으니까. (그는 지금도 월 1회씩 울산제일일보에 글을 보내고 있다.)

프롤로그에서 그는 이런 말을 남긴다. “지나간 울산에서의 생활은 잊을 수 없습니다. 오랫동안 정들었던 골목길이며,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고 카페라테 커피 맛에 달구어진 카페, 태화강변의 대나무 숲, 강변 3킬로미터를 하드워킹하며 30분 기록을 세운 일은 잊어버릴 수 없지요.” 기억에서 쉬 지워지지 않을 사람과 장소 이름도 같이 올렸다. “맛있게 먹고 다녔던 함양 비빔밥집하며, 후덕한 아줌마가 하는 남원 추어탕집, 몸짱을 만든다고 열심히 다녔던 교내 스포츠센터, 나만의 호젓한 소나무 오솔길, 그리고 우리 집 뒷산 문수산도 머릿속에 뚜렷이 새겨져 있지요.”

지금까지 7년 가까이 쓴 글만 99꼭지. 김 교수는 1차 편집에서 제쳐두었던 나머지 50꼭지의 글을 두 번째 감성 에세이집으로 엮어내겠다며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매주 화요일 출강… ‘인간이 먼저’ 강조

2015년 2월에 정년을 맞이했던 김 교수는 약 1년 후인 지난해 3월 오래 정들었던 남구 무거동 거처를 정리한다. 새로 옮긴 주소지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마두동의 ‘백마 1단지 삼성아파트’. “25년 전에 사 둔 땅이 있어서 집사람과 궁리한 끝에 결정을 내렸지요.”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울산을 다녀간다. 매주 화요일 오후 울산대에서 전공(일본어·일본학) 강의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학기는 수강생이 25~30명 남짓 되는 ‘일본어의 의미와 표현’ 한 과목. 대학원생 위주이지만 학부 3·4학년생도 이따금 같이 듣는다.

김 교수에겐 뚜렷한 교육철학이 있다. 학생들에게 학문만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인성(人性)과 도덕(道德)을 특히 강조한다. 수업태도가 안 좋은 학생에겐 ‘인간이 먼저’라고 따끔하게 일침을 준다. 그 때문인지 강의 시간에 핸드폰을 꺼내는 학생은 거의 없다.

강의라면 욕심이 많다. 다음 학기에는 울산대에서 2과목은 채워야겠다고 벼른다. 제자 키우는 재미는 직접 겪어보지 않은 분들은 잘 모를 것이다. 보금자리가 있는 일산에서는 몇 번 뜸을 들인 적 있는 도서관 강의를 계속해 보려고 열심히 추진하는 중이다. 고양시에는 마두도서관을 비롯해 도서관이 자그마치 20개나 된다. 게다가 일산롯데문화센터 같은 문화공간도 적지 않다. 어떤 일이든 노력하기 나름 아니겠는가.

우선은 ‘일본어 공개강좌’부터 시작할 참이다. 그러나 짬이 나면 좀 더 보폭을 넓혀 ‘행복’ 강의도 해볼 생각이다. 스스로를 이른바 ‘행복 전도사’라고 일컬어 오지 않았던가.



일본어 서적 20여종 발간, 논문 19편

에세이집은 처음이지만 일본어 관련 학술서적은 20편이 넘는다. “울산대 도서관에 일본서적이 참 많은 편이지요. 듀이의 10진 분류법에 따라 대표적 분야별로 2권씩 골라서 집필한 것들이랍니다.”

가장 아끼는 저서를 들어보라 했더니 몇 가지를 주저 없이 지목한다. <일본어표현연구방법론>(2001. 8. 30 초판, 울산대출판부·UUP)과 <한일번역탐구>(2011. 2. 14 초판, UUP), <일본어 ‘머리말’ 문장산책(Japanese Preface Sentence)(2005. 2 초판, UUP)이 그들이다. 이 저서들은 일본어 전공 대학원생들이 논문을 작성할 때 ‘필독서’로 삼는 참고문헌들이기도 하다.

이 가운데 5권으로 짜여진 <일본어 ‘머리말’ 문장산책>은 일본인 저자들의 머리말(はしがき·하시가키, 序文, Preface)들만 골라 집중분석을 시도한 김 교수 특유의 개성이 묻어나 있는 저서다. “머리말 속에는 멋있는 말, 고생한 이야기, 본문 구성, 저술 동기 할 것 없이 저자에 관한 많은 것들이 녹아들어 있기 마련이지요. ‘머리말을 한 번 읽고 나면 책을 다 볼 필요가 없다’는 말이 그 때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주섬주섬 종이가방을 챙기더니 2013년 2월에 펴냈다는 <味の日本語(Delicious Japanese)>를 특별히 꺼내 보여준다. 이내 “커피, 초콜릿, 양과자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며 씩 웃는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책 제목 아래에 ‘커피·초콜릿·베이킹으로 배우는 일본어 텍스트’란 부제가 달려 있다. 나름대로 아끼는 책이지 싶었다.

김 교수는 이밖에도 박사학위 논문인 <日本語의 推量表現에 관한 硏究, 1997. 2. 27,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일어과)를 비롯해 그동안 19편의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 외손자를 껴안은 부인 홍기욱 여사(왼쪽)와 김원호 교수 부부의 단란한 한때.


집필은 ‘나만의 케렌시아(안식처)’에서

가벼운 질문으로 돌렸다. 집필을 언제, 어디서 하는지 궁금했다. 조건이 조금은 까다롭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글에 대한 구상이 아무데서나 떠오르는 게 아니라는 얘기였다.

“글을 집에선 안 씁니다. ‘나만의 케렌시아’가 있어요. 인테리어가 마음에 드는 조용한 카페일 때도 있고, 카페나 스탠드바 분위기가 나고 책도 마음껏 볼 수 있는 교보문고 같은 대형서점의 독서대일 때도 있고…. 글은 ‘인테리어가 멋진, 나만의 조용한 카페’에서라야 잘 떠오른다고 보시면 됩니다.”

‘나만의 케렌시아’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케렌시아(Querencia)’라면 스페인의 투우(鬪牛)경기 용어다. 극심한 흥분과 공포에 휩싸인 투우장의 소가 뒷덜미에 투우사가 내리꽂은 창을 그대로 매단 채 위협을 잠시 피해 찾아 헤매는 곳이 ‘피난처’, ‘안식처’란 뜻의 케렌시아다. 이곳에서 소는 숨을 고르며 죽을힘을 다해 마지막 에너지를 모은다고 한다.

‘쉼표 있는 생활’을 원하는 김 교수에겐 자신만의 케렌시아가 하나 더 있다. 10년 전부터 애지중지 보듬고(?) 다니는 애플사의 ‘아이패드’다. 인터넷 기능, 원고작성 기능에 저장 기능까지 갖추고 있으니 ‘포터블 컴퓨터’나 다름없다. “키보드를 누를 필요 없이 손가락으로 터치만 하면 되고. 가볍고 편해서 참 좋습니다.”

글쓰기에도 철학이 있을까. 돌아온 답은 ‘있다’였다. “철학자 니체가 글쓰기를 권유하며 이렇게 말했지요. 글을 잘 쓰려면 ‘건각(健脚)의 철학자’가 돼야 한다고. 하지만 저는 건각이라 해도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이제 겨우 7년이니 아직은 한참 멀었습니다. 혼자놀음이긴 해도 시도 적어보고, 어쨌든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나면 책을 많이 읽고 또 써보기도 하지만, 조심스럽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거울로 자신의 치부를 들여다보는 것 같아서…. “그런 걸 다 초월해야 되겠지요.”



아내에 대한 배려지심, 뒤늦게 깨달아

화제는 자연스레 결혼생활 쪽으로 향했다. 껄껄 웃으면서 부인 홍기욱 여사(65)와 각방 쓰는 얘기부터 털어놨다. “한 3~4년 됐을 겁니다. 집사람이 ‘남편에겐 미안하지만 허리가 아플 때도 있고 불편할 때도 많다’면서 먼저 제의를 해옵디다.”

그래도 건강과 금슬만큼은 여전히 남부럽지 않다고 자랑삼아 말한다. 처녀총각 시절 연애 얘기도 스스럼없이 공개한다. “대학 2학년 때 알게 된 집사람은 직장 다니면서 하숙집 건너편에 살고 있던 충청도 여자였지요. 하루는 기타를 치며 박인수의 ‘봄비’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웬일로 아가씨가 찾아와준 겁니다.” 부인이 먼저 ‘대시’를 하더라는 얘기였다.

신이 난 듯 얘기는 계속됐다. 한국외국어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했고, ‘신발을 거꾸로 신을 줄 알았던 아내가 끝까지 기다려 주더라고 했다. ‘7년 열애’는 마침내 ‘결혼 골인’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저도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이다 보니 집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부족했다는 사실, 요즘 와서 비로소 깨닫습니다. 집사람은 정반대로 연애할 때나 지금이나 저를 참 많이 배려해 주었는데. 앞으로는 배려지심으로 살아야겠다, 이런 결심을 하고 있습니다.”

부인 홍 여사와의 사이에 두 딸을 두고 있는 김 교수는 스스로를 ‘딸 바보’라며 큰딸(39) 자랑을 시작했다. 서울여대 컴퓨터공학과를 나와 7년간 일본 문부성 연구장학생으로 지냈고, 다시 동경대 연구생 1년 과정을 거쳐 ‘학비 전액 무료, 월 15만엔 지급’ 조건으로 대학원 석사과정까지 마쳤으며,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일본지점에서 유일한 한국인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근황에 이르기까지….

김 교수는 대구시 북구 원대동이 고향. 대구고를 거쳐 한국외국어대 학부와 대학원에서 일본어를 전공한 문학박사 출신이다.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 대학원 및 일본어교육연구센터의 객원연구원 생활을 거쳤다.

1991년 9월부터 시작된 울산대 인문대학 국제학부 일본어·일본학과와의 인연은 정년을 맞은 2015년 2월까지 약 24년간 계속됐다. 정년퇴임 후 다시 울산대 인문대학 일본어·일본학과 명예교수 자격으로 지금도 강단에 오르고 있다.

글=김정주 논설실장·사진= 장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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